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지 5년 만에 주인 잃어버린 '집옥재'

김종성 입력 2017. 6. 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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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s 서울놀이 ⑪] 궁궐 속 작은 문화재 도서관, 경복궁 집옥재(集玉齋)

[오마이뉴스김종성 기자]

 경복궁을 거닐다 만난 고종의 서재, 집옥재.
ⓒ 김종성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 갔다가 북쪽 끝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숨겨진 명소를 알게 됐다.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변신한 '집옥재'. 궁 안쪽 깊숙이 자리한 작은 연못 위에 있는 향원정을 지나면 나온다. 경복궁 안에 있는 전각으로, 궁내 다른 건물과 다른 이질적인 모습의 건물이 호기심과 눈길을 끄는 곳이다. 작년 봄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의 협업을 통해 작은 도서관으로 개관했다. 집옥재(集玉齋)는 옥처럼 귀한 보물을 모은다는 뜻이다. 여기서 보물은 서책이다. 

경복궁 정문으로 들어서서 근정전, 강녕전, 경회루 등 여러 전각과 명소를 지나 집옥재 가는 길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거니는 산책의 시간이다. 집옥재를 찾아 가다보니 경복궁은 생각보다 넓었다. 경복궁 면적은 43만2703㎡으로 그리 넓다는 중국 자금성(72만㎡)의 절반을 넘는다. 

소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등 고목들이 서있는 널찍한 궁궐 마당을 지나다보면 경회루 너머로 인왕산이 집옥재 뒤로 북악산이 동양화처럼 운치 있게 나타난다. 집을 지을 때 자연과의 조화도 세심히 고려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미적감각을 실감하게 되는 길이다. 
 

옥처럼 귀한 보물을 모아놓은 경복궁의 숨겨진 명소 

 여러 전각과 나무들이 어울려 있어 앉아 쉬어가며 산책하기 좋은 경복궁.
ⓒ 김종성
 집옥재 옆 정자 팔우정, 북카페로 쓰이고 있다.
ⓒ 김종성

고종의 서재로 지은 집옥재는 중국풍의 입식 생활공간으로 되어 있다. 당시 고종은 이곳에서 외국사절을 맞이하였다. '중국식'이라기보다 당시로서는 '현대식'으로 지은 것이었다. 왼쪽으로는 전통 건물인 협길당을 두고, 오른쪽으로는 이층의 팔각누각을 달아 신구양식이 흔연히 어울리고 있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가운데 

1891년 건립된 집옥재는 고종 황제의 서재와 집무실, 외국사신 접견소로 사용됐던 곳이다. 유홍준 선생의 말처럼 당시 선진문물 수입국이었던 청나라의 건축양식으로 지은 우리나라 궁궐 전각이다. 화려한 장식에 벽돌 같은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여 지은 건물이다. 현판도 중국 북송(北宋) 때의 서예가 미불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천정에 새겨진 화려하고 정교한 연꽃 무늬와 섬세한 꽃 조각은 감탄이 나올 만큼 인상적이다. 왼편에 있는 팔각정 모양의 정자인 팔우정과 과거 침전용으로 쓰였던 협길당은 각각 북카페와 열람실로 꾸몄다. 

집옥재 안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정조의 물음에 대한 정약용의 시험답안지', '고종황제 서재의 도서 목록',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고종의 국서' 등 다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각 방에는 서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역사서에서부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난중일기 번역본 등 된 평소 읽기 힘든 여러 종류의 책(약 2500권)과 독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외국인 관람객을 위한 번역본도 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은 순종인데 철종에서 조선왕조실록이 끝난 이유를 알게 됐다. 일제에 의해 '고종실록', '순종실록'이 편찬되면서 사실을 많이 왜곡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건축양식을 따라 지은 화려한 집옥재 내부.
ⓒ 김종성
 화려하기 그지없는 집옥재 천정. 당시 청나라풍이었단다.
ⓒ 김종성
 무더위가 느껴지지 않는 집옥재 안 독서공간.
ⓒ 김종성
책상과 의자 앞에는 초록의 나무들이 보이는 탁 트인 창이 자리하고 있어서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때 이른 폭염주의보로 무더운 날이었지만 이곳은 에어컨 없이도 전혀 무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풍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열린 문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옛 한옥은 바람의 통로와 물의 위치, 산과 평야와의 거리 및 방향 등 풍수지리 이론에 근거해 설계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제대로 체감했다.

