[수능 파헤치기]고3 수험생이 적은 올해 '필적확인' 문구는

박형수 입력 2017. 11. 14. 14: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2017년 수능 모의고사 필적확인 문구는

「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보는 수험생들은 시험지를 받으면 가장 먼저 ‘필적확인란’부터 채워 넣는다. 필적확인이란 과목별 시험지 표지에 적힌 11~17자의 간단한 문장을 답안지인 OMR 카드에 손글씨로 옮겨 적는 것을 말한다. 필적확인은 대리시험 등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2006학년도 수능 때 처음 도입됐다.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필적확인 문구는 여러 자음과 모음이 섞여 있어 수험생의 글씨체를 판별할 수 있으며,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줄 수 있는 밝고 희망찬 의미가 담긴 문장으로 고른다”고 말했다.

이틀 뒤 수능을 치를 고3 수험생들은 올해 7번의 수능 모의고사를 치렀다. 시험지를 받아들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읽고 적었을 일곱 개의 필적확인 문구를 통해 수험생의 2017년을 되돌아봤다. 」

※ 이 기사는 수험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썼습니다.

━ '넌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 테니까' 꽃샘추위로 싸늘했던 3월. 모의고사 시험지를 받은 수험생들의 눈에 이 한 문장이 들어왔고 너는 잠시 울컥했다. 고3이 되고 처음 치르는 모의고사 시험지를 너는 결코 작년과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 수 없었지. 그런 너의 마음을 아는 듯, 달래는 듯한 구절에 너의 눈망울은 잠시 뿌예졌고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지난 3월 서울교육청이 주관한 3월 모의평가 국어영역 표지. [사진 서울교육청]
너는 시험을 마치고, 조금은 망친 걸 깨달았다. 너도 모르게 인터넷에 그 글귀를 입력했다. 시인 박치성이 쓴 '봄이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이었다. 너는 잠시 시간을 내어 시를 감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시 구절에 위로받은 그 경험은 다음 달인 4월 시험을 앞두고 너를 은근히 기대하게 했다. 너는 여전히 불안하고 긴장됐지만 이번에도 그때처럼 괜찮을 거라고 다독일 수 있었다.

━ '내 안의 두 눈과 마음 문을 활짝 열고' 4월 모의고사에서 문장을 답안지에 옮겨적으며 너는 이번 시험을 어떻게 볼 건지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머리가 모른다면 마음에 묻지, 뭐'라며 조금 웃었던 것 같다.

3월 같은 감동은 아니지만, 시험지 앞에서 잔뜩 위축된 너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번에도 너는 인터넷을 통해 시 전문을 찾아봤다.

법정 스님이 쓴 '번뇌'라는 시의 한 대목이었다. 쉽지 않은 내용의 긴 시였는데, 너는 꼼꼼하게 읽었고 뭔가 알 것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 속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하나 더 찾고는 왠지 뿌듯해했다. 네가 수첩에 적었던 구절은 '차라리 나를 잊은 내 안의 나를 그리워하세'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은 매 시간 영역별 문제지 표지에 기재된 '필적확인 문구'를 답안지에 적어넣은 뒤에 문제 풀이를 시작한다. [중앙포토]
너는 6월 시험을 앞두고 한층 더 긴장했다. 선생님은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문제를 내는 중요한 시험"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모의고사 점수가 곧 수능과 직결된다"고도 했지. 아직 수능과 마주할 준비가 안 됐던 너는 그런 얘기가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너의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쿵쾅대는 심장으로 받아든 시험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 '바람은 자도 마음은 자지 않는다' 좀처럼 잠잠할 줄 모르는 너의 불안한 마음을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생각했고, 너의 기분을 그냥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지난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한 6월 모의평가 수학영역 가형 표지. [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7월 모의고사는 6월 모의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끼어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시험에 너는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너답지 않게 친구들에게, 부모님에게 유독 날카롭게 굴며 신경질을 낸 날이 많았지. 혼자 방에 틀어박혀 '내가 왜 이러지'하는 생각에 찔끔 눈물이 나온 날도 있었다.

━ '아름다운 네 모습 잃지 않았으면' 가장 힘겨운 마음으로 받아든 7월 모의고사 시험지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어. 너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았고, 또 부드럽게 다독거림을 받은 것도 같았지.

그리고 여름방학은 순식간에 지나 가버렸다. 좀처럼 올 것 같지 않았던 2학기가 시작됐고, 교실은 1학기 때보다 훨씬 어지러워졌지.

친구 중 하나는 '포기했다. 재수할 거다'라며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나는 특기자전형으로 갈 거니까 수능은 필요 없다'며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능 공부에 집중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모두가 열심히 하던 1학기 때와 달리 너 혼자만 수능에 매달리는 것 같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부끄럽다고도 느꼈다.

━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9월 시험지에 적힌 구절을 너는 단박에 알아봤다. 윤동주의 '자화상'이었다.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미움과 가여움·그리움을 번갈아 느끼는 시인의 모습, 변덕스러운 시인의 마음과 달리 우물에 담긴 풍경은 그저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란 바람이 부는' 평화로운 모습일 뿐이었다. 너 자신을 초라하고 부끄럽게 여기던 네 마음에도 잠시나마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지난 9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한 9월 모의평가 국어영역 표지. [사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여름방학만큼 길었던 추석 연휴가 다가왔고, 또한 금방 끝이 났지. 너는 여전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머릿속은 점점 하얘지는 것만 같았다. 더 많은 걸 잊어버리기 전에 당장 수능을 치르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할 정도로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때 너는 선배들이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인 10월 시험은 언제나 쉽게 출제된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을 조금은 놓았던 것 같다.
━ '당당하게, 겸손 잃지 않은 채 피어나는 꽃' 기대와 달리 10월 시험은 무척 어려웠다. 너는 9월 시험보다 꽤 떨어진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수능까지 낮은 마음으로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얻었다.
지난 10월 서울교육청이 주관한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영역 표지. [사진 서울교육청]
그리고 이제 너는 이틀 뒤면 수능 시험지를 받아든다. 매번 그랬듯 필적확인란을 채워 넣고 문제를 조심스레 풀어나갈 거다.
이번엔 연습 아닌 실전이기에 너는 두렵고 떨리겠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당당하고 겸손하게, 밝고 푸르른 마음으로, 눈과 마음을 활짝 열고 매시간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 펜 뚜껑 꾹 눌러 닫고 시험지를 제출한 뒤 교문을 나서는 너의 얼굴은 예쁜 꽃과 같을 것이다.
지난 201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서 고사장에서 나오는 수험생을 마중나온 가족이 안아주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