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넷 방송하는 'UFC 챔피언' 드미트리우스 존슨의 딜레마

반재민 2017. 6. 2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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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우스 존슨은 부업이 스트리머인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몬스터짐=반재민 기자] 지난 7일 UFC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 드미트리우스 존슨, MMA의 저명한 기자 중 한 사람인 아리엘 헬와니는 기사를 통해 UFC가 존슨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기사로 온 격투계가 떠들썩했던 그 시간, 당사자인 존슨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바로 자신의 게임방송에서 블리자드의 게임인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방송하고 있었다. 채팅창에 UFC의 폭로에 대한 많은 질문이 쇄도했지만, 존슨은 이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으며 묵묵히 게임에 임하고 있었다.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했던 드미트리우스 존슨, 많은 사람들은 그를 돈을 밝히는 기회주의자, 또는 졸렬한 파이터라는 비난을 했다. 하지만, 옹호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미 플라이급 방어전 이외에 돈을 많이 받는 일명 메가 파이트를 줄기차게 원하고 있었지만, 정작 10차 방어전 승리 이후 밴텀급 전 챔피언을 지낸 T.J 딜라쇼와의 파이트를 UFC가 추진하자 최다 방어 신기록의 목전에서 패할 수 없다는 자존심이 충돌했다고 보는 것이었다.

과연 드미트리우스 존슨은 기회주의자이고 탐욕이 가득한 파이터일까?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격투팬들이 있다면, 드미트리우스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길을 본다면 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는 부업으로 스트리머라는 길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왜 그는 파이트머니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드미트리우스가 살아온 길을 따라가려 한다.

■ 불우했던 캔터키의 아들, MMA에 입문하다.

여느 파이터들이 그래왔듯 드미트리우스 존슨의 어린 시절 역시 불행함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그의 친아버지는 그가 기억도 하기 전인 3살 무렵 집을 나가버렸고, 그의 어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를 안고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았고, 존슨은 아버지로부터 자기의 어머니,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자신을 혹독하게 단련시켜 나갔다.

자신이 태어난 캔터키에서 워싱턴으로 이주해 성장한 존슨은 워싱턴 고등학교 재학시절 여러 가지의 스포츠를 통해 운동에 재능을 보였다. 이미 야구선수로 AAU 월드시리즈에서 9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존슨은 본격적으로 레슬링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레슬링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주 대표에 뽑힐 정도로 그는 최고의 선수로 성장해나갔고, 이때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크로스컨트리까지 병행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피지컬을 이미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히 갖춰오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크로스컨트리 경험은 자신의 레슬링, 나아가 격투 인생에 있어서 큰 도움으로 작용했다. 현재도 존슨은 이따금 크로스컨트리를 하고 즐기고 있다고 밝힐 정도로 그의 크로스컨트리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레슬링 선수로 이름을 알아갈 즈음 존슨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바로 MMA였다. 대학에 입학한 존슨은 MMA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2006년 브로울 앳 더 몰이라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올렌 울리히를 상대로 1라운드 만에 TKO 승리를 거둔 존슨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로 MMA 무대에 뛰어들었다. 그의 첫 프로무대였던 AXFC 16에서 브랜든 피드 전에서 1라운드 17초 만에 TKO 승리를 거두며 충격적인 데뷔를 알린 존슨은 AXFC 18에서는 제프 브루기오스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프로 무대에 연착륙했다. 

이후에도 그의 연승 행진은 계속되었다. AXFC를 시작으로 노스웨스트 파이팅 챌린지, 제네시스, GF, KOTC, AFC 등 여러 단체를 거치는 동안 그는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를 상대한 선수들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서 나오는 펀치와 그라운드 기술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2010년, 존슨은 꿈의 무대에 입성한다. 바로 UFC에 버금가는, 아니 라이트급 이하에서는 최고의 단체였던 WEC였다.

 

WEC와 UFC를 거치며 그는 완전체로 진화했다.  

■ WEC에서의 첫 패, 그리고 챔피언

WEC는 당시 라이트급 이하 체급이 출전할 수 있던 최고의 무대였다. 하지만, 그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바로 플라이급 디비전이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가장 낮은 체급인 밴텀급애서 역대 파이터 중 가장 작은 160cm의 신장으로 상대보다 월등히 불리한 체격으로 싸웠다. 브래드 피켓과 도미닉 크루즈에 당한 패배도 이 때였다.

