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권력 놀음에 베네수엘라 아이들은 굶주린다

김회권 기자 2017. 8. 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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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을 국가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마두로 정부

베네수엘라는 지금 핏빛으로 물들었다. 극심한 경제난은 베네수엘라를 전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불안정한 국가 중 하나로 만들었고, 정국 불안은 시위대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내전 위험성까지 거론한다.

‘차베스의 나라’였던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마두로의 나라’가 됐다.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이었던 시기엔 미국과 맞서는 볼리바르 동맹의 리더국이었던 베네수엘라다. 2005~2011년 차베스 정권은 세계 40여 개국에 약 82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지원을 했다. 오일머니로 만들어 낸 중남미 질서의 수혜자였다.

빈민과 빈국의 구세주였던 차베스가 사라졌다. 차베스는 암 투병 중 미래를 예견한 듯 후계자를 지목했는데, 현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였다. 마두로에 대한 지지를 부탁한 뒤 차베스는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언대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차점자와 1.6% 차이였으니 박빙의 승리였다.

 

차베스 대통령 사망 후 극심한 경제위기 

마두로가 들어선 뒤 유가가 곤두박질쳤고 물가가 상승했다. 극심한 경제위기와 인플레로 돈가치가 없어진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지폐는 화장실에서 사용될 정도였다. 경제 위기가 심해질수록 마두로 정부는 내부가 아닌 외부의 탓으로 돌렸다. 2015년 베네수엘라 총선에서는 야당인 보수파가 의석의 3분의2를 차지하며 압승했지만 오히려 정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제헌의회를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5월의 일이다. 

 

베네수엘라의 식량난은 매우 극심하다. 베네수엘라 최대의 곡물수입항인 푸에르토 카베요 부두에 빈 곡물수송 트럭이 도착하자 바닥에 남은 것이라도 챙겨가려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식량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사진=AP연합

 

“빈곤 지역의 급성 영양실조 어린이 11.4%”

의회 해산과 개헌 등 엄청난 권한을 가진 제헌의회 선거는 철저히 여당에 유리한 판이었다. 의석 545명 중 181명을 장애인, 노동자, 학생 등 계층 대표에게 주기로 했다. 마두로가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선거로 뽑지만 주도에서 2명, 나머지 지자체에서는 인구와 상관없이 1명을 뽑는다. 마두로 정부가 유리한 농촌에서 의원이 많이 뽑히는 구조다.

제헌의회 이야기가 나오자 반정부 집회가 거세졌다. 5월부터 약 3개월간 길 위에서 죽어간 사람이 100여명에 달했다. 사제 폭탄이 터지고 총탄을 맞는 등 ‘피의 저항’이 일어났다. 제헌의회 선거에는 6120명이 출마했지만, 야권이 선거를 보이콧하면서 모두 여당 후보로만 채워졌다. 7월30일 선거가 끝난 뒤 마두로는 “제헌의회 선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선거”라고 무시했다.

“충격적이었다. 베네수엘라 4개 주 중 위험이 높은 가난한 지역 20곳에서 5세 미만 어린이의 체중을 측정했다. 이번 측정의 목적은 급성 영양실조의 비율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작년 10월 조사에서는 8.9%의 어린이가 중증의 급성 영양실조에 직면해 있었다. 그때도 이미 높은 비율이었지만 이번에 또 상승했다. 4월 조사에서 위험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급성 영양실조 어린이가 11.4%에 달했다. 인도주의 단체가 식량 위기라고 선언하는 기준인 10%를 넘어선 결과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프란시스코 토로는 베네수엘라의 굶주림이 얼마나 혹독한지 자세히 설명했다. 아이들의 영양실조에는 베네수엘라 전체의 굶주림이 작동했다. 가난한 지역의 85% 가정에서 먹는 양이 줄었고, 44% 가정에서는 하루 종일 전혀 식사를 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34%는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처법을 사용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대처법이란 식량을 사기 위해 자산을 팔거나,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구걸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뜻했다. 작년 12월 계란을 먹을 수 있던 가구는 47%였지만 38%로 감소했고 64%가 마가린이나 식용유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34%만이 쓰고 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어린이의 영양실조다. 토로는 “베네수엘라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로 굶주리고 있다. 어린이 세대 전체가 발육 부진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는 인도적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헌의회를 반대하며 벌어지는 시위 현장에서 이미 사망자만 100여명이 나왔다. 흡사 전쟁터 같은 분위기다. © 사진=EPA연합

