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당신의 '버킷 리스트' 다시 쓰게할 이 사진

2017. 10. 3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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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 대가족의 美서부 자유여행기…앤털로프 캐니언

가능할까. 9명의 대가족. 게다가 미국 서부 자유여행이라니. 일흔의 부모님과 만 4세, 6세, 7세 꼬맹이들까지 이른바 '노약자'와 함께하는 로드 트립인 셈. 하지만 필자보다 가족들이 더 들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강행 결정. 필자는 미국 휴스턴에 살고 있다. 추석 연휴 가족들이 낸 시간은 열흘 남짓. 코스부터 고민이다. 휴스턴은 미국 내 4대 도시이지만 관광 도시가 아니다. 고민 끝에 찍은 곳은 서부. 미국의 대자연과 화려함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숏컷이다. 서부 투어라면 응당 그랜드 서클이라 불리는 4대 캐니언을 두루 둘러봐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 여기에 어르신들 건강과 컨디션 유지도 문제. 결국 '그랜드 서클(애리조나주, 유타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에 걸쳐 펼쳐진 서부 대자연 코스)'에서 엑기스만 추렸다. 결국 취사 선택한 코스는 '라스베이거스-앤털로프 캐니언-홀스슈벤드-그랜드 캐니언-라스베이거스'를 도는 일정. 아쉬웠지만 가족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4대 캐니언 중 톱으로 꼽히는 '앤털로프 캐니언'은 보니까.

라스베이거스에서 동북부로 약 450㎞, 그랜드 캐니언에서는 약 220㎞ 떨어진 앤털로프 캐니언은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슬롯 캐니언(Slot Canyon·폭이 매우 좁고 깊은 협곡)이다.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디언인 나바호(Navajo)족 자치 구역에 자리하고 1987년에서야 상업적 투어가 시작된 곳으로, 그랜드 캐니언 등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곳이다. 대신 많은 사람이 윈도 바탕화면 속에서 만났을 절경을 지닌 곳, 잃어버린 영양(앤털로프는 영어로 '영양'이라는 뜻)을 찾아나섰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는 신비한 빛의 협곡이다.

라스베이거스를 출발해 4시간 정도를 내리 달렸다. 신비한 절벽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직감적으로 기다리던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흥분된 마음으로 구글 지도를 따라 가는데 최종 도착지는 의외로 드넓은 평지 사막. 코앞에 '로워 앤털로프 캐니언 투어(Lower Antelope Canyon Tour)' 라는 큰 간판이 눈에 박힌다. 이곳이다. 아, 빼곡한 차량. 벌써 여행족으로 북새통이.

앤털로프 캐니언은 어퍼 앤털로프 캐니언(Upper Antelope Canyon)과 로워 앤털로프 캐니언(Lower Antelope Canyon)으로 나뉜다. 어퍼 캐니언은 말 그대로 땅 위에, 로워 캐니언은 땅 밑에 있는 협곡. 우리 가족은 두 곳 중 로워 캐니언을 최종 행선지로 정했다. 초반은 실망스럽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평범한 사막처럼 보였던 것. 아, 그런데 반전이 숨어 있다. 로워, 즉 아래에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상상이 가는가. 사막 아래 마법같이 펼쳐진 자연의 조각이라니. 가는 길은 제법 살벌하다. 로워 앤털로프 캐니언은 건물 5층 정도(약 23m) 높이의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을 내려가야 만난다.

캐니언의 유래도 오묘하다. 집중호우를 동반하는 몬순 시기에 모래 바위의 균열된 틈을 따라 흘러 들어온 물이 급격한 침식 작용을 일으키며 생긴 협곡. 나바호 언어로 어퍼 앤털로프 캐니언은 '물이 바위를 관통하는 공간(the place where water runs through rocks)'이라는 뜻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만나는 이 어마어마한 절경의 기원이 물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좁고 구불구불한 2.4㎞의 지하 협곡 세계가 펼쳐진다. 양쪽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의 협곡.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다. 모래 바위들은 오래 세월 겪었을 물의 침식 작용과 바람을 몸에 새겨 기억하는 듯, 신비한 소용돌이 무늬를 띠고 있다. 오, 마치 소프트아이스크림 허리춤처럼 파여 있는 꽈배기형 홈이라니. 살짝 고개를 드니, 협곡의 천장 구멍에서 햇살이 쏟아진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찔함이다. 앤털로프의 하이라이트는 이거다. 이 협곡의 틈 사이로 스며드는 빛. 모래 바위의 붉은 색감과 오묘한 물결 무늬와 어우러지면 입을 다물 수 없는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전 세계 수많은 여행족이, 다른 캐니언이 아닌, 앤털로프에 열광하는 게 이 빛 때문이다.

골든 타임도 있다. 바로 협곡의 천장 틈으로 쏟아지는 햇빛. 빛이 가장 잘 드는 아침 10시~낮 12시 사이 투어다. 현지 인디언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로워 캐니언은 브이(V)자 형태의 협곡이고, 어퍼 캐니언은 에이(A)자 형태, 즉 상층부 구멍이 좁은 형태의 협곡이 주를 이룬다. 어퍼 캐니언은 상부가 좁기 때문에 햇빛이 협곡 내로 들어오는 시간이 제한적인 반면, 로워 캐니언은 하층부보다 상층부가 더 넓게 열린 구조로 더 오랜 시간 빛이 들어 방문 시간대의 제약이 덜하다." 로워 캐니언은 어퍼 캐니언보다 3배 정도 긴 구간이지만, 입구까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고 험하다. 반면 어퍼 캐니언은 지상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입구까지의 접근성이 좋다. 협곡 안에서 만나게 되는 절경은 두 곳 모두 감동적이지만 각각 장단점이 있는 셈.

아, 아이들과 어르신들 걱정도 붙들어 매시라. 로워 캐니언의 좁고 가파른 입구까지 어린아이들이 잘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어른들의 도움으로 충분히 지하 입구까지 갈 수 있다.

1시간 반 남짓 이 신비하고 굽이진 지하 협곡을 걷는 동안 부모님의 표정은 감동으로 가득 찼고, 아이들은 마치 동굴 속 탐험가가 된 듯 신이 났다. 좁은 협곡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은 달라지는 바위의 닮은 형상을 찾아내기도 하고, 바닥의 고운 모래를 손가락 사이로 흘려 보내며 깔깔댔다. 이 믿기 힘든 비주얼 속에서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 기적 같은 곳에 내가 있구나 싶었다. 1937년 앤털로프 캐니언을 처음 발견한 이도 잃어버린 영양을 찾아나섰던 나바호 인디언 소녀라 하니, 이곳은 정말 호기심이 많은 어린이들만이 발견할 수 있었던 숨겨진 보물 창고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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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털로프 캐니언 즐기는 Tip

1. 반드시 전문 인디언 가이드와 동반 입장해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앤털로프 캐니언 투어 회사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할 것.

2.투어는 일반인 투어와 사진가 투어 두 가지로 나뉜다. 사진가 투어는 일반 투어보다 투어 시간이 길고, 삼각대 등 촬영 장비 반입이 가능하다.

3.투어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하더라도 1~2시간 지체는 각오해야 한다. 여름에는 모자와 물이 필수다.

[애리조나주(미국) = 조혜선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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