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했죠".. 정가람, 연기를 사랑한 소년의 이야기 [인터뷰]

권남영 기자 2017. 10. 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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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가람. 매니지먼트 숲 제공


말간 얼굴에 반짝이는 두 눈. 가을햇살을 담뿍 머금은 듯 오묘한 빛을 뿜어낸다. 그 안에는 연기를 향한 열망이 그득 들어차 뜨겁게 일렁인다. 배우 정가람(24), 우리는 이 청년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영화 ‘4등’(감독 정지우·2016)을 봤던 관객이라면 이미 그의 이름 석 자가 각인돼 있을 터다. 반항기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더랬다. 두 번째 영화 ‘시인의 사랑’(감독 김양희)에서는 한층 더 깊어졌다. 극 중 시인(양익준)의 예술혼을 깨우는 소년 세윤 역을 맡아 관객의 마음마저 훔쳤다.

‘시인의 사랑’은 팍팍한 현실과 아름다운 시 세계에서 고뇌하는 시인 택기(양익준), 시인을 구박하면서도 세상에서 그를 가장 사랑하는 아내 강순(전혜진), 그리고 이들 앞에 나타난 세윤, 세 사람이 빚어내는 이야기다. 인용된 시구와 주옥같은 대사를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에 대해 고찰한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세윤에게는 섬을 벗어나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목표다. 그런 세윤의 간절함은 경남 밀양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배우를 꿈꿨던 정가람이 가졌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이 작품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유독 강한 끌림을 느낀 건 그래서였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난 정가람은 “나와 비슷한 세윤의 마음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대화의 시작부터 ‘도전’이란 단어를 꺼내든 배우. 그가 내뱉는 모든 말들에는 연기에 대한 진한 애정이 어려 있었다.

영화 '4등'(왼쪽 사진)과 '시인의 사랑'의 극 중 장면들.


-본인이 그린 세윤은 어떤 인물이었나.
“아픔이 많은 아이에요. 내면이 굉장히 복잡해요.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아름답게 보였죠. 특히 마지막에 세윤이 서울에 발을 디디는 부분에선 예전 제 모습이 생각 나 공감이 가더라고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서울에 올라왔던 때가 떠올랐어요.”

-실제로 서울행을 결정했을 때 굉장한 결심이 필요했겠다.
“네. 근데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모르는 게 용감하다고, 그때는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으로 서울에 왔어요. 당시 밀양은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도시였거든요. 거기만 빠져나오면 뭐든 되지 않을까 싶었죠. 서울에 처음 딱 도착했을 때의 설렘과 흥분을 잊을 수 없어요. 극 중 세윤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서울에 온 뒤 배우 지망생으로서의 삶은 어땠나.
“일단 아르바이트를 진짜 열심히 했어요. 부모님께서 내건 조건 중 하나가 ‘생활비는 네가 벌어서 쓰라’는 거였거든요. 친구 집에 싼값으로 들어가 살면서 전단지 돌리는 것부터 다양한 일을 했어요. 급여가 한 달 치로 나오면 생활이 안 되니까 일급으로 나올 수 있는 걸 찾아서요. 그게 진짜 방법이었죠(웃음). 그렇게 밥값을 하고, 돈 모아서 프로필 사진도 찍었어요. 그게 스무 살 때였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상경한 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는데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사람은 원래 몇 살이든 자기가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저도 무작정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던 거죠.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너무 커서 더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심이 참 대단했네.
“아니에요. 그때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올라왔어요(웃음).”


-그렇게까지 연기가 좋았던 이유는 뭐였을까.
“대학 때 소설 커머스 사이트 모델을 했던 게 계기였어요. 난생 처음 카메라 앞에서 촬영을 하는데 어색하면서도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사실 제가 원해서 택한 전공이 아니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뭘까’ 고민이 많던 시기였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본 편이에요. 영화광이셨던 아버지를 따라서 일주일에 세네 편 정도는 봤거든요. 알게 모르게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던 모양이에요.”

