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김행직 "기회다 싶었고 우승 자신 있었다"
4강서 세넷에 부르사 때 1점차 패 복수, "가장 통쾌"
"팬들 관심 고마워.. 계속 김행직을 응원해 달라"
지난 10일 새벽 끝난 ‘2017 3쿠션 포르투월드컵’ 정상에 오른 그는 환승지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6시간 대기 후 입국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김행직은 축하 인사를 건넨 기자에게 “고맙다”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와 1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인천공항 B게이트 맞은편 카페에서 일문일답을 나눴다.
▲포르투월드컵, 우승을 예상했나.
=결승행이 확정됐을 때 ‘우승할 수 있겠다, 이번엔 무조건 우승을 잡자’고 생각했다. 8강, 4강에 오를 땐 ‘이러다 우승하는거 아냐’라는 짐작만 하다, 한 경기만을 남겨 놓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대신 욕심을 마음에서 지우기로 했다. 우승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내 플레이만 그대로 가져가자고 생각했다. 결승상대인 응우옌은 한국 선수들이 까다로워하는 강한 상대였지만, 이런 마음을 먹었기에 개의치 않고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번 월드컵도 제겐 승패가 존재하는 수많은 대회들 중 하나입니다. 물론 선수이기 때문에 욕심은 있죠. 우승했을 때 많이 기뻤어요. 많은 분들이 세레모니가 부족하다고 하시는데, 시상대 올라가기 전 짧은 환호도 했죠.(웃음) 하지만 그 기쁨에 취해있지 않으려고요. 앞으로 참가할 대회도 많고 당구인생도 아직 한참 남아있으니까요.”
▲‘천재’를 넘어 ‘에이스’급으로 부상했다는 의견이 많다.
=나는 아직 모자란 선수다. 어린 나이에 당구를 시작하면서 훌륭한 선배들을 많이 봐왔다. 월드컵에서 우승한 다른 형들과 비교하는 글들이 많은데, 그 형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배울게 많은 선수다. 특히 어릴 적부터 인연이 깊었던 경률이형(고 김경률 선수)과의 비교는 정말 이르다고 생각한다. 경률이형은 한참을 달려도 다가갈 수 없는 ‘우상’과 같은 존재다.
▲중계방송 해설하던 오성규 선수가 우승 후 눈물을 보였다.
-6~7년 전부터, 특히 유럽생활 때 많은 도움을 준 분이다. 경제적인 부분과 함께 정신적으로도 많이 의지했다. 그 분 영어이름인 ‘윌리엄’ 형님으로 많이 불렀었는데... 우승 직후 우셨다니 전화해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결승에서 만난 응우옌은 어땠나.
=이번에 처음 붙어본 선수다. 샷도 강하면서 섬세해야 할 땐 또 세기 조절도 잘한다. 강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점들은 원체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시합에 들어가면 내 경기에만 집중한다. 모든 경기를 그런 자세로 임한다. 항간에는 응우옌의 경기 중 제스처가 크다는 말도 많았는데, 사실 결승전에선 내 경기에 집중하느라 그런 줄도 잘 몰랐다.
▲상대를 개의치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침착하지 않다. 다혈질이다. 대신 내게 화를 낸다. 화나는 이유는 단 하나,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을 때다. 그것 때문에 상대방에 관계없이 혼자 무너진 경우가 좀 있다.
▲12점 앞선 채 경기를 끝냈다. 그때 심정은.
=40:28로 앞선 채 경기를 끝내고 응우옌의 샷을 지켜봤다. 그때 응우옌이 3점, 5점 등 쭉 치고 오더라. 솔직히 말하면, 응우옌의 마지막 샷인 뒤로 돌려치기가 들어갔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배치도 신기하게 잘 돼 진짜 12점이 나올 뻔 했다. 긴장됐다. 갈증이 계속나 물을 끊임없이 마셨다.
▲우승까지의 과정 중 가장 통쾌했던 승리는.
=4강에서 만난 루트피 세넷과의 경기다. 두 번 싸워 승패를 한번씩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 1패가 정말 아쉬운 패배였다. 2월 부르사월드컵 32강전에서 40:39로 졌다. 그것도 럭키샷으로 말이다. 이번에 꼭 이겨 복수하고 싶었는데, 성공했다. 이번엔 나도 럭키샷이 2개나 터졌다.(웃음)
▲4강전에서 묘기에 가까운 '옆으로 밀어치기'까지 보여줬다.
=많은 분들이 자신감이 넘쳤다고 하는데, 사실 그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2015년 세계3쿠션선수권 결승에서 브롬달이 동궁이형(강동궁 선수)과의 경기를 그 샷으로 끝냈다. 그것과 유사한 배치였고, 과감하게 구사해 예상대로 성공했다.
▲8강 상대 최완영에 대해 알고 있었나.
=처음 상대해봤다. 야스퍼스, 성원이형(최성원 선수)을 이긴 선수라 긴장했다. 그 경기를 이겼지만 내가 잘 친 게 아니었다. 완영 형님(최완영 선수)의 발동이 조금 늦게 걸렸다. 끝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완영 형님이 “긴장해서 공격 각도가 잘 안보였다”고 하더라.
▲이번 월드컵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본다면.
=운이 좋았다. 이건 겸손이 아니다. 내가 잘했으면 이번에 잘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다. 접전이 많았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 4대천왕을 피하는 등 대진운도 나쁘지 않았다.
▲비교적 빠른 나이에 월드컵 트로피를 들었다. 앞선 5명의 한국인 월드컵 챔피언은 30대에 이룬 일인데.
=항상 최고를 추구하며 살고 있지만, 생각보다 빨리 월드컵을 우승해 개인적으로도 놀랍다.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에 또 할 수 있지 않을까.(웃음)
▲집안에선 경사가 났겠다.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당구장 관계자분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려고 한다.
▲향후 일정은.
=이번주 수요일 시작하는 ‘정읍시장배 전국당구대회’는 개인 일정상 불참한다. 11월 볼리비아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출전한다.
▲국외대회때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외국에 나갈 땐 경기전날 도착하는 걸 선호한다. 다른 형들은 2~3일 큐를 놓아도 실력발휘가 되는데, 나는 하루라도 큐를 잡지 않으면 실력이 도통 나온지 않는다. 이번 포르투월드컵도 금요일이 첫 시합이라, 목요일 저녁에 도착했다. 11월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볼리비아는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40~50시간이 걸리니 실력발휘가 힘들지 않을까 한다.(웃음)
=호텔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아 확인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같이 대회에 출전한 형들이 말해줘서 알고는 있었다. 페이스북으로 내가 브롬달을 누르고 세계랭킹 5위로 올라간 기사도 봤다. 흥미로웠다. 하지만 평소 랭킹을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우승 기사에 3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놀라며)정말인가. 제 우승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 그렇게 뜨거운 줄 몰랐다. 포르투갈에선 직접적으로 체험하기 힘들다. 이제 제대로 알 것 같다.
▲선수로서 앞으로의 각오는.
=저라는 선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 선수는 팬들의 관심을 먹고 산다.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고, 계속 당구선수 김행직을 응원해 달라.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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