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멀티플렉스, 그 사이에 낀 영화 <옥자>
[오마이뉴스 글:최수정, 편집:유지영]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옥자>는 개봉 전부터 아주 시끄러운 영화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세계적인 감독이 된 봉준호의 차기작이기도 했고, 할리우드와 대한민국의 명품 배우들을 총출동시킨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이기도 했으며,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어떤 성적을 거두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던 옥자와 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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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그 때문에 <옥자>는 중소형 영화관을 중심으로 상영됐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군소 극장들의 숨통을 트여준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상영관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옥자> 지도를 만들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이 영화는 태생부터 아주 말 많은 영화였던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논란이 계속될수록 <옥자>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갔다. 세계 시장을 겨냥했다고 하기에는 지극히 한국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가 과연 어떤 스토리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지가 주목됐고, 지난 6월 29일 결국 영화 <옥자>는 그 실체를 드러냈다.
순수한 눈을 가진 슈퍼 돼지의 이야기
미자(안서현 분)는 영화 내내 유일하게 등장하는 어린아이다. 열네 살의 미자는 네 살 때부터 옥자와 함께 자라왔으며, 옥자를 그 누구보다도 깊게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미자는 읍내로 내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옥자와 함께 산속에서 살고 있지만 어리숙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아이는 아니다. 오히려 미자는 강인한 체력과 똑똑한 머리를 가진 강한 여성 캐릭터이다.
봉준호 감독은 전작들을 통해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시련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그려온 바 있다. 그의 대표작이자 흥행작이었던 영화 <괴물>에서 배두나의 역할이 대표적이다. 봉준호의 작품세계 속에서 여성들은 단순히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지 않고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봉준호 감독의 여성 캐릭터들은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상과 약간은 유사하면서도 약간씩은 일그러져 있는 캐릭터들이기도 했다. <마더> 속에서 김혜자의 모습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였다고 생각하는데, <마더>를 본 관객이라면 배우 김혜자가 넋을 놓고 춤을 추는 장면에 생뚱맞은 음악이 흘러나왔던 부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에게는 화면과 어울리지 않는 BGM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특기가 있다. 섬세한 연출을 통해 의미를 비틀어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기지 또한 봉준호 감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 루시 미란도와 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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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최근 할리우드 배우들을 활용했던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한국 영화감독으로서 그가 전작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작품성이 이번 작품을 통해 드러나기를 바랐던 것 역시도 사실이다. 그의 이번 작품도 '역시 봉준호'라는 말이 나오게 하지만, 대신 이번 <옥자> 속에서 그 상징과 아이러니는 단순하리만큼 명쾌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옥자>는 할리우드 판 봉준호식 가족영화라는 평가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의 영화 팬들이라면 일정 부분에서 실망감을 금치 못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힘을 빼고 단순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메시지는 간명하지만 그 방식은 직설적이고, 때문에 잔혹한 어른 동화라는 평가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늘 되풀이되는 가족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 안에서 맴돌고 있다.
맑은 눈 속에 있는 많은 말들
영화 속 옥자의 모습은 돼지라고 보기에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부분은 하마를 닮았고, 또 어떤 부분은 돼지를, 또 어떤 부분은 코끼리를 닮았다. 하는 짓은 영락없는 개인데 모습에서는 개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동물의 모습을 따와 옥자의 이미지를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생물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고, 때문에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 속 옥자의 눈을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영화 초반 옥자의 모습은 감독의 전작 <괴물>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공포감을 조성하지만, 이내 옥자의 맑은 눈망울이 화면에 비춰지며 관객들의 경계심을 한꺼번에 허물어버린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간 눈망울을 가진 옥자는 신기하게도 미자의 말을 알아듣는다. 때로는 미자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속삭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속삭이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흐뭇한 감정이 든다.
▲ 옥자의 눈은 많은 것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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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과 인간성의 상실
영화는 전체적으로 한 가지 메시지를 단순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전달한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끔찍한 비극을 관객은 영화 내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 끔찍한 결과물을 뒤로 한 채 옥자만을 구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많은 옥자를 만들어내고 수많은 옥자를 도살하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시스템은 아직도 건재하고, 이것은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공장식으로 동물을 기르고 도축하고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 속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끔찍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일상이라는 사실을 느낄 즈음 관객은 이런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벌어들이며 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전작들을 통해 비극적 상황에서 늘 항상 희망의 불씨를 남겨두었듯,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그는 씁쓸한 희망의 불씨를 남긴다. 아직 어린 미자가 이 모든 상황을 겪으며 추후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인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옥자>속 미자를 연기했던 배우 안서현의 미래 또한 기대된다. 말간 얼굴을 한 채 미자의 강인한 의지를 전달했던 그녀가 이번 영화를 통해 또 어떤 배우로 성장해 나가게 될 지가 궁금하다. 배우 개인에게 있어 이토록 큰 프로젝트의 일환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중에서도 주인공으로서 세계적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의 탐욕과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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