집옥재는 책을 통해 새로운 정보의 수집과 국제정세 파악, 개화정책을 구상하기 위해 건립된 왕실 도서관이었다. 규장각이 경복궁의 집옥재로 들어간 셈이다. 신서적 4만 여권 도서 대부분은 서구의 근대문물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양무운동이 한창이던 청나라에서 번역한 서양책들이었다. 당시 청나라는 1860년 영불연합군에 의한 북경 함락의 충격을 딛고 양무운동을 개시, 서양 선교사를 고용해 서양서의 번역과 출판에 열심이었다.

지은지 5년 만에 주인을 잃어버린 집옥재 

하지만 아쉽게도 고종은 집옥재를 오래 사용하지 못했다. 일본인들에 의해 왕비가 살해 당하는 '을미사변'을 겪고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을 한 것. 1년 뒤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할 때, 고종이 돌아온 궁궐은 경복궁이 아닌 러시아 공사관에 인접한 경운궁(현 덕수궁)이었다. 

일제에 의해 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순종은 창덕궁으로 이어하게 되면서, 집옥재뿐만 아니라 경복궁 자체가 더 이상 임금이 임어하지 않는 빈 궁궐이 되고 말았다. 집옥재는1996년까지 접근금지구역이었다. 일대에 청와대 경비부대가 주둔해 있었기 때문이다. 1996년 경복궁 정비계획에 따라 부대가 철수하면서 비로소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오래된 고서와 흥미로운 서책들이 많다.
ⓒ 김종성
 유익한 역사문화강좌도 열리는 집옥재.
ⓒ 김종성
 쉬어가기 좋은 북카페로 쓰이고 있는 정자 팔우정.
ⓒ 김종성
1891년에 지어진 집옥재처럼 경복궁도 역사가 200년도 안 된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말았는데, 침략한 왜놈들이 한 게 아니라 백성들이 불을 질렀다. 당시 조선의 왕인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하자 성난 백성들이 경복궁을 다 불태워 버렸다. 

그렇게 불타버린 경복궁은 수백 년간 방치되었다가 1867년 흥선 대원군이 재건사업을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경복궁은 서울에 있는 조선 5대 궁궐 중 지리적·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궁궐이지만, 이런 역사적 아픔으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고종이 여유롭게 쉬었을 팔우정은 북카페가 되어 시민들을 맞고 있다. 얼음 띄운 오미자차, 생강차, 녹차 등을 마실 수 있는데, 특히 한복 입은 여직원이 내려주는 커피 '가배차(혹은 가비차)'가 좋다. 고종이 즐겨 마셨던 커피란다. 영어 발음을 딴 이름인데, 일반 백성들은 커피의 빛깔과 맛이 탕약과 비슷하다고 하여 '양탕(洋湯)국'이라고 불렀단다. 고종은 신분덕분에 커피, 전기로 밝힌 전등, 자전거 등 서양문물을 맨 먼저 접한 사람이기도 했다.

집옥재에 갔다가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있는 문화강좌를 수강하기도 했다. 덕분에 궁궐과 관련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유익한 공부를 했다. 집옥재에선 정기적으로 시민들을 위한 문화강좌를 열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왕실의 기록문화를 주제로 한 '집옥재 왕실문화강좌'를 운영했는데, 시민들 호응이 좋아 올해도 상·하반기에 같은 이름의 강좌를 운영할 예정이란다 (경복궁 누리집 참조 www.royalpalace.go.kr)   

집옥재 바로 뒤엔 경복궁의 맨 끝에 자리한 북문 신무문(神武門)이 있다. 이 문으로 나오면 바로 앞이 청와대 정문으로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청와대 앞 공원과 산책로가 나있다. 

분수대광장에서 춘추관을 잇는 청와대 앞길이 6월 26일부터 24시간 전면 개방되고 있으니, 해저물녘 여유롭게 거닐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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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지난 6월 14일에 다녀왔습니다. * 운영시간 : 오전 10시 ~ 오후 4시까지 (화요일 휴관) * 대중교통편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도보 5분 * 문의 : 경복궁 관리 사무소 (02)3700-3924 * 서울시 ‘내 손안에 서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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