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비리포트] 본능적인 1루 슬라이딩, 안해야 산다

조회수 2017. 8. 15. 1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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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플레이'의 상징인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지양해야 하는 이유
13일 끝내기 내야안타를 기록한 두산 오재원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장면(사진: 두산 베어스)

2-3위 결정전으로 관심을 모은 지난 13일 두산과 NC의 대결은 최후의 순간 비디오 판독으로 승패가 갈렸다.

9회말 NC 내야진의 결정적 실책에 힘입어 가까스로 1-1 동점을 만든 두산은 이후 안타와 사구를 묶어 1사 만루 끝내기 찬스를 잡았다. 바뀐 투수 이민호가 민병헌을 삼진처리하며 이어진 2사 만루.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오재원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볼카운트 1-1에서 맞이한 3구째. 오재원은 이민호의 152km 낮은 속구를 공략했다.

빗맞은 타구는 투수 옆을 스쳐 유격수 쪽으로 굴러 가는 느린 땅볼이 됐고 전력질주하던 오재원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1루 베이스를 지나쳤다. 원심은 아웃 판정이었다.

# 비디오 판독 끝에 끝내기 결승타를 기록한 오재원

그리고 바로 신청된 비디오 판독. 7분 가량 양 팀 선수단과 팬들의 피를 말리는 시간이 흘렀다. 중계 영 상만으로는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 결국 판정은 뒤집혔다. 두산이 극적인 역전승으로 2위를 탈환한 것이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데쟈뷰처럼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바로  2014 월드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나왔던 캔자스시티 로열스 에릭 호스머의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었다.

2대 2로 팽팽히 맞서던 3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호스머가 2루수 방면 깊은 땅볼을 쳤다. 깊은 타구였지만 2루수 조 패닉이 다이빙 캐치 후 글러브 토스로 1루 주자를 아웃시켰다.

곧바로 유격수 브랜든 크로포드가 1루로 송구했지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간 호스머는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이때 브루스 보치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고, 결국 판정은 아웃으로 번복됐다.

# 2014 월드시리즈 7차전- 아웃이 되고 만 호스머의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패닉의 진기명기급 호수비로 기억될 이 장면이 다시 회자된 것은 경기 이후 미국의 유명 과학자이자 방송인인 빌 나이(Bill Nye)가 자신의 SNS에 남긴 짧은 논평 때문이었다.

출처: 빌 나이 SNS

그는 '1루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하는 경우 주자는 느려지며 어쩌면 그것 때문에 캔자스시타가 경기를 내준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남겼다. 실제 캔자스시티는 최종전에서  2-3, 1점 차로 패하며 샌프란시스코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내줬다.

1루까지 그냥 달리기 vs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뭐가 더 빠른가?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빠른가'는 사실 해묵은 논쟁거리다. 과거에는 많은 코치와 선수들이 부상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할 경우 세이프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수들은 자신의 투쟁심을 어필하는 플레이로 자주 시도하곤 했다.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기 전까진 실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시 발생할 수 있는 흙먼지가 심판의 시야를 방해하고, 심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세이프 판정을 받을 가능성을 높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 제도가 도입되며 심판과 상대 벤치를 속일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줄었다.

시각적으로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1루까지 그냥 달리는 것보다 빠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실제 측정된 결과는 다르다. ESPN, MLB Statcast 등 많은 매체에서 그냥 달리는 것이 슬라이딩보다 더 빠르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들을 내놓았다. 

앞서 말한 호스머의 사례에서도 MLB Statcast의 측정 결과 슬라이딩하기 전 최대 18.1마일이던 속도가 슬라이딩을 하면서 15.8마일로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방송사에서도 실제 실험을 통해 그냥 달리는 것이 빠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실험TV] 1루 '슬라이딩 vs 달리기' 비교해보니.)

# 그냥 '달리기' vs 1루 '슬라이딩 기록 비교

국내 방송사의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결과 그냥 달리는 것이 0.018초 빨랐다. (출처: KBS 화면 캡처)
그냥 달리는 것과 1루 슬라이딩의 격차는 평균 12cm로 생사를 가르기에 충분한 차이였다. (출처: KBS 화면 캡처)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반드시 지양해야 할 이유는 중요한 상황에서 시도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호스머의 상황이 그랬고, 13일 오재원도 그랬다. 

만약 당일 경기에서 본능적인 슬라이딩 대신 내처 달렸다면 비디오판독까지 갈 것도 없이 끝내기 승리의 기쁨을 즉시 누렸을 확률이 매우 높다. (시스템 상의 한계로 오심이 많은  비디오 판독센터로서도 판독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당시 상황이 매우 부담스러웠으리라 추정된다.)  

1루에 슬라이딩을 시도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간혹 있긴 하다.  1루수가 베이스에서 떨어진 경우 태그를 피하기 위해  슬라이딩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1루 슬라이딩은 아웃 당할 확률만 높이는 비효율적인 플레이다.

1루를 향해서는 전력질주하는 것이 최고의 허슬플레이다. ⓒ 두산 베어스

비디오 판독이 도입된 현 시점에서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백해 무익한 플레이다. 그냥 달리는 것보다 느리고, 부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현저히 높이는 위험한 플레이다.

1루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허슬 플레이'로 착각해 권장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팀 승리와 선수 생명을 위해서는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현대 야구에서 사라져야 할 적폐다.

안해야 된다는 것은 알지만 상황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시도하게 된다는 항변이 많다. 본능이 시킨다면 어쩔 수 없다.  자기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끊임없이 다음 두 문장을 되뇌는 수밖에. 

"1루를 향해서는 그냥 달려라. 그게 최고의 허슬 플레이다. "

(관련 칼럼: '뛰는게 손해' KBO의 도루, 성공률을 높여라 )

[기록 출처 및 참고 : 야구기록실 KBReport.com, 스탯티즈, KBO기록실, mlb.com ]


김정학 기자 / 길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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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공: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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