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마다 30일 동안만 만날 수 있는 연인, 이 사랑의 끝은?
[오마이뉴스 신상미 기자]
▲ 타카토시와 에미는 붐비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만난다. |
ⓒ (주)디스테이션 |
연인들이 부모의 반대에 부딪치거나 어느 한 쪽이 불치병으로 죽거나, 서로 오해가 쌓여 원치 않게 헤어지는 등의 설정이 끊임없이 반복돼 왔는데, 서로 사랑하지만 함께할 수 없는 스토리를 얼마만큼 설득력 있게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내는가에 작가의 역량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도 운명처럼 만난 어린 연인들이 서로를 몹시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이야기를 애잔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에 집중한다. 영화에서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산다. 둘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 교토의 명소를 배경으로 둘의 사랑이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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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작부터 사랑에 빠지는 남자 타카토시(후쿠시 소우타 분)를 등장시킨다. 그는 달리는 전철 안에서 에미(고마츠 나나 분)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영화 시작 후 겨우 세번째 컷만에 일어나는 일이다. 타카토시는 모범생에 얌전한 대학생이지만 용기를 내 에미를 따라가 감정을 고백한다. 그 후에 잔잔히 펼쳐지는 둘의 데이트는 스무 살 청춘들의 소소한 일상에서 유별날 것이 없지만 순수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젊은 관객에겐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맘이 들게 하고, 나이든 관객에겐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매 컷마다 다른 영화에서도 봤음직한 교토의 유명 장소가 등장하고, 첫사랑의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채워진다. 두 사람 다 완벽한 마스크라 프레임에 꽉차게 잡아도 결점을 찾을 수 없고 몰입도를 높여준다.
둘은 고풍스러운 카페에도 가고 벚꽃이 핀 밤거리를 걷기도 한다. 한국 영화에선 보통 배우들의 대사에 집중하면서 공간 특유의 주변음은 두드러지지 않는데, 일본 영화는 카페 내의 자연스러운 소음, 밤거리를 가득 메운 연인들의 속삭임 같은 사운드 디자인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느껴졌다. 그에 따라 영화 속 공간이 더 입체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다.
▲ 타카토시는 에미의 비밀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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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엔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끝과 끝을 이은 고리가 되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대사가 두 번 등장한다. 둘의 사랑이 30일 이후에도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철도의 레일을 보여주는데, 무심히 펼쳐지는 이 이미지는 둘의 인연이 끝이 이어진 고리처럼 서로 맞닿아 있다는 시각적 메타포에 다름 아니다. 또 둘은 전철역에서 만나 전철역에서 이별한다. 이 영화가 구축한 세계는 어찌 보면 허술하고 조잡하고 황당한 판타지의 세계이지만, 나름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으며, 차곡차곡 쌓은 비밀을 하나하나 드러내는 방식이 설득력 있게 연출됐다. 12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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