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희 씨의 제주 책방 아베끄(AVEC)

매거진 2017. 9. 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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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끝에서 사랑을 나누다

숱한 여행 끝에 제주도 해변 어느 골목길 안에서 낡은 집을 만난 그녀. 운명처럼 이끌린 그 집은 이제 그녀가 해석한 사랑을 읽고 나누는, 작은 책방으로 변신했다.


북스토어 아베끄를 지키는 강수희 씨(우)와 이금란 씨(좌). 둘은 고교 시절부터 프랑스어 수업을 함께 듣던 친구사이다.  


오솔길을 걸어 끝에 닿으면 펼쳐지는 아베끄의 마당. 격자문이 있는 동이 책방과 북스테이로 쓰인다. 



# 북스토어, 북스테이 AVEC

주소를 묻자 그녀는 집을 쉬이 찾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전국을 종횡무진하는 것이 일인 만큼 이번 주인공을 찾아가는 길도 내심 만만하게 보았다. 하지만 차는 큰 길가를 맴돌다 결국 그녀와 세 번의 통화를 하고나서야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제주도 한림의 오래된 주택가 사이, 무화과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잔디 오솔길이 이어지는 길 끝에서 ‘북스토어 아베끄’를 만났다.

“여기가 눈에 잘 띄는 곳은 아니잖아요. 해변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골목 안에 있고. 그런데 손님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세요. 신기하더라고요.”


몇가지 아이템이 올려진 수수한 느낌의 데스크


책방 주인장인 강수희 씨가 수줍게 문을 열고 안내를 한다. 그녀는 서울에서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4년 전 제주에 내려왔다. 그동안 이전의 조그만 제주도 집에서 생활하며 동네 도서관 사서일 등을 해왔던 그녀는 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그 김에 오래된 옛집을 고쳐 작은 책방 겸 북스테이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사랑’을 주제로 삼은 책방 아베끄. 기성 출판사에서 나오는 신간 서적뿐만 아니라 독특한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담고 있는 독립 출판 서적, 그리고 기증받아 판매하는 헌책까지 다양한 책을 품고 있다.


아베끄를 찾아오는 손님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귀여운 안내판  /  텃밭이었던 공간은 데크를 깔고 푹신한 쿠션과 테이블을 놓아 독서공간으로 꾸몄다. 인터뷰 중에 동네 다른 친구와 그녀의 반려견인 ‘덕구’가 놀러왔다. 


“헌책은 기증 전에 미리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기증자가 어떤 사람인지, 이 책이 본인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 알아보고 판매를 결정하고 있어요.”

기증받은 책의 해당 칸 위에는 기증자에 대한 소개 메모가 적혀있고, 책의 앞 페이지에는 다음에 읽을 사람에게 전하는 기증자의 메시지를 받아놓았다. 그래서 이곳의 헌책은 단순히 재판매에 그치지 않고 책에서 느낀 감성까지 함께 오고 간다. 더욱이 헌책을 판매한 수익의 일부는 동물보호단체에 기부돼 의미가 더 크다.


바다가 보이는 창문가에는 독립 출판 서적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헌책 코너 옆 칠판을 옆으로 밀면 방 하나가 나타난다. 북스테이를 즐길 수 있는 사랑방, ‘오! 사랑’이다. 샤워실과 안락의자가 갖춰진 이 공간에서 고즈넉한 제주도와 함께 책방을 하루동안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옛집을 활용하는 만큼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부분 등 일반적인 숙박시설에 비하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독서 분위기를 환기하고 더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게끔 한다.


• INSIDE AVEC •

➊ 수희 씨가 외국 책방을 다니며 하나 둘 사 모은 에코백이나 상품들  ➋ 북스테이를 할 수 있는 사랑방 ‘오! 사랑’의 슬라이딩 도어는 방문객을 위한 웰컴 메시지 보드의 역할을 한다.


➌ 헌책 코너에는 책과 함께 그 책을 기증한 이에 대한 간단한 소개 메모가 부착되어 있다.  ➍ 기증자는 기증 전 책 앞 페이지에 다음에 이 책을 읽을 사람에게 전할 메시지를 적는다. 인사말이나 감상을 적기도 한다.


