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탈락' 제주, 경험부족에서 난투극까지

김정용 기자 입력 2017. 6. 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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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제주유나이티드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탈락한 과정은 자멸에 가까웠다. 판정과 도발 등 제주 선수들이 흥분할 만한 요소는 잔뜩 있었지만, 결국 일을 그르친 건 경험 부족으로 거기 넘어간 과정이었다.

제주는 31일 일본 사이타마스타디움2002에서 열린 `2017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16강 2차전에서 연장전 끝에 우라와레즈에 0-3으로 패배했다. 1, 2차전 합계 2-3으로 제주가 탈락했다. 이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생존해 있던 제주가 패배하며 K리그는 8강에 한 팀도 올리지 못했다.

제주의 문제는 경기력에서부터 나왔다. 경기 초반부터 우라와의 패스워크가 잘 돌아간 반면 제주는 기초적인 실수를 자주 저지르며 불길한 모습을 보였다. 우라와는 분위기가 뜨겁기로 유명한 팀이다. 여기에 패스 축구에 유리하도록 물을 엄청나게 뿌렸다. 제주가 홈 승리 당시 일부러 잔디를 약간 울퉁불퉁하게 유지한 것과 완전히 다른 접근이었다. 제주 선수들은 장쑤쑤닝, 감바오사카 원정을 통해 해외 원정을 어느 정도 경험했지만 우라와의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접하고 집중력을 잃은 모습이 역력했다.

제주의 자멸에 가까운 상황이 경기 내내 나왔다. 센터백들은 공중볼 낙하 지점을 찾지 못해 위기를 자초했고, 미드필더들은 가까이 있는 동료도 발견하지 못해 패스미스를 했다. 그동안 제주 수비에서 지능을 담당해 온 베테랑 조용형이 흔들렸고, 권한진도 함께 실수를 연발했다. K리그 최고 미드필더인 권순형과 이창민도 평소 같지 않았다. 이창민은 평소처럼 뛰어난 발재간으로 우라와의 압박을 벗어나더니 갑자기 패스할 곳을 찾지 못하고 무리한 슛으로 공격 기회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평소 경기력이 아니었다.

제주의 세트 피스 상황에서 정운과 권순형의 킥이 모두 어이 없이 빗나간 건 제주가 자멸 중이라는 걸 잘 보여줬다. 반면 우라와는 세트피스를 확실히 살렸다. 멀리서 난 프리킥을 플레이메이커 가시와키 요스케가 정확하게 올렸고, 공격수 고로키 신조가 골로 마무리했다. 각 선수가 자기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장면이었다. 제대로 마크한 제주 선수는 없었다.

제주는 실점 이후에도 이충성에게 골대에 맞는 중거리슛을 내주는 등 경기력을 회복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결국 전반전 안에 두 번째 실점을 내줬다. 그 과정도 자멸에 가까웠다. 전방 압박에 공을 빼앗기며 위기가 시작됐다. 고로키가 제주 미드필드를 넘어 수비진 쪽으로 달려들자 수비수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드는 우를 범했다. 순간적으로 노마크가 된 이충성이 패스를 받아 골을 터뜨렸다. 슛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좁은 각도로 잘 밀어 넣었다.

우라와의 경기 운영 방식은 독특하다. 스리백을 기반으로 3-4-2-1 포메이션인 것처럼 보이지만, 지공 상황에선 미드필더 한 명이 후퇴하고 한 명이 전진해 4-6처럼 변한다. 수비와 공격 사이에 간격이 크게 벌어지는데, 전방으로 한 번에 날리는 긴 패스로 공격을 전개한다. 스리백이 직접 빌드업하지 못하게 막으면 가시와키가 후퇴하는데, 이때도 패스를 받을 선수들을 계속 견제하면 우라와 공격은 시작부터 꼬일 수 있다. 제주가 홈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뒀을 당시의 경기 전개였다.

홈으로 간 우라와는 제주 수비진 바로 앞으로 전진한 공격수에게 살짝 띄운 패스를 높은 확률로 연결하며 공격을 전개했고, 제주가 어설프게 끊으면 바로 전방 압박에 들어가 2차 기회를 잡았다. 제주가 허둥대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는 공격 방식이었다.

후반전 들어 제주 경기력이 조금씩 회복됐지만 여전히 근소한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교체로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조성환 감독은 선발 라인업을 지난 1차전과 똑같이 내보낸 뒤, 후반저 첫 교체 카드로 황일수를 빼고 진성욱을 투입했다. 교체 아웃되기 직전 안현범과 호흡을 맞추며 이날 제주의 가장 좋은 공격을 이끌어낸 황일수를 뺐고, 진성욱은 투입된 뒤 큰 활약이 없었다. 전술적으로도 효과가 없는 교체였고, 경험 많은 선수를 빼고 경험 적은 선수를 투입했다는 것 역시 원정 분위기를 감안하면 효과를 내기 힘든 변화였다. 선수들뿐 아니라 조 감독까지 경험 부족을 노출했다.

월드컵 본선까지 경험한 베테랑 조용형이 평소와 달리 허둥댄 것이 치명적이었다. 조용형은 두 차례 실점 장면에서 모두 빌미를 제공했고, 그 뒤로도 어렵지 않은 상대 패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결국 후반 34분 백태클로 두 번째 경고를 받아 퇴장 당했다. 공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에 억울한 면이 있었다. 다만 경기 전반적으로 조용형이 모험적인 수비를 너무 남발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정신적으로 회복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용형의 퇴장은 더 아쉬웠다. 후반을 팽팽하게 보내던 제주는 퇴장 이후 연장전까지도 수적 열세를 그럭저럭 극복하며 잘 버텼다. 조 감독은 수비수를 추가 투입하지 않고 포백 전환을 지시했으며, 미드필더들이 수비라인에 합세해 사실상 `식스백`에 가까운 상태로 버텼다. 그러나 연장 후반에 이창민의 완벽한 크로스를 멘디가 헤딩했으나 골대를 빗나가며 승리할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기회 뒤에 바로 찾아온 위기에서 모리와키 료타에게 실점했다.

막판엔 신경전을 넘어 난투극을 벌이며 최악의 마무리를 했다. 우라와 선수들이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시간을 끌며 반칙을 하고 제주 선수들을 툭툭 치며 약간 치사한 방식을 썼다. 문제는 빨리 경기를 시작해야 하는 제주 선수들이 도발에 넘어가 시간을 오래 끈 데서 시작됐다. 권순형이 상대 공격수 즐라탄과 신경전을 벌이며 감정이 점점 격앙됐다. 나아가 벤치에 있던 백동규가 조끼를 입은 채 그라운드를 가로질러가 상대 선수를 가격한 건 제주를 매너에서도 진 팀으로 만드는 최악의 행동이었다. 제주 선수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도발보다 `난입 및 가격`이 더 나쁜 행위다.

우라와는 원래 상대 선수 도발 등 논란이 자주 생기는 팀이다. 감바처럼 `얌전한` 축구를 하는 전형적인 J리그팀과 컬러가 다르다. 이 점을 파악하고 심리적으로 대비했어야 했다. 특히 마키노 도모아키는 제주 벤치를 심하게 도발한 뒤 발끈한 제주 선수들을 피해 전력으로 도망다니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제주는 탈락뿐 아니라 난투극에 따른 징계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우라와의 도발 수위에 따라 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양팀이 그라운드 위부터 라커룸에 걸친 신경전을 계속 이어가는 큰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두 팀 모두 징계 수위가 중요하다. 제주는 화를 참지 못했고, "마지막 K리그 팀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던 경기 전 각오와는 딴판인 마무리였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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