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이맘때쯤이면 인터넷을 들썩거리게 하는 이들이 있지요, 바로 의정부고 학생들입니다.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보면 그해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졸업사진을 가지고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의정부고 졸업사진은 올해에는 학교 측이 일종의 '사전검열'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전에 촬영 컨셉을 제출하게 하고 논란이 될 만한 아이템은 선정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학교 측은 학생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10일 촬영된 의정부고 졸업사진은 오후에 공개됐습니다. 의정부시청이 제공한 사진들입니다. 검열 탓인지 세태를 풍자한 사진을 아쉽게도 찾아볼 수 없지만, 10대다운 톡톡 튀는 패기와 재치가 엿보입니다.
공개된 5장의 사진만으로는 아쉽다고 느끼고 있던 찰나, 의정부고 졸업사진이 중앙일보 페이스북 계정으로 쏟아졌습니다.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사진들이지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의정부고 졸업사진들을 소개합니다.
━ 1. 배우 유아인
한 학생은 배우 유아인이 지난 4월 tvN '시카고 타자기' 제작발표회 당시 입었던 옷을 소화했습니다. 단추 몇 개를 풀고 야성적인 매력을 뽐낸 유아인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네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학생은 안경, 펑퍼짐한 바지까지 유아인의 패션 디테일을 모두 살렸습니다. 거기에 유아인이 머리 옆면을 밀어버렸던 헤어스타일까지 그대로 따라 했네요.
━ 2. 배우 마동석과 'PPAP' 고사카 다이마오
이 두 남학생은 배우 마동석과 '펜 파인애플 애플 펜(PPAP)'이란 노래로 전 세계를 강타한 일본의 개그맨 겸 DJ 고사카 다이마오(古坂大魔王·43)를 패러디했습니다. 마동석의 금목걸이, 고사카 다이마오의 표범무늬 의상과 콧수염 등 인물 특징을 잘 살렸네요.
━ 3. '미운 우리 새끼' 김건모 모자(母子)·박수홍 어머니
시청률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는 SBS '미운 우리 새끼'를 본 딴 학생들도 있습니다. 어머니들의 뒷목을 잡게했던 가수 김건모의 '소주 정수기'가 등장했네요. 아들을 모니터로 지켜보며 한숨을 쉬던 김건모 어머니와 "쟤가 왜 저럴까앙~?"이라는 애교 넘치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방송인 박수홍 어머니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건모를 따라한 학생은 얼굴을 까맣게 만들고 당시 김건모가 입었던 의상까지 '완벽 재현'했습니다.
━ 4. 수박바와 거꾸로 수박바
최근 출시돼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아이스크림 '수박바' 제품들을 따라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수박바'와 '거꾸로 수박바'를 패러디한 이들은 얼굴에 초록색·빨간색 칠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 5. '픽미픽미픽미 업' 인형뽑기 기계 안에 있는 인형
올해는 '인형뽑기방'이 열풍이었지요. 인형을 가지고 싶어 기계 안에 들어간 이들의 소식도 종종 전해진 바 있습니다. 인형뽑기 기계 안에 들어 있는 인형이 된 의정부고 학생이 있는데요, 옆에 있는 피카츄·구데타마 인형보다 이 학생을 더 뽑고 싶어지네요. 이 의정부고 학생을 뽑기 위해서는 1판에 1000원을 내야 합니다.
올해는 탄핵과 대선 등 굵직한 이슈가 많아 많은 네티즌이 의정부고 특유의 촌철살인 패러디를 기다렸습니다. 사전 검열 탓에 정치 풍자를 담은 아이템은 금지됐는데요, 학교 관계자는 이날 "지난해 졸업사진이 공개된 이후 학교에 항의전화가 쏟아져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명예훼손 고발로 이어져 교사와 학생들이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을 정도였다"고 밝혔습니다.
의정부고 학생들은 새로운 졸업사진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으며 '패러디 졸업사진'의 원조로서 불리고 있습니다. 졸업앨범을 넘겨보며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은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 중 하나인데요, 올해 촬영을 진행한 이들이 정치 검열 등과 같은 제재는 잊고 먼 훗날 오늘을 즐겁게 기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