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사냥꾼' 왕치산에 추풍낙엽처럼 숙청된 거물들
전 상무위원 저우융캉, 전 군부 서열 2위 쉬차이허우·궈보슝 연이어 낙마
현직에 있는 링지화 통일전선부장도 숙청의 칼날 못 피해
英이코노미스트 "王은 공포를 무기로 휘두르는 악마"
거물급 부패 관료 숙청을 '호랑이 사냥(打老虎)'이라 부르는 시진핑 체제에서 부패 사범의 숙청을 주도한 왕 서기는 공산당의 '호랑이 사냥꾼'으로 악명 높았다. 기율위 측에 따르면 지난 4년여동안 총 200여명의 고위간부가 중앙기율위의 조사를 받았다.
왕 서기의 반부패 사정에 대한 내외부의 평가는 엇갈린다. 중국 공산당은 왕 서기가 "청렴결백한 포청천"이라고 칭송했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왕 서기를 "공포를 무기로 휘두르는 악마"라고 지칭했다.
왕 서기는 2012년 말 기율위 서기로 취임하자마자 그해 은퇴한 저우를 겨냥했다. 이듬해엔 저우 측근들의 여권을 몰수하고 24시간 감시에 들어갔으며, 미국에 있던 저우의 아들 저우빈(周斌)을 잡아와 베이징에 가택연금하며 저우의 숨통을 조였다.
이후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2014년 12월 저우는 뇌물수수 및 기밀유출 등의 혐의로 공산당 당적을 박탈당하고 체포됐다. 이듬해 6월 법원은 저우에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저우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사법과 공안을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저우가 결국 또다른 권력자의 손에 정치 생명을 마감한 것이다.
이듬해 시 주석이 7대 군구를 5대 전구(戰區)로 재편하고 집단군(군단급) 18개 중 5개를 해체하는 대대적인 군 개혁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왕 서기가 군부 반발의 싹을 철저히 잘라 놓은 덕분이었다.
쑨은 시진핑 주석이 퇴임하는 2023년에 국가 주석이나 총리직을 차지할 것으로 점쳐지던 전도유망한 정치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 7월 15일 전격 경질됐다.
왕 서기는 쑨의 경질 3일 후 관영 언론 인민일보에 장문의 기고문을 싣고 기율위의 현장 순회 감찰 조직인 ‘순시조(巡視組)’의 업무와 성과를 소개하며 엄정한 당내 기율 확립을 강조했다.
이에 올해 초부터 순시조로부터 보시라이(薄熙來) 전임 서기의 적폐 청산에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아 온 쑨이 해임된 배경엔 왕 서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쑨이 해임된 자리엔 시 주석의 핵심 측근인 천민얼(陳敏爾·57) 구이저우(貴州)성 서기가 기용됐다. 경질된 링 대신 통일전선부장 자리에 오른 쑨춘란(孫春蘭)에 이어, 왕 서기가 부패 혐의로 고위 공무원을 제거하면 그 빈 자리에 시 주석이 자신의 측근을 채워넣는 인사가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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