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궁 "반짝하기 보단 굵고 길게가는 당구선수로"

2017. 8. 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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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빌리어드뉴스 창간 인터뷰] 강동궁 ②
"정한 형 손목 샷, 재호 시원한 스트로크..다른 선수한테 많이 배워"
2015 세계선수권결승 패배 후 얻은 교훈 "방심은 절대 금물"
헐크답지 않은 비밀 "폐소공포증으로 비행기타면 가슴 조여"

2010년 전후로 극심한 슬럼프가 찾아온 ‘헐크’ 강동궁은 국가대표팀에서 만난 김정규 코치에 의해 제2차 진화를 완료했다. 그리고 절정의 감각을 자랑하던 그는 ‘운명의 2013년’을 맞이한다.

강동궁이 자신이 연습하는 한 당구장에서 큐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2013 구리월드컵 “인생 최고의 집중력”

“당구선수들은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아세요? 경기장이 시끄럽던, 상대가 누구든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아요. 오로지 테이블 하나만 딱 보여요. 주변이 다 어두운데 테이블만 밝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져요.”

2013년 9월, 구리월드컵에 출전한 강동궁이 그랬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나니 그런 ‘신세계’가 펼쳐지더라고요. 인생 최고의 몰입도였어요. 물론 대회에 임하는 각오가 다른 월드컵 때보다 더 비장했건 사실입니다. 제가 슬럼프를 겪는 동안 경률이(고 김경률 선수), 성원 형님(최성원 선수)이 차례로 월드컵 트로피를 들었는데, 제 자존심이 그 상황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2013 구리월드컵때 강동궁의 집중도는 16강전부터 더욱 큰 상승곡선을 그렸다. 상대전적 5전 전패를 기록하던 토브욘 브롬달을 12큐 만에 꺾은 것. 애버리지는 무려 3.333을 기록했다. 이후 강동궁은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오른다. 그전까지 8강이 월드컵 최고 성적이던 강동궁은 드디어 생애 첫 월드컵 우승을 코앞에 뒀다. 그 길목에서 만난 상대는 다름 아닌 다니엘 산체스.

“당시 솔직한 심정을 말하면, 산체스고 뭐고 다 이길 자신 있었어요. 예비 스트로크 감이 정말 좋았거든요. 신기할 정도로 샷 한 공이 제가 예상한 방향대로 가 맞았어요.”

실제로 강동궁은 산체스를 맞아 펄펄 날았다. 2이닝 하이런 10점 등을 올리며 7이닝만에 22:11로 휴식시간을 맞이했다. 이후에도 연속득점을 뽑아낸 강동궁은 12이닝째에 40점 고지에 선착했다. 점수는 40:25로 강동궁이 크게 우세한 상황. 후구 산체스가 심호흡 후 남은 공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3득점에 그쳤고, 헐크는 환호하며 펄쩍 뛰었다.

“무심(無心), 당시엔 아무 생각 없이 내 플레이에만 집중했어요. 그것이 우승의 원동력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비 스트로크 하면서 ‘난 잘할 수 있다’는 주문만 계속 되뇌었습니다. 샷 할 때는 ‘밀어칠까, 끌어칠까’ 이 생각만 했어요. 김정규 코치님께 배웠던 것들이죠.”

▲“굵고 길게가는 당구선수 되고파”

강동궁은 구리월드컵 이후 선수생활에 임하는 자세가 바뀌었다. 이전까지 최고의 자리만을 위해 달려왔다면, 지금은 그 영광의 순간을 오래 유지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이에 대한 최선의 방법을 “항상 당구에 대해 탐구하고, 매 경기, 매 샷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순간 반짝였던 선수가 아닌, 굵고 길게 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눈앞에 놓인 것들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구리월드컵’에서 배웠습니다. 그 자존심 강하던 제가 요즘엔 다른 선수들을 보고 배우려고 합니다. 저는 한국 선수니까, 특히 국내 선수들의 샷을 유심히 봅니다. 정한 형님(허정한 선수)의 손목을 이용해 가볍게 치는 샷, 재호(조재호 선수)의 현란하고 시원한 스트로크, 성원 형님(최성원 선수)의 묵직한 스트로크 등 배울점이 참 많습니다.”

