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소방관의 날] 존경보다 연민의 대상된 소방관들..달라질 수 있을까?

이창수 기자 2017. 5. 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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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국제 소방관의 날

“나는 챔피언이지만 소방관으로 출동하는 모습은 변하지 않을겁니다. 고향 클리블랜드를 지키고 보호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진정한 목표입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 오크우드 소방서에는 조금 특별한 소방관이 있다. 현직 소방관 겸 응급구조사이자 부업(?)으로 UFC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따낸 스티페 미오치치(35)가 그 주인공. 2011년 6월 UFC에 데뷔한 미오치치는 세계최고의 타격 실력으로 명성을 떨치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경기가 끝나면 하루 12시간씩 파트타임으로 소방관 유니폼을 입는다. 지난해 9월 1차 방어전을 승리하고나서도 묵묵히 제 자리로 돌아갔다.

미오치치가 소방관이란 직업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희생정신도 있겠지만, 소방관이 미국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소방관은 말 그대로 ‘히어로’다. 처우는 말할 것도 없다. 소방관이 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일선에서 뛰는 현직들의 자부심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조 과정에서 목숨을 잃게 되면 전국민이 경의와 애도를 표한다.

불안정한 신분, 노후화된 장비, 과도한 업무, 소송 당할 위험 등 열악한 환경에 둘러싸인 우리나라 소방관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최근 폴리싱어 이승환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하얀 베이킹 파우더를 뒤집어 쓰는 동영상을 올렸다. 이른바 ‘소방관 GO 챌린지’다. 그는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과 인력 확충, 처우개선을 기원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가수 이승환의 `소방관 GO(고) 챌린지. 유투브 캡처

예전보다야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소방관들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캠페인이다. 워낙 오랫동안 소방관 처우 등 문제를 접해온 시민들은 이제 소방관에 대한 존경보다 연민이나 위로를 보내는 게 더 익숙해질 지경이다. 그럼에도 개선되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구조활동에 따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 소방관이 2300여명(전체의 6%)에 달하고,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소방관 1명이 담당하는 인구수는 1210명으로, 미국(1075명), 일본(820명)에 비해 많다. 1만명 당 순직률(2011년 기준)도 1.85명으로 미국(1.01명), 일본(0.7명)과 차이가 크다. 노후화된 소방차, 개인장비 사비구입 등 문제는 과거부터 계속해 지적됐지만, 크게 변한 건 없다.
2015년 4월 화재진압을 마치고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소방관의 모습. 부산경찰청 페이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면서 소방방재청을 해체했다. 조직과 소방관의 지위가 격하됐고, 이후 소방관들의 1인 시위가 이어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주요 대선후보 모두 소방방재청 부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란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단순히 조직도만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과거 많은 정치인들이 비슷한 공약들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달라진 게 없다는 것도 회의적인 시선의 이유다. 지난해 7월 국회에서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뉜 소방관의 국가직 일원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소방관 눈물 닦아주기 법’이 발의됐지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수개월째 계류돼 있는 실정이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우리가 소방관에 관심 갖는 이유

2001년 3월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다가구 주택에서 일어난 화재·붕괴 사고로 소방관 6명이 순직했다.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어야했던 대원들은 건물 안에 시민이 있다는 말에 화마가 넘실대는 건물 안으로 주저 없이 들어갔다. 당시 순직한 한 소방관의 책상에 놓여있던 것으로 알려진 뒤 유명해진 ‘어느 소방관의 기도’란 시는 현재까지도 많은 소방관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다.

“연기는 진하고 공기는 희박할 때 내가 준비되게 하소서. 내가 들어가서, 어린 아이를 구하게 하소서. 나를 일찍 거두어 가시더라도 헛되지 않게 하소서 (…) 지옥같은 불속으로 전진할지라도 신이시여 나는 여전히 두렵고 비가 오기를 기도합니다”(일부 발췌)

이 시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건 목숨을 담보로 구조활동에 나서는 소방관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 절박한 현장에 어느날의 나와 내 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온라인에서 각계의 인사들이 소방관을 위해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다. ‘소방관 눈물 닦아주기 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최근 ‘소방관 GO 챌린지’ 영상을 올리며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보다 안전한 사회를 꿈꿔왔지만 소방관의 처우와 작업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국민들의 계속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것이 곧 ‘나의 문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나직이 기도를 되뇌며 거침없이 불길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은 소방관이 유일하다. 그리고 안전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란 것을 이제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시민을 지키는 소방관들에게 계속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영상·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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