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길을 만드는 배우 이병헌 "한때 나도 갈팡질팡하는 '인조' 같았다"

김지수 기자 2017. 10.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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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조 같은 ‘결정장애' 성격… 에라 모르겠다, 내려놓으니, 할리우드 신세계 열려"“어찌 될 지 모르는 상황에 수시로 나를 던지고 뭘해도 운명이라고 생각"“영화 ‘남한산성', 김훈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최명길의 세계와 닿아”“캐릭터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툭 하고 오는 것"“연기는 지능이 아닌 센스… 외모 전성기 지나도 연기력은 나이 들수록 좋아져"“자연인 이병헌으로 무대 서는 건 여전히 두려워… 신경안정제 먹는다"

김훈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에서 그는 마치 작가 김훈의 페르소나 같았다./사진 제공=BH엔터테인먼트

영화 ‘남한산성'에서 이병헌은 평정한 말투로 다급함을 말했다. “전하, 사나운 적이 가까이 올수록 사직의 앞길은 먼 것이옵니다… 지금은 대의가 아니옵고 방편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불붙은 집 안에서는 대의와 방편이 다르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병헌을 보면서, 이병헌을 보고 있을 소설가 김훈을 생각했다. ‘치욕을 긍정해야 자존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작가 김훈의 평생의 화두였는데, 저것이 드디어 말이 되어 나오는구나. 언어는 풍경을 대체할 수 없는데, 한 배우의 목울대가 숨구멍 없이 엄숙하기만 했던 자음과 모음에 숨통을 여는구나.

영화 ‘남한산성'은 실패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636년 인조 14년 12월. 눈보라를 뚫고 압록강을 건너온 청의 기마 부대를 피해 임금과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갇혀 있던 47일 동안, 말의 불꽃은 치열했다. 청과 화친하여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과 대의를 위해 맞서 싸워야 한다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의 한판 ‘썰전'을 듣고 있자면, 그 ‘말의 황홀경'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특별히 나는 이조판서 최명길을 연기한 이병헌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화선지에 번져가는 먹물처럼, 우주에서 회오리치는 은하수처럼, 영화라는 땅에 온전히 뿌리내리고 열매 맺은 그의 육체를 보는 일은 경이로웠다. 예컨대 어떤 새로운 도전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목격하는 게 아니라, 이미 완성된 찬란한 유적지를 보는 느낌이랄까.

대체 어떻게 저런 목소리로 말하고 저런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볼까?

“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초라한 세상에서 만고의 역적이 되고자 하옵니다. 전하의 성단으로, 신의 문서를 칸에게 보내주소서.”“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옵고 길이옵니다. 전하께서 밟고 걸어가셔야 할 길바닥이옵니다.”-영화 ‘남한산성' 중 최명길의 대사.

폭력적인 영화조차 이병헌이 들어가면, 멜로드라마틱해진다. ‘남한산성'에서 ‘왕이 능욕을 당해야 백성이 산다'고 칼날같은 말을 던질할 때조차 체액이 고인 이병헌의 육성은 ‘사랑의 밀어'를 말하듯 왕과 백성에 대한 연민으로 그윽했다. 칼을 들어 상대가 아닌 자신을 찌르면서도 자아가 훼손되지 않는 기이한 풍경. 그걸 ‘순열’이라 할까, ‘순진'이라 할까.

예컨대 르포나 소설처럼 사실적이고 산문적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면, 이병헌의 연기는 순식간에 감정의 핵심에 도달해버린 시에 가깝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시에는 시의 이름으로 시 아닌 것들을 솎아내는 야금술의 길이 있고, 시 아닌 것을 모아 시를 만드는 연금술의 길이 있다'고 했는데, 이병헌의 연기에서 야금술과 연금술의 협연을 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병헌이 ‘내부자들'이나 ‘광해, 왕이 된 남자'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겁에 질려 똥을 싸고 어쩔줄 몰라 비명을 질러댈 때나, ‘밀정'이나 ‘남한산성'에서 공포를 이긴 범상한 영웅으로 신념을 말할 때, 한 인간 안에 깃드는 동심과 이상향의 풍경에 훅하고 발이 빠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연기 세계가 깊어지는 이병헌, 작품을 대하는 눈이 갈수록 ‘맑고 직관적인' 배우를 만났다. 벌집처럼 공고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간다고 믿었던 이병헌은 기실 자기 역사가 ‘우연과 카오스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혹시 일기를 씁니까?