샷 시범을 보이고 있는 강동궁
▲2015 세계선수권 교훈 “방심은 절대 금물”

세계적인 선수가 된 강동궁은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픈 말이 있단다. 2년 전, 2015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을 통해 배운 교훈이다. “후배님들, 스포츠에서 방심은 절대 금물이에요.”

2015년 12월 6일 오전 6시, 강동궁은 세계선수권 결승 무대에 섰다. 4강에서 2년 전 패배를 선사했던 산체스를 또 40:18(18이닝)로 꺾은 그였다. 한 달 앞선 11월, 세계 강자들과 경쟁해 ‘LG U+배’를 우승하는 등 절정의 감각을 자랑하던 강동궁. 이런 그가 결승에서 맞은 상대는 당시 세계 랭킹 1위 토브욘 브롬달이었다.

“그때까지 저는 브롬달에게 4연승 중이었어요. 자신 있었죠. 그런데 제 생애 가장 큰 무대인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브롬달에게 그만 덜미를 잡혔어요.”

‘2015 세계선수권’ 결승전은 뱅킹에서 선공을 잡은 강동궁이 리드했다. 공수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26이닝에 40:34로 40점 고지를 선점했다. 6점차, 그의 눈앞에 우승트로피가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브롬달의 집중력이 살아났다. 후구 공격에서 6득점하며 기어코 경기를 승부치기까지 끌고 갔다. “순간 정신이 멍했어요. 사실 40점을 올리고 ‘끝났다’고 생각했죠. 긴장의 끈을 놓은 상태였습니다.”

강동궁은 재차 집중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승부치기에서 단 1점만을 올렸고, 후구 브롬달은 침착하게 2득점에 성공해다.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타이틀을 눈앞에서 놓친 강동궁. 그는 “브롬달에게 거둔 이전까지의 승리를 다 무르고 그 1패와 바꾸고 싶었다”면서 “패배 후유증이 두 달이나 갔다”고 회상했다.

“가끔 꿈속에서도 당시 장면이 나와 잠도 많이 설쳤습니다. 평소 술‧담배를 안 하는데, 그땐 못 마시는 술도 찾았죠. 그런데 그 화근은 제 ‘방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더욱 멘탈 관리에 신경 쓰게 됐어요. 스포츠 선수라면 이런 부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은 없어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죠. 저는 심리학 교수에게 상담을 받습니다. 또 자신감을 불어넣는 주문을 외우기도 해요. 후배들도 꼭 자신만의 멘탈 관리법을 찾길 바랍니다.

▲“경률아, 술 한 잔 하고 싶다”

멘탈 관리뿐 아니라 ‘헐크’의 물리적인 당구 연습법도 궁금했다.

“선수들은 보통 당구장에서 살죠. 저는 주로 수원, 동탄, 분당쪽 당구장에서 연습해요. 사실 기술연습 시간은 한 시간도 채 안됩니다. 경기감각을 유지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요. 동호인과의 게임이 꽤 도움이 됩니다. 대신 경기 일주일 전에 제 최고의 샷 감각을 찾기 위한 ‘벼락치기’ 연습을 합니다. 하하”

연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강동궁은 친한 친구 한명을 떠올렸다. 고 김경률이다. 강동궁은 그를 ‘연습에 미친 남자’ ‘노력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저도 노력파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동료들이 경률이에게 ‘당구를 죽기 전까지 친다’고 했죠. 2000년대에 국가대표 생활하면서 친해진 친구인데, 사람들이 자꾸 저와 라이벌로 묶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 친구를 경쟁상대로 생각했나봐요. 경률이 이겨보려고 노력 많이 했죠. 한때는 경률이의 ‘잘해보자’는 격려도 곱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덜 성숙했던 것 같아요.”

