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필카,구닥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젊은이 사진 감성

홍상지.하준호 2017. 8. 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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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해시태그 '#gudak'으로 검색되는 구닥 사진들. [인터넷 캡처]
두 명 정도 들어갈만한 좁은 공간에 앉아 화면을 응시한다. '셋, 둘, 하나(three, two, one).' 셔터 소리와 함께 그 순간의 표정이 화면에 담긴다. 그렇게 총 네 컷을 찍고 사진이 현상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40초 남짓이다. 흑백으로 담긴 내 모습을 다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 '#흑백사진 #포토그레이'

28일 오후 서울 이태원 한 편의점 앞에 설치된 즉석 흑백사진기 부스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 덕분에 1분도 채 안돼 흑백 '아날로그' 사진(종이에 인화된 사진이라는 의미)이 나왔다. 가격은 네 컷에 3000원, 카드 결제도 가능했다. 어떠한 보정도 가해지지 않은 사진은 얼핏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 사진)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28일 서울 이태원의 한 편의점 앞에 설치된 포토그레이 부스. 홍상지 기자
28일 포토그레이 기기로 기자가 직접 찍은 사진. 흑백사진이지만 실물보다 잘 나온 것 같다. 홍상지 기자
이 흑백사진기의 이름은 '포토그레이'다. 요즘 전국 시내 곳곳에 설치되고 있는데 주말엔 기계 앞에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친구·연인들이 줄을 선다. 수년 전 유럽에서 먼저 유행하기 시작한 포토그레이를 두 달 전쯤 국내에 처음 들여온 정용승 포토마통 대표는 "이번달 전국에 기기 15개를 설치했는데 다음달에는 60개 이상으로 늘어난다"며 "예약이 밀려 지금 예약하면 10월에나 기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인 포토그레이오리진 측도 "지난 7월 말부터 부스를 운영해 현재 전국에 40여 대를 설치했다.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뜨거워 놀랐다"고 설명했다.

이쯤되면 누군가에게는 "도대체 왜?"라는 물음표가 달린다. 평범한, 오히려 그 흔한 '뽀샵(포토샵)' 한 번 할 수 없는 흑백사진일 뿐인데 말이다. 28일 흑백사진기 부스 안에 들어가 사진을 연속으로 세 번이나 찍은 김은경(24)씨 일행에게 이유를 물었다. "재밌잖아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이다.

누군가는 '구닥다리'라고 할만한 것들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트렌드'다. 특히 사진이 그렇다. 흑백사진·필름사진 등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나는 사진에 반응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최근 스마트폰 앱 시장에서 유료앱 인기 다운로드 1위 앱은 지난달 7일 출시된 '구닥 캠(Gudak Cam)이다. 스마트폰으로 필름 카메라 풍의 '아련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앱이다. 실제 필름 카메라처럼 24장을 찍으면 3일이 지나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느리다. 불편하다.

구닥을 쓰고 있는 회사원 강요셉(26)씨는 오히려 그게 매력이라고 했다. "3일 정도 기다리는 시간이 설레기도 하고 24장 찍으면 5~6장은 빛 번짐이 좀 심하게 나오는데 그것도 기다려서 받은 거라 그런지 소장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성격 급한 사람들은 휴대전화 설정 날짜를 임의로 변경해 사진을 바로 받아보기도 한다. 아날로그를 취하고자 디지털 세대가 만들어 낸 일종의 '편법'이다.
스마트폰에서 구닥 앱을 처음 가동했을 때 화면. [모바일 캡처]
스마트폰 앱 구닥으로 찍은 일상의 사진들.
스마트폰 앱 구닥으로 찍은 일상의 사진들.
27일 기준으로 전세계 구닥 이용자 수는 57만3500명이다. 한국 뿐 아니라 홍콩·대만·태국 등 해외 8개 국가에서도 유료앱 분야 1위다. 구닥을 만든 업체 '스크류바'의 조경민 마케팅팀장은 "주어진 24장을 일상 생활 속에서 인상 깊은 장면들을 찾아 찍는데 '일상에서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는 이용자 분의 이야기가 가장 와 닿았다. 이들에게 더이상 기다림은 불편함·답답함이 아닌, 설렘이다"고 말했다.

필름 카메라(필카)를 애용하는 이들도 있다. 직장인 정미진(30)씨는 날씨가 좋을 때, 여행에 갈 때 늘 필카를 챙긴다. 정씨는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가 정말 내 눈에 비치는 현실을 찍는 느낌이라면 필카는 추억을 찍는 느낌이다. 결과를 스마트폰 사진첩 속 사진 삭제하듯 바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점도 불편하기보다 되려 인간적이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세대에게 디지털은 그저 차고 넘쳐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아날로그는 신선한 것,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유니크'한 것이 된다. 기성세대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구닥다리' 문화 열풍에 대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보다 더 새롭고 흔치 않은 것에 열광하는 것, 어찌보면 이 현상은 너무나 당연하다."

홍상지·하준호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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