“몇 년에 한 번씩 써보곤 합니다. 내가 죽은 후라도 ‘이병헌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오해 없이 알아줬으면 해서요. 그런데 쓰다 보니 꼭 초등학생 일기장 같아서 그만뒀습니다(웃음).”

이병헌은 가족과 일의 균형을 잘 찾고 있다고 했다. 젊은 시절 소망대로 아이가 크면 트레일러를 타고 미국 서부 여행도 갈 것이다.

-이병헌 연기의 원형도 일종의 ‘순진성’이지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무당이 신 내린 상태는 아닙니다(웃음).”

-확실히 자기 안에서 타인을 끌어내는 직관이 남다릅니다.

“생각해보면 캐릭터는 시곗바늘이 재깍재깍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게 아니더군요. 어느 순간 툭 가까워지고, 또 한 번 툭 가까워지곤 합니다.”

-‘남한산성'의 최명길은 어땠습니까? 시각적으로는 수염이 낡고 파삭해서 금방 부서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장면에 강풍기까지 틀어내면 수염이 뒤집어져 얼굴을 뒤덮기도 했지요(웃음). 육체를 크게 사용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배역에 젖어 드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평생을 해온 일이지만, 의식도 무의식도 배역이 지배해버리면 작은 휴식조차 스트레스가 됐어요.”

-웅장하고 쓸쓸한 김훈의 문장을 살아본 기분은 어떻던가요?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명대사들이었지요. 말의 뜻이 너무 좋았습니다. 최명길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그의 말로 옛 감정을 거슬러 사용하다 보니 그의 세상에 아주 가깝게 닿는 느낌이었어요.”

소설가 박경리는 ‘남한산성'을 읽고 “이 소설의 소리 없는 주인공은 병자년 동장군인 ‘추위'였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최명길(이병헌)이 엎드려 행궁의 낡은 마룻바닥을 보고 말할 때마다 입에는 허연 입김이 새어 나왔다. 영화 내내 자주 눈발이 날렸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김훈은 소설에서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고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다'라고 적었다.

-울음기가 몰려온 얼굴로 무릎을 꿇은 채 말하는 이병헌의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가 나오면 내가 70% 이상 바닥을 보며 얘기하겠구나. 관객들도 답답해하면 어찌할까. 김상헌(김윤석)과 저는 왕을 쿠션으로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눈을 보지 않으니 그의 숨소리와 목소리가 가깝게 들리더군요. 앞 못 보는 사람이 청각과 후각이 발달하듯, 그렇게 청자로서 예민해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관객들도 내 눈을 못 보니 내 눈꺼풀이나 목소리를 확 당겨서 보겠구나.”

어디 목소리뿐이랴. 문득 ‘역적을 자처한' 말의 하중으로 고개를 떨구던 그가 ‘비겁한 말'이 담긴 항복서를 품에 안고 청의 군막으로 내달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말 위에 작은 몸집으로 앉아있던 이병헌의 몸을 잊을 수 없다.

‘...황제의 깃발을 가까이 바라보면서 이 돌담 안에서 말라 죽는다면 그 또한 황제의 근심이 아니겠나이까. 하늘과 사람이 함께 귀의하는 곳에 소방 또한 의지하려 하오니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영화 ‘남한산성'에서 그는 스스로 치욕의 ‘투항글’을 지어 칸을 찾아간다.

한 배우의 몸에 그저 작은 반도에 또아리 틀고 살고 싶었던 조선인의 눈물과 길을 묻는 과객 같았던 조선왕의 말투가 피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가끔씩, 이렇게 한국말을 쓰고 한국 땅을 살아간다는 것의 실체를 목격하게 만드는 이병헌.