두 친구는 다툼도 잦았다. 강동궁에 따르면 둘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다. 동질감도 강하게 느끼는 반면 성격상 ‘강함과 강함’, ‘불과 불’이 섞이다보니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난 뒤 강동궁은 그제서야 친구의 진심이 보였다. 고 김경률을 떠올리던 강동궁이 저 멀리 떠난 친구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경률아. 우리가 함께했던 시절이 너무 그립다. 너는 분위기 메이커였지. 지금은 네가 없으니 외국 나가면 너무 심심하다. 경기 끝나면 호텔방에서 같이 ‘히히’거리면서 놀고, 항상 선수들에게 술자리 제안하던 너였는데... 그런 부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느낀다. 친구야, 술 한 잔 하고 싶다.”

▲헐크의 ‘폐소공포증’…“마사지도 안 받아”

세계적인 선수가 된 강동궁. 하지만 그는 2015 11월 이후 전국대회 우승이 없다. 이에 대해 그는 “국내외 일정이 촘촘해 소화하기 조금 벅차다. 특히 국외일정까지 겹치면 부담감이 배가 된다”고 털어놨다.

“언론에 처음 털어놓는 건데, 사실 저는 ‘폐소공포증’이 있습니다. 심하진 않지만, 비행기를 타면 가슴이 조여오는 듯한 공포감이 들어요. 처음 국외대회에 나갈 때부터 그랬어요. 10년 넘게 그걸 참아왔더니 정신적으로 좀 지친 것 같아요.”

사실 그는 2015년에 국외시합 불참 선언을 했다. 실제로 그 해 2~3개 월드컵을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세계선수권에서 준결승이란 결과가 나왔다. 세계랭킹이 7위로 껑충 뛰며 월드컵 시드권자가 됐다. 그 바람에 국외대회 불참 선언을 철회했다.

마냥 튼튼할 것 같은 헐크는 이어 자신이 ‘직업병’이 있다고 고백했다. 당구선수들이 자주 걸리는 디스크 질환이다. 몸을 수그리고 목을 드는 동작이 많은 탓이다. 허리디스크 탈추는 두 번이나 발생했다. 어깨와 팔 근육이 뭉치는 건 예사다.

“허리디스크는 약물로 잘 치료하고 있는데, 근육 뭉치는 건 좀 힘듭니다. 마사지를 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당구선수들은 모든 근육이 자신의 샷에 맞춰져 있거든요. 마사지를 받으면, 그 감각대로 잡혀 있는 근육이 혹시라도 풀릴까봐 걱정이 되요. 저는 특히 그런 부분에 민감하거든요. 일상생활에서도 팔 근육에 무리가 가는 일은 절대 금합니다.”

본인을 "행복한 당구선수"라고 말하는 강동궁이 MK빌리어드뉴스에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해 보였다.
▲“나는 행복한 당구선수… ‘당구는 스포츠’다”

강동궁은 자신을 “행복한 당구선수”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분야 정상에 설 수 있는 스포츠선수는 흔치 않다는 것. 게다가 대한민국의 당구시장은 폭발적으로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 우리나라 3쿠션이 전세계 캐롬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강동궁은 이런 현실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언론의 관심이 특정 스타에만 치우쳐 있다는 것.

“한국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관심을 받고, 좋은 조건에서 운동하는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당구는 특히 그 폭이 더 좁은 것 같아요.”

또 강동궁은 MK빌리어드뉴스에 ‘당구는 스포츠’라는 점도 널리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당구장 하면 돈내기 하고, 담배연기로 자욱한 이미지를 떠올려요. 때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예전에 비해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어요. 올해 12월부터 당구장이 금연장소가 됩니다. 담배연기로 당구장을 꺼리던 여성‧학생 등 ‘당구 소외계층’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거죠. 당구는 스포츠입니다. MK빌리어드뉴스가 이런 부분을 짚어주는 당구전문 매체가 되길 바랍니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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