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9) 걷기는 항상 길을 잃는 주제다

황현도 입력 2017. 4. 26. 09:03 수정 2017. 6. 1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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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다부룩다부룩 돋은 봄꽃들 마냥 집들이 언덕 꼭대기에 모여 있는 간드룩, 사쿠라라는 이름 때문인지 일본인들이 꼭 들린다고도 하는 로지에 머문다. 직접 빵을 굽는 이곳의 유일한 집이기도 하여 마을에 묵는 여행객들이 더러 찾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모두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로 가는 걸음이었다.

“빵 굽는 건 어디서 배웠어요?”

카트만두에서 배워왔다고. 이곳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집으로, 아내와 세 살 아이는 포카라에 두고 온 스물일곱 살의 아들이었다.

한밤, 와이파이로 주인과 씨름을 좀 했다. 제도학교의 한 중학교에 올 봄 학기 ‘예술명상’이란 수업을 개설하기로 했고, 관련하여 오늘 메일을 넣기로 했다. 기다릴 그 마음이 바쁘겠다 싶어 안달이 나면서 짜증이 좀 일었는데, 한 아이가 하던 말이 딱 이짝이었네.

“아, 정말 되는 일이 없어!”

그럴 때면 놀란 눈으로 아이들에게 말한다, 말해준다.

“이런! 되는 일이 없다니. 너 누워 있다가 어느 날 뒤집었어! 기어만 다니다 어느 날 섰다니까! 어느 날 숫자를 셌고, 글자를 읽었어!”

누구나 서고 걷고 뛰는 일반적 성장사이겠지만 각 개인으로 보자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이겠는가. 누구나 걸었다고 내가 걷게 된 것이 깎이는 건 아니다. 예순이 머잖은데도 나는 밥을 짓는 게 신통하고 청소를 하는 게 기특하다. 넘들이 다 하는 것이든 말든.

다시 와이파이로 돌아와서,

사람이 북적이는 때라면 늘 켜둘 것이지만, 처음엔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이다, 다음은 자꾸 끊긴다, 다음은 고장났다로 사우지(여객의 주인 여자를 일컫는 네팔어)의 회피가 이어졌다. 통신비용을 아끼려는 그 사정이야 왜 모를까만 오늘 보내기로 약속한 메일이 있다.

어디 있으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마주하게 된다. 애초에 한 약속과 틀리지 않느냐, 그래서 그야말로 갈고리(곤조라 쓸 수는 없고) 같은 마음이 생긴 거다. 저녁을 먹을 때 밤에 메일을 하나 보내야 한다 분명히 얘기했고, 문제없다고 했으니까. 사실 늦은 메일도 한국 쪽에서 그만한 사정이 헤아려지지 못할 것도 아닌데 굳이 고집이 생겨버린 거지. 그저 스쳐갈 사람이라 하더라도 했던 약속에 이렇게 한만하면 안 되는 거니까.

할머니는 어느새 잠자리로 가버렸는데, 만만한 아들에게 고집스럽게 따졌다. 들볶인 아들이 싹싹 빌다시피 해서야 깐깐한 주인 할머니는 겨우 몇 십 분을 켜주었네. 불이 꺼진 주인네 문 앞에 서서 물러나지 않았으니까. 포기하고 돌아갈 기세가 아니었으니까. 성수기가 아니라면 트레킹 중엔 아예 쓰지 않을 요량으로 떠나시길.
<<사진 = 간드룩의 마을길>>
<<사진 = 로지의 방>>
<<사진 = 간드룩의 로지>>
<<사진 = 아침이 오는 간드룩에서 본 마차푸차레와 그 앞의 마르디 히말>>

<2017년 2월 27일, 네팔행 5일차, 트레킹 2일차: 간드룩-란드룩-포레스트 캠프>

아! 새벽은 마차푸차레(6,997m)를 마을로 데리고 왔다. 로지의 2층 베란다 끝에서 해우소로 가려고 돌아서는데, 피쉬테일로도 불리는 물고기 꼬리 모양 봉우리가 한껏 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 있겠지, 거기 있어, 그러고도 눈앞에서 매양 경이로운 산 군락. 6,000m 아래로는 산으로 이름도 못 얻는다는 네팔의 산들, 너무 놀라운 풍경이다가 어느새 일상의 한 장면으로 산들이 들어오던 지난 경험이 있어도, 사진으로 먼저 만났던 풍경이 이렇게 실물로 설라치면, 그야말로 외마디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어둠에서 서서히 몸체를 드러내는 아침이라면 장엄하기 더할 밖에.