배역의 말이든 자연인의 말이든, 진지해지기를 민망해하는 그지만, 작년에 영화 ‘밀정'의 독립군 대장 정채산으로 분했을 때도 비록 도망자 신세였으나 그 말의 결기가 영화 전체를 장악해버렸지.

“난 사람들 말은 물론이고 내 말도 믿지 못하겠소. 다만, 저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말’이 아니고 ‘일’만 믿는다는 사람의 목소리는 왜 그다지도 아름다운지.

-말의 내용 때문인지 목소리가 더욱 구슬프고 낭랑하게 들렸습니다.

“목소리 좋은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김윤석, 송영창 등등 다들 연극을 하셨던 분들이라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곤 했습니다.”

-창조의 샘이 마르지 않는 비결은 뭔가요? 작가들조차 가끔 한 줄도 쓸 수 없는 블록 아웃 상태에 빠지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가끔 저도 암담해질 때가 있죠. 밑도 끝도 없이 “나 어떡해?” 하는 순간들. 가령 악기 연주자들은 수십 년간 습득한 기술이라 몸이 기억하는 게 있어요. 반면 연기는 나로 살다가 잠깐 다른 사람을 보여주는 노릇이라 쌓아놓은 ‘데이터'가 없죠. 순식간에 뇌가 꺼져버리면 숨이 턱 막혀요.”

-혹시 할리우드에서 그런 경험을 했나요?

“그때는 다른 이유로, 하하… 말이 잘 안 되니까요.”

한때 그는 할리우드 촬영장에서 영어로 연기한 후, 동료 배우들에게 발음이나 포즈가 어색하지 않았는지 물어보면 자괴감이 몰려왔다고 했다. 프로들 사이에 유치원생으로 있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하면서.

-40이 넘어서도 스스로 비기너(Beginner)의 자리로 돌아갈 용기는 어떻게 나던가요?

감정이 풍덩하게 고인 이병헌의 얼굴.

“참 이상하지요. 저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한 사람이었어요. 시나리오도 몇 번을 읽고 또 읽고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타입이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인생 뭐 있어?’로 바뀌었어요.”

때는 2008년. 이병헌은 동시에 세 작품을 앞에 두고 ‘아리송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조시 하트넷과 함께 캐스팅된 베트남의 트란 안 홍 감독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 할리우드에서 온 첫 시나리오 ‘지 아이 조' 그리고 ‘달콤한 인생' 이후 김지운 감독이 제안한 만주 웨스턴 무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저는 어떤 결정도 못 내리는 ‘인조’와 같았어요. ‘지 아이 조' 시나리오는 읽어보니 인형극 같더군요. 당시엔 마블 히어로물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요. 그동안 우리나라 SF 장르라고는 ‘우뢰매'나 ‘용가리'만 봤으니 저도 상상력이 갇혀 있었던 거예요.”

-어떻게 했나요?

“에이전트가 “꼭 했으면 한다"고 해서 김지운 감독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런 걸 뭐 하려 하냐"고 해요(웃음). 반면 박찬욱 감독은 “해볼 만 하다"고 하는 겁니다. 어떤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었고 그야말로 갈팡질팡했죠.

그뿐 아니었다. 평소 트란 안 홍 감독 같은 예술가에게 재료로 자신을 던져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정작 시나리오를 받아보니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란다. “그 양반, 뼛속까지 예술가였던 거죠(웃음). 그 와중에 김지운 감독이 보내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만주에서 서부 영화를 찍겠다는데 내가 왜 ‘나쁜 놈'인지, 주인공인지 조연인지도 분간이 안 가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나는 살고자 한다(‘남한산성'에서 인조의 대사)’. 하하.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한번 다 해보자. 나를 놓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요?

“신중하던 내가 기적적으로 바뀌었지요. 까짓거 실수해도 실패해도 괜찮다.”

스케줄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촬영장에서 저 촬영장으로 비행기 세 번을 갈아타고 날아다녔어요. 그 와중에 몸까지 만들어야 했으니 지옥 훈련이 따로 없었죠. 파주 세트장에서 ‘놈놈놈' 촬영을 끝내고 피 칠갑을 한 얼굴을 밴에서 닦으며 미국 가는 비행기에 올라가는 식이었어요.”