➎ 아베끄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목공예품 ‘책찌’와 가죽 책갈피. 책찌는 엄지에 끼워 책 가운데를 쥐면 한 손으로도 편하게 독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재미난 아이템이다.



# 골목길 속 작은 보물상자 AVEC

위치가 위치인 만큼 책방을 할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수희 씨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더 큰 매력을 느꼈단다. 연세*가 크게 올라 이전에 살던 집에서 나오면서 지인의 소개로 여러 집을 만났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집이었다.

“마을 구석에 있고 거기서도 입구까지 오솔길을 더 걸어들어가는 데다 지금보다 관리가 안돼 잡초가 무성한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 오솔길과 함께 나타나는 집은 감동이었죠. 수리 때 동네 분들도 와서 보시곤 이런 곳이 있었냐면서 놀라시더라고요.”

*연세 : 제주도 특유의 임대 방식으로, 임대료를 연단위로 지급한다.


북스테이를 즐길 수 있는 사랑방, ‘오! 사랑’의 모습. 부드러운 톤의 실내 인테리어와 안락의자가 독서를 돕는다.  /  ‘오! 사랑’의 세면실. 바닥 공사할 때 동네 고양이가 들렀다가서 바닥에 발자국이 남았는데 그 흔적도 사랑스러워 그대로 남겨뒀다.  


샤워실도 없고 화장실도 떨어져 있는 데다 보일러며 각종 시설을 수리해야 했던 집이었다. 이전까지 해녀 할머니가 지냈다는 집을 물려받은 집주인은 은퇴 후 허물고 건물을 다시 올릴 예정이니 그 전까지는 마음껏 알아서 꾸며보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던 이 집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빌려 수리하게 되었다.


아베끄의 신간 코너. 사랑을 주제로 한 책들이 책장 가득 꽂혀 있다.


책장을 정리하는 수희 씨


“집을 이루는 두 채 중 살림용으로 쓰는 한 채는 제가 직접 회칠을 해가며 수리했어요. 집을 고친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책방 공간은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는데, 적잖은 공사비가 든 터라 벌충하고자 다시 서울에 다시 올라가 일을 하고 있네요(웃음).”

수희 씨는 제주에 와서 방송작가 일을 함께 잠시 내려놓았지만,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어 주중 에는 서울에서, 그 외에는 제주에 와서 책방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함께 도와주고 있는 친구 금란 씨가 있어 어찌 잘 꾸려나가고 있다고.



# 그 책방의 이름은 AVEC

수희 씨는 사랑이 테마인 책방 이름을 고민할 때 우연히 들은 노래의 제목 ‘취미는 사랑’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가 고교 시절부터 발음이 아름다워 좋아했던 프랑스어 사전을 꺼내 들었다.

“흔한 단어를 지나치다가 어느 순간 ‘AVEC’라는 단어를 봤어요. ‘함께’라는 의미인데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사랑의 형태든 함께하는 것이니까 여기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죠.”


아베끄 뒤로는 제주도 특유의 텃밭과 작은 저수지가 자리해있다.  /  수희 씨가 이 집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에 깊게 남았던 부분이 바로 이 오솔길이다. 


책방을 시작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었던 동료 작가에게 상담차 연락했을 때, 그 작가는 채팅방 너머에서 마침 ‘AVEC’라는 제목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고. 그 사실에 서로 무척 놀랐던 수희 씨는 마치 운명과도 같은 단어라고 생각했고, 그대로 책방의 이름으로 정해졌다.

“그러고 보면 책방 이름 덕분인지 정말 필요한 때에 많은 분께 도움을 받았어요. 인테리어, 집수리, 책방 운영, 상담, 상품 제작하며 이웃, 손님, 그리고 지금 일을 도와주는 친구까지. 저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여서 책방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죠.”

마당에서 아베끄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수희 씨의 눈에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이 책방에는 앞으로 어떤 이들이 찾아올까? 수희 씨는 지금도 책방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공간을 사랑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북스토어 아베끄_ www.instagram.com/bookstay_avec

취재_ 신기영  |  사진_ 변종석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7년 9월호 / Vol.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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