존슨은 갈망했다. 자신의 체급인 플라이급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WEC가 UFC로 흡수괴었지만, 플라이급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지처갔다. 승리는 거두고 있었지만, 시원스러운 승리는 거의 없었다. 모두 판정으로 끌고간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오매불망 체급신설을 기다리던 2012년 3월 UFC는 플라이급 신설결정을 내리고 플라이급의 초대챔피언을 뽑기 위해 후보 파이터 네 명을 선정해 토너먼트 형식으로 챔피언을 가리기로 했다. 후보는 오늘의 주인공 존슨과 조셉 베나비데스, 이안 맥콜, 우루시타니 야스히로. 존슨은 4강전에서 이안 맥콜을 상대했다. 한 번의 경기가 판정실수로 무승부 처리되어 재경기까지 가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맥콜을 잡았다. 상대는 야스히로를 이기고 올라온 베나비데스 2012년 9월22일 UFC 152, 운명의 타이틀전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베나비데스의 우세였다. 초반 베나비데스는 존슨의 장기였던 레슬링에 당하지 않기 위해 케이지로 밀어붙이는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존슨은 베나비데스의 얕은 술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현란한 풋워크와 빠른 몸놀림으로 베나비데스의 공격을 족족 피했다. 1라운드 막판에는 베나비데스를 다운시키며 KO를 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둘의 싸움은 팽팽하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존슨에게는 크로스컨트리로 다져진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있었다. 라운드가 계속 진행될수록 존슨은 우월한 체력을 바탕으로 베나비데스를 몰아 붙였다.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고, 5라운드가 모두 끝나고 심판의 손은 존슨의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존슨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제대로 된 체급을 찾은 ‘마이티 마우스’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존 도슨, 존 모라가, 알리 바가유티노프, 크리스 카라아소, 호리구치 쿄지, 헨리 세후도, 팀 엘리엇, 윌슨 헤이스가 호기롭게 도전장을 냈지만, 돌아온 것은 존슨의 무자비한 공격과 빠져나올 수 없는 그래플링의 늪뿐 이었다. 그 중에서도 베나비데스와 존 도슨은 두 번이나 존슨에게 도전했지만, 베나비데스는 1차전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며 1라운드 KO패, 도슨은 두 번 연속으로 만장일치 판정패하며 쓸쓸하게 컨텐더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10번의 타이틀 방어전 승리, 이 기록은 UFC에서 앤더슨 실바만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기록이었고,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처럼 보였다. 격투계가 평준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챔피언이라도 의외에 인물에 일격을 얻어맞을 수 있었다. 루크 락홀드가 그랬고, 파브리시오 베우둠이 그랬다. 하지만, 드미트리우스 존슨은 앤더슨 실바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이제는 그를 넘어설 준비를 모두 마쳤다.

하지만, 챔피언이 되었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도전자들의 거센 도전을 막아내야 했던 존슨은 옥타곤 안에서 뿐만 아니라 옥타곤 밖의 또 다른 것들과도 싸워나가야만 했다. 바로 돈이었다.

그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의 한 장면  

■ 배고픈 챔피언, 인터넷 방송을 하게 되기까지

드미트리우스 존슨이 게임 방송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5년 11월부터다. 바로 리복과 UFC의 독점 스폰서가 시작된 해였다. 대회 관련 의류는 리복으로 확정했으며, 리복 이외에 다른 선수 스폰서가 옷에 부착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파이터들의 생존 게임이 시작되었다. 당시 게임기였던 XBOX 360의 후원을 받고 있던 존슨에게도 위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가뜩이나 존슨의 파이트머니도 마땅치 않았다. 존슨의 현 파이트머니는 약 35만 달러(약 3억 8천만원) 헤비급 챔피언인 스티페 미오치치,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인 다니엘 코미어가 받는 60만 달러(약 6억 2천만원)에 절반정도에 미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리복 딜로 인한 스폰서의 손실은 그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존슨은 생각했다. 스폰서 없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트위치 TV에서 밸브 코퍼레이션이 만든 ‘도타 2’라는 게임방송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다양한 게임을 진행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하스스톤 등 유명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 했고, 시청자들은 후원으로 마이티 마우스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했다. 존슨 역시 인터뷰에서 “UFC에서 받는 돈보다 방송을 해서 버는 수입이 더 짭짤할 때도 있다.”라며 수입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존슨의 방송은 UFC에 대변하는 하나의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방송도중 존슨은 한 시청자로부터 TUF 시즌 24의 우승자가 그의 타이틀전 상대가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본인도 모르는 소식에 존슨은 되물었다. 그리고 그는 “재미있다. 만약 UFC가 진짜로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완벽하게 미친 짓이다. 콘테스트 우승자가 바로 챔피언과 맞붙는다니, 베나비데스에게 차라리 TUF에 참가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존슨은 뒤이어 “만약 내가 UFC 챔피언이 아니었다면 나라도 당장 TUF에 참가했을 것이다. UFC의 이런 처사는 플라이급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톱 컨텐더들을 엿 먹이는 행위”다. 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이에 부담을 느낀 UFC는 바로 TUF 24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취소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드미트리우스 존슨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단지 게임이 즐거워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전적으로 그의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존문제를 더 많은 팬과 소통하며 헤쳐 나갔다. TUF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도 존슨은 시청자들과 피드백하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인터넷 방송은 존슨에게 있어 생명줄이었다.