커리어를 착착 빌딩처럼 안전하게 쌓아오지 않았다는 이병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저를 던지고 뭘해도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해 여름에서 이듬해 가을까지 이병헌을 여러 번 만났는데, 마치 혼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지 아이 조’를 찍다 잠깐 한국으로 와서 ‘놈놈놈' 홍보 촬영을 했고(우울한 얼굴로 체중 관리 중이라고 했다), 조시 하트넷과 부산영화제에 나타나 ‘보그코리아' 표지 촬영을 하면서(선 채로 샌드위치로 배를 채웠다), 동시에 드라마 ‘아이리스'를 찍는 식이었다.

-안전관리가 잘 된 스펙터클한 커리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체는 카오스였군요!

“커리어를 착착 빌딩처럼 쌓아오지 않았어요. 그랬다면 한순간 잘못 얹어 와르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며 살았겠죠. 내 감옥에 갇히면 자리가 점점 좁아져 소멸하고 말았을 거예요. 일단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저를 던지고 뭘해도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뒤로 새로운 세계가 열렸지요? 조시 하트넷이 당신을 ‘알랭 들롱'이라고 추켜세우고, 알 파치노와 호형호제하며 영화를 찍고 아카데미 시상식장에도 초대받는 사람이 됐으니까요. 얼마 전엔 올리버 스톤 감독은 공개적으로 이병헌을 칭찬하더군요.

“우왕좌왕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남들이 안 가본 길을 가봤으니까. 얼마 전에 세계적인 음악가 한스 짐머를 만났는데 그가 한국 영화 ‘놈놈놈'도, 할리우드 영화 ‘매그니피센트7’도 좋았다고 해서 보람을 느꼈어요. 아! 이렇게 세계와 접점이 생기는 거구나.

저는 또 저대로 한스 짐머가 영화 ‘덩케르크'의 음악을 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콘택트'의 요한 요한슨이 한 줄 알았거든요. 나이든 거장이 그토록 현대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했다니 그분도 모험심이 대단한 거죠.”

-최근 본 영화 중에서는 ‘싱글라이더'가 참 좋았습니다. 실패한 금융맨이 양복 한 벌 입고 도시를 표류하는 느낌이 싸하더군요. 흥행은 못 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영화 ‘싱글라이더'는 단벌 양복을 입은 한 남자의 심리를 추적한다는 점에서 ‘달콤한 인생'과 비슷했어요. 지나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런 작은 감정이나 표현들이 아닌가 해요. 저는 큰 동작이나 큰 외침을 표현하기가 참 힘들어요. 부담이 된다고나 할까요.”

-그런 건 설경구 씨가 잘하지요(웃음). 당신은 세밀한 감정의 균열을 표현하는 현대적인 연기에 능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IQ와 연기력이 상관관계가 있습니까?(그의 IQ는 155다)

“전혀 없습니다. IQ보다는 센스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똑똑하다기보다는 바보스럽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안쓰럽게 바라볼 때가 더 많지요(웃음). 일에서는 완벽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지만, 일상에서는 빈틈이 많고 단기 기억상실증세까지 있습니다(웃음). 당연한 몸의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끌어다 쓰면 나머지는 허당이 돼요. 하지만 언제나 센스는 충만합니다.”

-지적 능력과 센스는 어떻게 다른가요?

“가령 역사에 해박하다고 훌륭한 사극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남한산성'이나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병자호란이라든가 광해군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기본 정보를 훑고 나면 나머지는 온전히 내 몸을 바탕으로 한 감정이 연기의 전부입니다.”

공효진과 함께 한 영화 ‘싱글라이더'. 대단히 미니멀한 이 영화에서 이병헌은 오로지 표정과 보행만으로 서사를 끌어간다.

-연기를 가르칠 수 있습니까?

