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맛봐야 제대로 보인다'는 평양냉면 필동면옥

빨간열쇠 2017. 6. 3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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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가볼랭-18]

후텁지근한 날씨와 함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라면 더위를 날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의 '빕 그루망(Bib Gourmand)'에는 냉면 가게도 포함돼 있습니다. 냉면 마니아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명성의 평양냉면집 '필동면옥'입니다. 평양냉면은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메뉴로 알려져 있는데요. 평양냉면파들은 '열 번 맛봐야 제대로 평양냉면의 삼삼함을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요. 평양냉면의 맛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 밍밍하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평양냉면 계보는 '의정부 평양면옥'과 '장충동 평양면옥'으로 양분돼 있습니다. 국내 평양냉면 집 중 가장 번창한 곳인 의정부 평양면옥은 평양 출신 홍영남·김경필 씨 부부가 1·4후퇴 때 월남해 1969년 개업했습니다. 경기도 연천에 첫 문을 연 뒤 1987년 의정부로 이전해 지금까지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죠. 이들 부부의 첫째 딸과 둘째 딸은 1985년에 각각 '필동면옥'(서울 중구 필동)과 '을지면옥'(서울 중구 입정동)을 개점합니다. 막내인 셋째 딸은 서울 강남구에 '의정부 평양면옥 강남점'을 맡아 가업을 잇고 있죠. 모두 한집안이었다니 꽤 놀랐습니다. 김경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왜 이들이 '의정부 평양면옥'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의정부파' 평양냉면의 원조 김경필 할머니)

평양냉면은 사실 겨울 음식입니다. 평양에서는 꽁꽁 언 김칫독 위로 살얼음이 서린 동치미 국물에 메밀면을 넣고 즐기던 음식이었죠.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 육수 대신 선택한 게 동치미 국물이었습니다. 1920년대 제빙 기술이 발달하면서 여름에도 냉면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평양냉면집 '필동면옥'
자, 이제 역사는 됐고, 직접 방문해보겠습니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오전 11시 30분에 방문하면 가게 앞으로 주욱 늘어선 줄을 만나게 되는데요. 10분 일찍 방문했더니 다행히 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의정부 평양면옥 첫 개점 당시 냉면 한 그릇은 100원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멀리 벽면에 차림표가 보입니다. 평양면옥 첫 장사 당시에 냉면 한 그릇에 100원이었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냉면 두 그릇과 별미로 '제육'을 시켰습니다. 초록병 한 병도 시켰습니다. 창업자인 김경필 할머니는 '맛있게 평양냉면 즐기는 법'으로 소주 한 병이 필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인터뷰에서 "면은 소주랑 먹으면 제일 맛있지. 이북에서는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있어요. 먼저 술을 먹고 육수로 입을 헹구고 면을 씹는 거지요. 술을 마시고 쓴맛이 남은 혀에 면의 향긋하고 담백한 맛이 어우러지지"라고 말했습니다. 소주를 잘 즐기지 않는 회사 동기 표현에 따르면 '필동면옥에서 먹었던 소주가 회사 생활 중에 먹었던 소주 중에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고 표현하기도 했죠. 과연 그런 맛이 나올까요?
양념이 적은 김치(좌), 무와 양념장(우)
자리에 앉으면 김치와 무를 내줍니다. 김치는 고춧가루 양념이 적어 간이 약합니다. 함께 나오는 무는 그냥 먹어도 되지만, 냉면에 함께 싸먹어도 좋습니다. 양념장은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삼삼한 냉면에 직접 넣어 약간 짭조름하게 먹을 수도 있고요. 제육을 찍어 먹어도 됩니다. 양념장은 맵기보다는 달짝지근한 느낌이라 조금 강한 맛을 원한다면 겨자 소스를 조금 뿌려 먹어도 됩니다. 개인 기호에 맞게 즐길 수 있도록 자리 한편에 고춧가루, 겨자소스, 간장, 식초 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제공되는 면수(좌), 개인 기호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양념장(우)
투박하게 썰려 있지만 쫄깃함이 살아있는 제육
손님이 많아서 인지 메뉴 준비도 빠른데요. 주문과 동시에 먼저 제육이 나왔습니다. 제육은 따뜻하지 않고 식은 상태인데요. 보는 것처럼 투박하게 썰어 있지만 껍질까지 잘 삶아져 쫄깃함이 살아 있습니다.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가 없어 오랜 시간 잘 삶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냉면에는 제육이 한 점만 올려 있기 때문에 제육을 조금 아껴뒀다가 냉면과 함께 즐겨도 좋습니다.
고추가루가 뿌려 나오는 의정부 계열 냉면
주문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주문했던 냉면이 나옵니다. 제육 한 점과 수육 한 점이 함께 올려진 위로 계란 반 개, 파가 함께 고춧가루가 뿌려져 있습니다. 육수는 평양냉면 특유의 밍밍함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아 '이게 대체 무슨 맛이지' 싶었지만, 자주 접하다 보면 약간 짭조름한 맛이 납니다. 밍밍한 육수의 삼삼함을 고춧가루의 뒷맛이 개운하게 잡아줍니다. 저처럼 평양냉면을 즐기는 분이라면 굳이 양념장을 넣지 않아도 육수만으로 짭짤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미쉐린 가이드에서는 "자칫 특징 없이 밍밍하다고 판단될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한 이 집의 육수에서 나는 섬세한 육향과 은은한 감칠맛의 중독성에 빠져 단골이 된 손님이 많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중간 이후에 육향이 고춧가루에 밀려 아무 맛도 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맹물을 마시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양념장을 조금 넣거나 기호에 따라 겨자나 식초를 곁들이면 됩니다.
냉면에 무를 함께 싸서 즐겨도 좋다.
면은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고 찰기와 힘이 있는데요. 일단 양은 꽤 됩니다. 함께 간 여성 에디터는 "제육과 함께 먹어서 인지 면은 다 먹을 수 있지만 육수는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부르다"고 표현했습니다. 남자인 저도 냉면 한 그릇으로 충분히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두 명이 방문하면 각각 냉면 한 그릇에 제육이나 수육 한 접시면 만족하고 나올 듯합니다. 아까 시켰던 소주와의 궁합은 어떠냐고요? 김 할머니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소주의 쓴맛이 육수와 면의 향긋함과 담백함에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의정부 평양면옥의 창업자인 김경필 할머니는 "소주 한 병이면 평양냉면을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제육이나 수육은 가격이 꽤 됩니다. 제육 200g에 2만원이고, 수육 200g은 2만7000원입니다. 가격에 비해 양이 다소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회전율이 빠른 음식점의 특징들처럼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좀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불친절하지도 않지만요. 더운 여름철에 별도로 더위를 피하며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단점이 될 수 있겠네요. 실내에 자리가 가득 차면 문 앞에 줄을 서서 뙤약볕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필동면옥이 위치한 충무로는 직장인도 많고, 바로 앞에 동국대도 있어 오전 11시 30분을 넘기면 긴 줄을 만나게 됩니다. '한 번 평양냉면 맛에 익숙해지면 다른 냉면은 못 먹는다'는 말도 있는데요. 아직 평양냉면을 제대로 접하지 않은 분들이라면 '필동면옥'을 방문해보길 권합니다.

<필동면옥 총평>

맛 ★★☆

가격 ★★(수육과 제육은 ★)

분위기 ★

(★★★ 만점 기준)

[빨간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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