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혜수 "내가 걸크러쉬 원조라고? 타고난 깡 없어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2017. 11. 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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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범죄조직 중간보스로 강렬한 변신
은발 반삭+총기 액션으로 카리스마 발산
여성 중심 영화, 가능성 엿봐
배우 김혜수가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강영호 작가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이번 일만 끝나면 은퇴할거야.”

영화 ‘미옥’ 속 범죄조직의 2인자 나현정은 마지막 프로젝트를 완수한 뒤 평범한 여인의 삶으로 돌아가길 꿈꿨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목을 붙잡았고 그는 또 다시 여자로서 혹은 여전사로서 외로운 싸움터에 던져져야 했다.

배우 김혜수도 비슷했다. 10대 때 데뷔해 연기 경력 31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매일 당장이라도 관둬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는 그다. 극 중 범죄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끈 ‘미옥’의 나현정의 입에서 은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주변인들이 느낀 감정이 이랬을까.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 오랜 직업에 대한 회의 등 김혜수가 털어놓은 뜻밖의 이야기는 일상적이지만 가볍지 않은 것들이었다.

영화 ‘미옥’은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2인자 나현정(김혜수)과 그녀를 위해 조직의 해결사가 된 임상훈(이선균), 출세를 눈앞에 두고 이들에게 덜미를 잡힌 검사 최대식(이희준)의 물고 물리는 전쟁을 그린 작품. 김혜수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본격적인 액션에 도전해 10kg이 넘는 장총을 자유자재로 놀리며 고강도의 액션신을 직접 소화했다. “액션신을 찍으면 종일 몸이 아프다가 다음날엔 몸이 싹 풀려요. 그럼 운동선수처럼 몸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지고, 나중엔 액션이 춤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미옥’ 덕분에 액션에 용기가 생겼달까. 괜찮은 액션물이 있다면 또 해보고 싶어요.”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강영호 작가

김혜수의 원톱 액션만큼 화제가 된 건 파격적인 스타일링이다. 강렬하고 차가운 인상을 위해 선보인 은발 반삭 헤어스타일은 그가 직접 제안한 것. “생각보다 짧고 밝은 헤어스타일을 오래 유지하는 게 어려워요. 일단 제 머리가 너무 빨리 자랐고 머릿결이 상할까봐 염색을 자주 할 수도 없었어요. 열흘에 한 번 정도 탈색을 했는데 두피에 약품 때문에 화상을 입기도 했고, 자세히 보면 머리가 죽은 새털처럼 다 끊어져있어요. 근데 연기자니까 이런 것도 해보지, 언제 해보겠어요. 하하”

김혜수 고유의 카리스마에 압도적인 비주얼이 더해진 탓일까. 극 중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웬만한 욕설보다 강력했다. 그는 “욕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면서도 실제 촬영장에선 여자 스태프들이 열광했다는 재미난 후기를 전했다. “욕이 자연스럽게 들릴 때까지 여러 번 다시 찍곤 했어요. 특히 여자 스태프들이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아마 여성들이 그런 감정은 있으나 실제로 그런 표현을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보니까 저를 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강영호 작가

나현정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여인이다. 조직에선 카리스마 넘치는 언더보스지만 한 남자에겐 여자고, 또 엄마이기도 하다. 욕망의 대상이지만 정작 본인의 욕망은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주변인들에게 각기 다른 이유로 소중한 존재, 영화의 원제가 ‘소중한 여인’이었던 이유다. 여전사, 엄마 캐릭터의 온도차에서 오는 아이러니한 이미지가 캐릭터의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었지만 이를 캐릭터의 매력으로 만든 건 김혜수의 연기 내공 덕분이었다.

“‘미옥’의 정체성은 누아르지만 모성은 중요한 키워드에요. 다만 보는 사람 입장에선 모성애로만 보이겠지만 ‘미옥’에서 표현된 모성은 전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모성이란 감정을 오히려 배제하고 싶었고요. 관객이 봤을 때 ‘저런 게 엄마야?’ 싶을 만큼 좀 더 시크하고 간결한 여운을 남기길 바랐어요. 실제로 많이 고민한 부분이에요.”

이처럼 안팎으로 강렬한 캐릭터지만 정작 김혜수가 나현정에 끌린 건 ‘평범함을 향한 그리움’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소 비현실적인 직업을 가진 나현정이 꿈꾸는 평범한 일상은 김혜수의 가슴 깊은 곳을 찌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도 이 일을 오래 했잖아요. 평범한 직업도 아니고요. 복에 겨운 소리로 들릴까봐 조심스럽지만 사실 전 아직도 ‘이 일이 나한테 맞나? 지금이라도 관둬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요. 산다는 게 참 복잡하잖아요. 보여지는 것과 진짜가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까요.”

특히 김혜수는 카리스마, 섹시, 걸크러쉬 등으로 대표되는 본인의 이미지에 대해 “난 강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착각한다”며 웃어보였다. “물론 제가 하는 일은 강해야 될 때가 많죠. 근데 전 타고난 깡은 없어요. 그래서 예전부터 예쁘고 여린데 오로지 의지만으로 센 연기를 해내는 여배우들이 부러웠고요. 사실 일상에서 카리스마 내뿜을 필요 없잖아요. 그?좋게 말해서 카리스마지, 이상한 공기 조성해서 사람 불편하게 할 필요 있나요.”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강영호 작가

데뷔 31년차인 김혜수가 여전히 2030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이유는 화려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걸크러쉬’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훨씬 전부터 그는 늘 전통적인 여성성, 고착화된 이미지를 깨부수는 선봉에 서 있었다. ‘타짜’, ‘차이나타운’, ‘미옥’, ‘직장의 신’, ‘관상’, ‘시그널’에 이르기까지 김혜수는 늘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그렸다. 어설프게 남자 캐릭터의 강인함을 흉내내기 보다 여성 자체만으로 충분히 강인할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배우였다. 인터뷰 말미, 김혜수는 여성 영화를 향한 애정과 사명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여성 중심의 영화가 많이 없는 건 해외 사정도 비슷해요. 그런 영화가 적었다는 건 그런 영화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을 기회도 적었다는 이야기겠죠. 그런 면에서 ‘미옥’은 괜찮은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물론 완성도 면에서 전문가나 관객들의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미옥’ 같은 시도가 일으킬 강렬한 파장에 의미가 있잖아요. 꽤 많은 분들이 이런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어요. 꼭 김혜수가 아니어도 더 잘 할 수 있는 누군가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영화로 남았으면 해요. 나아가 여배우들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영화들이 줄기차게 나와 주길 바라고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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