“10년 전에 대학에서 강연 자리에 선 적이 있어요. 그때도 제가 살아온 이야기만 떠들다 한마디만 전했습니다. ‘어른스러워지지 말아라'. 사실 가르치는 것과 플레이의 세계는 완전히 다릅니다. 할리우드에 있을 때 현장의 보이스코치에게 접근해서 열심히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정작 그에게 제 단편 영화 출연을 요청했더니 엉망진창으로 NG를 내더군요(웃음). ”

-문득 이병헌의 화법이 영어와 한국어에서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웃음). 머릿속에 통역기를 거치는 게 아니라 아예 스위치가 바뀌는 거예요. 가령 “(벌떡 일어나 버럭 화를 내며)하지 마"하는 것과 “(침착하게 눈을 맞추며)Don’t do that!” 하는 건 뜻은 같아도 몸의 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요.”

인터뷰 자리에서도 순식간에 감정의 급커브를 도는 ‘액팅'에 전율이 일었다.

-한국 나이로 마흔여덟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우리는 더 나아질까요? 아니면 전성기 시절을 그리워하며 근근이 자기 복제로 연명하게 될까요?

“절정의 시기라는 건 있습니다. 가수로 치면 고음이 최고로 올라갈 때, 배우는 비주얼이 가장 아름다울 때죠. 목소리든 외모든 피치를 올리는 순간은 있지만, 표현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알면 그 노래나 대사는 깊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남한산성’이 좋았어요. 나이 드신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요(웃음).”

-미래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점점 좋은 과거를 축적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미래는 생각 안 해요(웃음). 다음의 도전만 생각합니다. 망해도 좋으니 현재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다.

-아들이 자라면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갇히지 말고 살아라. 자유롭게 놔둬라. 내가 타성에 젖을 때 채찍질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캐릭터가 들어와 있지 않을 때의 이병헌. 완전히 빈 캔버스같다.

-소년성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마음속에 나만의 나무 한 그루가 있어요. 자라면서 새로운 충고, 새로운 규칙들이 그 나무를 베어버리지 않도록 수시로 감시합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화가 강익중 선생의 전시를 위해 제가 보낸 한 줄의 메시지도 ‘모든 사람 안에는 열 살 짜리 소년이 살고 있다'였어요.”

-무서울 때는 언제인가요?

“배우 이병헌이 아니라 나 자신, 자연인 이병헌으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때요. 카메라 앞에서는 벼랑 끝에서도 두렵지 않은데, 나를 드러낼 때는 두려워요. 고백하자면 작은 무대에 설 때조차 신경안정제를 먹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 시상자로 설 때는 어땠나요?

“평소 먹는 분량의 4배의 신경안정제를 먹었어요. 그래도 떨려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어요. 긴장된 채로 여배우 소피아 베르가라와 팔짱을 끼고 무대로 걸어갔는데 거의 끌려간 느낌이었어요. 무대 뒤에서 미국 부통령과 농담을 했고, 갑자기 커튼이 열렸고 빛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웃음).”

-누구를 존경합니까?

“여배우 헬렌 미렌이요. 같이 작업하면서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품격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품격이란 게 뭐지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런 태도… 많은 걸 안고 가려 한다는 느낌이랄까요. 헬렌 미렌은 키 큰 사람과도 작은 아이와도 상대의 눈에 맞춰서 대화합니다. 훌륭한 배우이기 전에 훌륭한 사람이지요.”

이병헌은 몇 년 전 할리우드 차이니즈 씨어터 앞 스타 로드에서 손도장을 찍었다. 그 뒤에 손도장을 찍은 사람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헬렌 미렌이었다.

-여전히 삶이 꿈같은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악몽이고 때로는 미몽이죠.”

-남한산성엔 가보았습니까?

“어린 시절 놀이터였어요. 소풍 가면 무조건 남한산성이었죠. 어린 눈에 그곳은 웅장하고 크고 넓은 곳이었는데, 지금 가보니 가파르고 옹골차고 작은 산성이었어요. 어릴 때 놀던 곳에서 배우가 돼 영화를 찍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요. 그러고 보니 인생이 정말 꿈같군요.”

젊은 시절엔, 우리는 오후 3시의 카레이서같았던 이병헌의 건강한 치아와 웃음에 반했으나 이제는 그의 눈과 목소리에 스민 물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소년성을 간직한 중년의 배우로, 변함없이 그가 우리를 꿈꾸게 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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