존슨의 부인인 데스티니 존슨과 그의 자녀들  

■ 존슨의 딜레마 ‘가족의 책임감과 명예의 사이’

 이후에도 존슨은 UFC에 돈이 되는 게임 일명 ‘머니 파이트’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파이트머니를 많이 받는 선수들과 겨뤄 더욱 많은 수입을 얻고 싶어 했다. 존슨이 이러한 요구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유는 바로 가족이었다.

 어린 시절 가난과 가정폭력 속에서 우울하고 비참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드미트리우스 존슨, 자신은 이러한 역경을 딛고 성공했지만, 그의 자식들에게는 이와 같은 비참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했다. 지난해 있었던 UFC 프로모 영상에서도 그의 가족사랑은 유별나다. 그는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싶다.”라고 이야기 했으며, 20살에 만나 결혼한 부인 데스티니 존슨에게도 “그녀가 없으면 나도 없다.”라는 말을 하며 가장의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존슨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때문에 자신에게 오는 시합은 피하지 않았다. 2016년 UFC 201에서 윌슨 헤이스와의 경기가 부상으로 인해 연기되었을 뿐 챔피언에 오르고도 존슨은 묵묵히 자신에게 들어오는 열 번의 도전장을 묵묵하게 받아냈다. 그애게 싸움은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존슨의 심경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바로 UFC의 오락가락 행태 때문이었다. 지난 10번의 타이틀 전 동안 존슨이 기대하던 머니 파이트는 없었다. 존슨은 계속해서 요구를 했지만, UFC의 대답은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2017년에 들어서자 갑자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UFC 온 폭스(UFC on Fox) 24에서 펼쳐진 윌슨 헤이스와의 타이틀전을 3라운드 암바 서브미션 승으로 장식하며 플라이급 타이틀 10차 방어에 성공한 존슨은 종전에 앤더슨 실바가 세운 미들급 타이틀 10차 방어와 타이기록을 세웠다. 신기록이 목전이다. 한 경기만 더 승리하면 11차 타이틀 방어라는 금자탑? 세우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체급이 플라이급인 이상 그의 적수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크나큰 천적이었던 조셉 베나비데스는 두 번이나 그의 주먹에 쓰러졌고, 호리구치 쿄지는 퇴출되었다. 그가 신기록을 세우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오는 7월 UFC 213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밴텀급 챔피언 코디 가브란트와 딜라쇼의 대결이 가브란트의 부상으로 취소된 것이다. 이 경기가 취소되자마자 딜라쇼의 창은 존슨으로 향했다. 딜라쇼는 "플라이급에서 싸울 수 있다. 존슨과의 타이틀전을 원한다. 나와 싸우면 돈 문제가 해결된다."라고 이야기했다. 화이트 대표도 여기에 맞장구를 쳤다. 존슨을 경기에 나서도록 강하게 압박했다.

존슨은 분노했다. "다 끝났다. X같은 상황이다"라며 입을 연 존슨은 "이건 딜라쇼의 커리어가 아니라 나의 커리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UFC의 처사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존슨은 충격적인 발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바로 UFC의 협박이었다.

존슨은 “나는 UFC의 발언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봐, 우리는 그 망할 플라이급을 폐지할거야. 그러니 빨리 딜라쇼와의 경기를 받아들여'라고 했다"며 이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플라이급 챔피언의 위상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존슨은 “나는 어떠한 밴텀급 파이터와 싸우지 않겠다.”라고 미리 천명했다.

명예와 돈 사이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많은 격투 팬들은 존슨을 비난했다. 정작 머니파이트를 부르짖다가 정작 신기록의 목전에서 머니파이트가 추진되자 이를 피하는 듯한 모습에 실망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존슨이 얼마나 UFC에게 무시를 당했으면, 챔피언이 UFC의 계획에 좌지우지 되고 있는 것인지 동정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그는 블루홀 스튜디오의 FPS 게임 ‘배틀 그라운드’를 플레이하는 데 열심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그의 표정은 별로 편치 않아 보인다. 협박사건 이후 지금까지 UFC에 관련한 채팅이 많이 있지만, 별로 읽고 싶지 않은 듯 무심하게 넘겨버리는 그의 모습에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최다 타이틀 방어자로서의 명예 사이의 고뇌가 깊게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오늘도 그는 인터넷 방송을 할 것이다. 과연 마이티 마우스는 자신에게 찾아온 두 번째 난관을 딛고 최고의 영예에 우뚝 설 수 있을까? 드미트리우스 존슨의 고뇌와 게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ZUFFA LLC, 드미트리우스 존슨 SNS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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