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덩케르크'의 아쉬움 서사 잃고 스펙타클을 얻다
'메멘토' '인썸니아' '프레스티지'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그의 영화에는 대개 결핍이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감독은 그들을 치밀한 플롯 안에 가두고는 빠져나오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는 마치 '시네마 데우스' 즉, 영화의 창조주처럼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에 있고,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미로를 헤맨다. 워낙 플롯이 탄탄하고 세계관이 독특해 아무리 연기 잘하는 배우라도 놀란의 작품에선 영화를 압도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전설적인 '조커' 히스 레저만이 두각을 나타냈을 뿐이다.
'덩케르크'를 만들며 놀란이 참조한 영화는 최근 전쟁영화에서 거의 교본 역할을 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니라 '서부전선 이상없다' '불의 전차' '해외 특파원' '알제리 전투' 같은 고전영화들이다. 그래서 '덩케르크'에는 피튀기는 근접촬영, 죽고 죽이는 혈투, 물량공세 등이 없고, 대신 아날로그적 물성과 고전 문법에 충실한 서스펜스만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디지털에 둘러싸이게 될수록 인간은 좀더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고 했는데 '덩케르크'는 이러한 아날로그적 욕구를 파고든다. 67년 전 역사 현장의 정확한 고증과 옛 전투기와 구축함이 뿜어내는 굉음은 요즘 디지털 영화에서 볼 수 없던 것이라서 오히려 새롭다.
<덩케르크>의 스펙터클은 여백의 활용에서 더 극대화된다. 일렬로 늘어선 수십만 명의 사병들이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해안은 광활하다 못해 공허하게 보이고, 영국군 전투기 스핏파이어와 독일군 전투기 BF-109가 공중전을 벌이는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다. 드넓은 공간은 연합군 병사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바다뿐인 현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들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독일군 병사들로부터 하늘과 배의 바깥에서 위협받지만 진짜 적은 지금 전쟁에서 패해 도망가고 있다는 자괴감이다. 이처럼 스펙터클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스펙터클 구현을 위해 서사를 거의 포기한 것은 논란으로 남을 듯하다. 영화는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을 배제한 채 상황만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배우들은 그 어떤 놀란 영화에서보다 더 존재감이 없다. 해안, 바다, 하늘이라는 세 가지 무대를 교차하며 진행되는 영화는 해안의 사병 토미(핀 화이트헤드)와 해군 중령 볼턴(케네스 브래나), 바다의 민간인 선장 도슨(마크 라일런스), 하늘의 조종사 파리어(톰 하디) 등이 각각 에피소드의 길잡이 역할을 하지만 그들이 극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기에 관객은 산발적인 서사 경험만을 하게 된다.
이처럼 감독이 자신의 최대 장기 중 하나인 풍부한 스토리를 포기한 것은 아마도 많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관객은 다큐멘터리인 듯 아닌 듯 정의하기 힘든 영화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영화에 대한 호불호도 그 어느 때보다 극과 극으로 갈릴 것이다. 게다가 영화는 엔딩에서 귀환한 병사들이 받는 환대를 지나치게 부각함으로써 인간의 생존 의지 자체를 스펙터클화한 의도 이전에 영국판 애국심 고취 영화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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