 

식량을 이용한 부의 축재, 그리고 권력 나눠먹기

‘폭탄은 나중에, 굶주림을 먼저 해결하라.’ 반정부 시위에 자주 등장하는 구호다. 마두로 정부는 이런 굶주림의 문제를 외부에서 찾고 있다. 석유 가격 하락이나 엘니뇨 같은 기상 이변이 주요 변명거리다. 반면 반정부 측은 정부의 부적절한 식량 시스템 통제야말로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여기서 앞서 언급한 마두로의 제헌의회 선거와 베네수엘라 국민의 굶주림에서 접점이 나온다.

마두로의 가장 큰 관심은 새로운 헌법을 제정해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새로운 헌법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이고 국가 권력을 새롭게 재편해 통제하는 게 마두로의 목표다. 그리고 통제의 주요 수단이 식량이다. 이미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 해 하반기, 식품배급제를 들고 나왔다. 만성적인 기초식품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기초식품 공급을 국가가 하겠다는 얘기였다. 사회당의 하부 조직인 지역 생산·공급 위원회(CLAP)가 식료품의 70%를 구매해 국민에게 직접 배급하는 방안이 공개됐고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행됐다. 

그런데 올해 6월 베네수엘라 국회에서는 야당 지도자인 카를로스 파파로니의 폭로가 있었다. 그는 CLAP의 배급에 부통령 측근인 베네수엘라 사업가 사마크 호세 로페스 벨로가 개입돼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제헌의회 선거 결과를 '승리'라고 표현했다. 그는 차베스의 후계자지만 차베스의 유산을 계승하기보다 하나 둘 탕진해버렸다. © 사진=DPA연합

 

베네수엘라 부통령인 엘 아이사미도 불명예를 안고 있는 정치인이다. 올해 2월 국제 마약밀매를 비호한 혐의로 미국 재무부의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재무장관, 아라구아 주지사 재직시절 베네수엘라에서 멕시코, 미국 등지로 향하는 대규모 국제 마약밀매를 묵인해 준 대가로 뇌물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같은 혐의로 제재 명단에 함께한 사람이 로페스 벨로다. 

파파로니의 주장에 따르면 CLAP을 통해 배급되는 식품은 멕시코에서 들여온다. 15.5kg 1 상자가 일반 시장에서 12.44달러에 구입 가능한데 로페스 벨로의 회사는 같은 물건을 가지고 오는데 2배 가까운 22.22달러를 청구하고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여기에 알 수 없는 비용이 더해진다. 유통 과정을 거쳐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전달되는 1상자 당 가격은 무려 42달러다. 12.44달러가 42달러로 ‘뻥튀기’ 되는 동안 차액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로페스 벨로의 회사와 베네수엘라 정부의 계약 물량이 무려 700만 상자라는 것만 드러났다. 

게다가 마두로는 CLAP를 통해 배급되는 식량 배급 권한을 사실상 군부에 줬다. 현 시점에서 가장 막대한 먹을 것에 관한 권한을 군부와 나눈 셈이다. 올해 1월 AP통신은 베네수엘라 군부가 배급 식량을 빼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상급자들은 개인적인 부를 축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이 지목한 주범은 식량장관인 로돌포 마르코 토레스 장군과 전임자인 카를로스 오소리오 장군이다. 결국 국민의 굶주림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부를 축재하고 있는 어른들의 잔치에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건 베네수엘라의 아이들이다.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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