-연기학원을 다닌다거나 정식으로 연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있나.
“그럴 여력은 없었어요. 제가 번 돈으로 모든 걸 충당해야 했기 때문에 연기학원을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거든요. 그냥 혼자 인터넷 검색해서 영상을 많이 찾아보면서 무작정 따라했던 것 같아요.”

-당시 따라해 봤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제 롤모델이 신하균 선배님이시거든요. 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좋아한 배우였어요. 자연스럽게 그 분이 출연하신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서 한 구절씩 따라해 봤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뭔가를 진심으로 즐기며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을 했나.
“그렇진 않았어요.”

-그런 믿음이 있어야 본인 선택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나.
“저는 진짜 끼가 없어요. 주위 사람들도 다 그렇게 얘기했죠. 되게 낯가리고 조심성 있고 말도 잘 못하는 성격인데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까 부모님도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겠어요(웃음). 전 그냥 연기하는 게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그래서 더 해보려고 한 것 같아요. 끼가 없으면 힘든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좀 더 노력하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처음에는 오디션에서 많이 떨어졌었다고 들었다.
“굉장히 많이 떨어졌죠. 떨어질 때마다 주위에서 ‘넌 끼가 없어서 안돼’라는 얘기를 듣다 보니 자신감도 없어졌어요. 진짜 힘든 시기였어요. ‘내가 너무 많이 부족하구나.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친구들은 이쪽 일을 잘 모르니 그런 고민을 공감해줄 수 없잖아요. 혼자 끙끙 앓는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생각이 유연해졌어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갖자. 나는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 다짐하면서 더 이 악물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오디션에 처음 붙었던 때가 혹시 기억나나.
“단역은 여러 번 해봤는데, 뭔가 작품 안에서 나를 보여줄 수 있었던 건 ‘4등’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4차까지 오디션을 보면서 정말 절박하게 매달렸어요. 정말 목숨 걸고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절실했던 이유가 있다면.
“그 당시에 최종(오디션)까지 가서 매번 떨어지던 시기였어요. 너무 힘들었죠. 그러다가 ‘4등’ 오디션을 봤는데, 2차 때 감독님을 만나 처음으로 배우로서 의견을 나누고 감독님 디렉션을 받으며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분이랑 함께하면 진짜 더 힘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보통 오디션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그때는 감독님께서 제 안의 모든 걸 다 끄집어내주셨던 것 같아요.”

-본인에게 ‘4등’이란 작품이 지니는 의미가 남다를 듯하다. 대종상 신인남우상까지 안겨주었고.
“개봉 전까지는 굉장히 무서웠어요. 내가 영화를 망친 게 아닌가 불안했죠. 반응은 좋다고 하는데 저는 괜히 부끄럽기만 했어요. 그런데 ‘4등’ 덕분에 제게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잖아요.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죠. 감독님께서 부족한 저를 잘 보듬어 주셨죠. 저는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첫 작품부터 큰 주목을 받아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았나.
“저는 제 연기에 대해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좋다고들 해주시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망을 안겨드리는 게 굉장히 무섭더라고요. 그래도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도전하는 것에 의미를 두자. 아직 젊으니까 얼마든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잖아요. 한번 삐끗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죠.”

-‘시인의 사랑’ 이후 차기작 ‘악질경찰’ ‘독전’이 기다리고 있다. 쉼 없이 일하는 요즘, 행복한가.
“네. 너무 행복하죠. 진짜 너무 행복하게 일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게 많으니까, 나의 부족함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 고민하면서 행복해하고 있어요. 그래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어디에요(웃음).”

-배우로서 그리고 있는 최종 목표는.
“지금처럼 꾸준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아직은 신인이지만, 나중에는 전도연 선배님처럼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제 목표에요. 배우로서 인정받는 게 꿈이죠. 그러기 위해선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많은 시간도 필요할 테고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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