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다룬 <박열>과 <군함도> 비교해보니
[오마이뉴스 글:박명훈, 편집:곽우신]
*이 글은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계의 속사정에 제 분석을 덧붙였으니 안심하고 읽으세요!
일제강점기를 다룬 두 영화의 개봉 소식이 연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28일 개봉한 <박열>과 내달 26일 개봉 예정인 <군함도>가 그 주역이다. 모두 올여름 극장을 휘어잡을 기대작이다. 무엇보다도 한민족과 뗄 수 없는 일제강점기를 다뤘다는 점, 그동안 영화로 다뤄지지 않았던 당대의 식민지 재일조선인을 상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일제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 <박열>은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당시 최소 6000명이 넘는 재일조선인이 학살당한 관동대학살 직후를 다뤘다. 사건을 덮고자 했던 일제의 활시위는 무정부주의를 내건 독립단체 '불령사'의 요주 인물인 조선 청년 박열을 겨냥했다. 천황(天皇·일왕)에게 폭탄을 던져 살해하려 한 계획을 세웠다며 그를 체포해 법정에 세워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 한 것.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이자 거칠 것 없었던 '자유로운 영혼' 박열과 그의 연인 카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조선이름 박문자)가 일제 재판부에 통쾌하게 대항하는 한편 일제의 중심질서인 천황제를 비판하는 과정이 주목된다.
▲ 박열의 한 장면 재판정 의자에 앉은 박열이 연인 후미코를 바라보고 있다. |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
▲ <군함도>의 한 장면 군함도의 사람들. |
ⓒ CJ엔터테이먼트 |
일제를 다룬 영화는 2008년 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출발해 2015년 작 <암살>이 대중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동주> <귀향> <덕혜옹주> <밀정> 등이 개봉했고 이 역시 손익분기점을 훌쩍 뛰어넘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를 보면 '일제를 다룬 영화들은 다 성공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든다(기대를 모았던 최민식 주연의 2015년 작 <대호>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일제를 다루면 반드시 망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었던 적도 있다.
애초 영화계에서는 일제를 다룬 영화가 크게 '대박' 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영화평론가 최광희는 지난해 10월 21일 <체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잊고 싶은 기억, 상처, 역사의 트라우마이기 때문에 그것을 들춰내는 것을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들을 많이 했었어요. 아예 기획도 하지 않았고, 만들어도 흥행이 잘 안 됐죠. <모던보이>라든가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처럼요. 그 시대를 어두운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인데요"라고 설명한다.
일제를 다룬 영화, <암살> 전과 후
▲ <암살>의 홍보포스터 <암살>의 홍보포스터. 태극기 아래에 모여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 쇼박스 |
민족의 애환을 그린 영화를 흥행과 손익분기점으로 서열을 나누는 상황이 자못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이 그런 걸 어찌하리오'란 생각도 든다. 당대를 최대한 고증에 맞게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세트를 짓고, 영화에 풍부한 내용을 더할 사전취재를 위한 답사를 이어가려면 제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당연히 제작자 및 배급사가 높은 수익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 과연 해법은 있는 것인가. 이전 정부는 영화계의 이런 고민은커녕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입맛에 맞는 문화인, 작품을 지원하기에만 급급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많은 언론이 지난 박근혜 정권 때 정권의 보수 성향에 맞는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의 영화가 정부 관련 기관의 대대적인 집중투자를 받은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그렇다면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은? 지난 3월 31일 <씨네21>에 따르면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문화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 더불어 분권에 기초한 지역 문화 진흥체계 구축, 고갈 위기에 놓인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취지는 좋은데 정말 공약은 구현될 것인가.
다행히 희망이 엿보인다.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을 찾아 시민들과 만나고 작가와도 대화를 나누는 진솔한 행보를 펼쳤다. 아울러 "출판계 정상화에 힘쓰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를 전달했다. 문화계 전반을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회복시키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아직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으나, 앞으로의 문재인 정부와 신임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펼칠 영화계 정책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요즘 일제강점기를 모르는 한국인들은 없지만 정작 그 면모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친일부역자와 재일조선인 외에도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19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해방을 맞았지만, 조국이 분단돼 한국과 북한으로 나뉘어 돌아간 재일조선인의 서글픈 사연 등. 향후 정부의 지원정책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일제강점기를 조명하려는 영화계의 움직임이 활짝 꽃 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 가서는 일본학을 전공한 지라 반드시 그렇게 되길 바란다)
이준익 vs. 류승완 | ||||||
이준익의 선택 : '개인' 박열과 후미코 <박열>은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개인 중심의 시대극이다. 우리에게 이준익은 <왕의 남자> <평양성> <사도> <동주> 등 시대극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박열>에서도 그동안의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삼아 그 진가를 발휘했단 평가다. 그동안의 흐름을 살펴보면 이준익의 초점은 대체로 개인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사도>에서는 사도세자(유아인 분)를 중심으로 그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영화에서는 아들 사도세자와 아버지이자 임금인 영조(송강호 분)의 대립이 크게 강조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는 장면, 특히 아버지가 아들의 병든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는 심리묘사가 절정으로 치달아 감정을 자극한다.
최근작 <박열>에서도 이준익은 <동주>와 유사한 연출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박열과 후미코는 라이벌이 아닌 서로에게 푹 빠진 연인이기에 이 둘의 관계는 동주와 몽규와는 다르다. <박열>은 1920년대의 일제를 주 무대로 삼은 만큼 일제강점기 후반부를 다룬 <동주>를 연장선상에 두고 살펴보는 것도 묘미다. 류승완의 조명: '집단' 군함도의 사람들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쥔, 재일조선인들의 목숨을 건 집단탈출기다. 사실 시대극이 류승완의 '전공'은 아니다.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등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은 약자를 업신여기는 한국사회(집단)의 공고한 기득권을 깨부순다는 공통점이 있다. 류승완은 사회의 어둠을 스크린에 옮겨 전복시키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영화적 시도를 즐긴다. 앞서 류승완은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에서 '퓨전 액션 사극'을 시도한 바 있다. 1940년대 상해 임시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일제의 스파이와 최정예 비밀요원 다찌마와 리(임원희)의 대립이 중심 줄거리다. 영화는 'B급 정서'를 한껏 담고 있다. 총을 쏘거나 피하는 등장인물의 과장된 몸짓, 후시녹음으로 목소리를 덧입힌 울리는 목소리, 진하고 알록달록한 원색을 활용하는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군함도>는 실제역사를 다룬 류승완의 첫 시대극이다. 더구나 생사를 오가는 분투가 펼쳐져 B급 정서가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우려를 의식해서일까. 류승완과 군함도 측 관계자 등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군함도>는 '잘 뽑힌 영화'라며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제작진은 군함도 생존자들의 증언을 직접 찾아 나서고 관련문서를 꼼꼼하게 살펴 실제역사와 밀접한 연출을 이끌어냈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포부를 밝혔다.
뒤틀린 사회구조를 확 뒤집어버리는 통쾌함에 더해 '장기'인 호쾌한 액션 장면으로 호평을 받아온 감독 류승완.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이들의 집단탈출을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내야 할 <군함도>에서 그의 시도는 뜨거운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이전 작들이 사회 고발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을 떠올리면 <군함도>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그런 메시지를 담아냈을지 궁금하다. 한국영화에서 처음 시도된 파격적 소재, 생사의 갈림길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 사람들의 모습을 얼마나 잘 연출했을 지가 관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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