포카라 페와 호수에선 늘어선 안나푸르나 히말리안 렌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안나푸르나 남봉-히운출리-안나푸르나 1봉-마르디 히말-마차푸차레-안나푸르나 3봉-안나푸르나 4봉-안나푸르나 2봉-랑중 히말-남운 라 패스’로 이어지는 사진 한 장쯤 눈에 익히고 떠나면 대략 전체 산 그림에도 도움 크다.

여명부터 산에 빛 부스러기 앉기 시작하는 동안, 다시 햇살이 번지고 온전히 봉우리에 햇볕이 다 닿을 때까지 숨죽인 시간은 순간이 어떻게 영원으로 가는지 그 앞에서 그만 깨칠 것만 같다. 네팔리들과 함께 어제 하오에 돌았던 마을을 아침엔 홀로 구석마다 걸었다. 마당을 쓸던 아주머니와 인사도 나누고 풀 베던 아저씨와 말도 섞고...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기쁨이 생을 채우나니. 마르디 히말 트레일은 정글이라고 겁을 꽤 주던, 그러니 자기네랑 같이 ABC 가자던 가이드랑 아침에 만나기로 했다. 밥을 먹은 뒤 떠나기 전 최종 결정을 알려주겠노라 했던 것.

아침 8시, 네팔인들과 헤어져 란드룩을 향해 걸었다.

마르디 히말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가지 않은 길을 누가 알겠는지. ABC 트레킹에서 마차푸차레를 오른편으로 멀리 두고 가는 길이라면(그러다 ABC 직전 MBC;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를 바로 거치지만) 마르디 히말 트레킹은 마차푸차레를 두고 쑤욱 안으로 들어가는 여정.

포터도 가이드도 없이. 10kg을 막 넘은 배낭을 지고 오른다. 어제 김체에서 간드룩까지 걸어본 바로 걸을 만하겠다고 한 결정.

급하게 경사진 계곡 건너 맞은편, 다시 가파르게 올라간 언덕으로 란드룩이 자리한 것이 보였다. 보이는 저곳까지 콜라(계곡)를 향해 수많은 계단을 밟을 것이고 다시 수많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 닿을 테다, 그 계단을 수굿하게 걸으며 돌을 놓았을 순정한 마음들을 깊이 경외하면서. 우리 삶은 얼마나 많은 무임승차의 길인가. 내가 하나 손 보탠 것도 없는데 기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고 밥을 먹고 따순 잠자리를 얻고. 그래서 누군가를 위한 기꺼운 마음이 또 그리 기껍게 나오는 게고. 받은 자가 나눌 줄 아는 법이라.

<<사진 = 마을 끝에 곰파(티벳 절)가 있는 간드룩>>
<<사진 = 간드룩에서 모디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솜양지꽃 같은 노란 꽃이 담벽에서 생글거린다.>>
<<사진 = 왼쪽 언덕을 돌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벌써 길을 헤맨다. 걷기는 항상 길을 잃는 주제이다, 레베카 솔닛이 <걷기의 역사>에서도 일찍이 말했다만. 뜻밖의 곳에 갈래, 또 갈래다.

지도를 꺼내든다. 하지만 지도 너머로도 산 곳곳에는 현지인들의 숱한 생활의 길들이 있을 테다. 하지만 어찌해도 길은 계곡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안전한 길을 택하기로 한다. 조금 더 널찍한 길로.

계단을 밟아 내려가자 맞은편으로 네팔 사람들이 걸어 올라온다.

“나마스테!”

내 안의 신이 그대 안의 신에게 인사한다, 나는 이 우주를 모두 담고 있는 당신을 존중한다, 나는 당신에게 마음과 사랑을 다해 경배한다, 나는 빛의 존재인 당신을 존중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Hello, Hi, 그쯤일 인사. 인도와 네팔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하게 되고 듣게 될 낱말.

"란드룩 가는 길 맞나요?”

사람이라도 그리 만난다면 다행한.

어쩜 이 여정은 얼마를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일이 잦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길이 또 갈라진다. 이 길이 맞나...

(계속)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풍경 더 보기

간드룩의 마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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