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_this week] 백팩은 언제부터 '열일'의 상징이 되었나

유지연 입력 2017. 8. 6. 00:49 수정 2017. 8. 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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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조승우 검사의 백팩 패션
문재인의 사람들, 백팩 즐겨 매는 이유
정장에 매치한 백팩에 깃든 패션 코드
넥타이까지 갖춰맨 회색 수트에 백팩을 매치한 조승우. 극중 역할은 검사다. [사진 드라마 비밀의 숲 화면 캡쳐]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비밀의 숲(tvN)’에는 정장에 백팩(back pack·배낭)을 맨 검사가 등장한다. 바로 주인공 조승우(황시목 역)다. 말쑥한 회색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춰 매고 검은 정장 구두를 신었지만, 깔끔한 수트케이스 대신 그가 선택한 가방은 두툼한 검은색 백팩이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는 활동적인 검사에게 백팩은 자연스럽다. [사진 드라마 비밀의 숲 화면 캡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백팩 패션. 5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물론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수트에 백팩은 이미 많은 직장인 남자들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패션이다. 다만 우리 사회 안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사법부 공무원, 검사의 차림새로서는 이례적이긴 하다. 마치 탐정처럼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활동적인 검사 캐릭터의 성격을 고려해도 말이다. 함께 등장하는 검사 중에 수트에 백팩을 매는 이는 없다는 것은 백팩이 조승우(황시목 역)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하나의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최근 정치권의 풍경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수트에 백팩이 딱딱하게만 보였던 고위 공무원 집단에 부는 새로운 패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들이 보여준 백팩 패션 덕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동연 부총리, 김은경 환경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이 출근길 패션으로 서로 맞춘 듯이 정장에 백팩을 매치하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백팩 패권주의’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검사와 장관, 그리고 부총리까지, 모두 수트에 백팩을 매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의 백팩 패션. 청문회 준비 당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패셔너블’에서 실용적인 이미지로
2004년 방영된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일'에서 정장에 백팩 패션으로 화제를 모았던 조인성.[사진 화면 캡쳐]
본래 남자 수트에 백팩은 수트에 운동화만큼이나 언밸런스한 조합이다. 2004년에 방영된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SBS)’에서 재벌 2세로 등장한 조인성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인성은 말쑥한 수트에 백팩을 매고, 스니커즈를 신어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였다. 스니커즈와 백팩이라는 뉴요커 스타일의 아이템을 딱딱한 수트에 자유자재로 믹스매치해 호평을 받았다. 이후, 조인성 스타일은 센스 있는 직장인 스타일의 교본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곤 한다.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백팩은 이제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는 직장 남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너무 흔해서 이제는 진부해 보일 정도다. 완전히 대중화되었다는 얘기다. 수트에 백팩 패션이 대중화되면서 또 다른 이미지가 생겼다. 실용적이고 젊다는 이미지다. 사실 백팩이 이렇게 대중화되기까지의 팔할은 백팩의 실용성 때문이다. 어떤 가방보다 많은 짐이 들어가고, 또 어떤 가방보다 편하다. 게다가 업무의 주 연장인 노트북을 넣고 다니기 제격이다. 한 손에는 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요즘 사람들에게 양손의 자유를 선사한다는 점도 주효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정장에 백팩을 즐겨 매치한다. 종로구 외교부청사에 출근하고 있는 모습. [사진 중앙포토]
백팩으로 격식 타파하기 백팩은 필연적으로 그 안에 들어있는 노트북을 떠올리게 한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 연구소 소장은 정치권 인사들의 백팩 패션에 대해 “정장을 입어 격식은 갖추면서도 고루하거나 딱딱한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백팩만한 아이템이 없다”며 “그 안에 들어있을 것으로 추청 되는 노트북은 수첩이나 서류가 아닌 실제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즉 직접 일을 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일 ‘격식 파괴’를 선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사람들이 백팩을 즐겨 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딱딱한 서류나 수첩이 들어있는 수트케이스와 노트북이 들어있는 백팩 사이에는 확실히 간극이 있다. 노트북이 든 백팩을 매고 다니며 직접 업무를 챙기는 모습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타이에 백팩 패션으로 화제가 되었다. [사진 중앙포토]
━ 연예인부터 정치인까지, 남자들에게 백팩이란
지난 7월 15일 백팩 공항 패션을 선보인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키. [사진 MCM 제공]
한편 백팩은 스타들의 공항 패션의 단골 아이템이기도 하다. 박해진·하석진 등 남자 배우들의 스타일링을 맡고 있는 황금남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남자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패션 아이템이 바로 백팩”이라며 “실용성과 패션을 동시에 챙길 수 있어 남자들 사이에서 늘 관심 대상이 되는 인기 아이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쯤되면 백팩이야말로 남녀노소, 젊은층부터 중장년층, 말단부터 고위직까지 모두에게 열려있는 유일한 패션 아이템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만 수트에 백팩은 원래부터 짝이 맞는 조합은 아니었다. 물론 그 믹스매치가 매력이긴 하다. 다만 믹스매치를 넘어 불협화음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한 몇 가지 요령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수트에 백팩을 매치할 때 신발을 주의해 고를 것을 당부한다. 수트에 으레 신는 정직한 신사화보다는 캐주얼한 로퍼나 스니커즈가 어울린다는 얘기다. 물론 지나치게 캐주얼한 스니커즈보다는 가죽 소재를 사용하거나 얌전한 디자인의 스니커즈를 고르는 것이 좋다.
멘즈웨어 2017 FW 베르사체 컬렉션. 수트에 백팩을 맨다면 지나치게 단정한 신사화보다는 캐주얼 무드의 구두나 로퍼 등을 매치한다.
황금남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백팩을 맬 때 끈 조절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너무 길게 매도 다리가 짧아 보이고, 너무 짧뚱하게 매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며 “끈의 길이를 조절해 허리와 엉덩이 사이에 백팩의 아래쪽 끝이 오도록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또 끈이 양쪽에 있다고 해서 항상 양쪽으로 매라는 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쪽 끝을 한쪽 어깨에만 둘러매 편안함을 강조할 수도 있다. 무심하게 툭 걸친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연출하는 것이다.
멘즈웨어 2017 FW 디올 옴므 컬렉션. 백팩을 한쪽으로만 매면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릴 수 있다.
백팩은 실용적이면서도 멋스러운, 드문 남성 패션 아이템이다. 게다가 젊고, 활동적인 이미지까지 만들 수 있다. 수트와 매치하는 백팩 패션. 어쩌면 남자 패션의 새로운 클래식으로 자리잡을지도 모르겠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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