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 연기만 판 13년.. "듣보잡 악플에 웃었죠" [인터뷰]

권남영 기자 2017. 4. 1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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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박명석 역을 감칠맛 나게 소화해낸 배우 동하. 서영희 기자


KBS 2TV ‘김과장’을 보면서 괜스레 자꾸만 눈에 밟히던 한 사람을 꼽아보자면, 그건 아마도 ‘멍석이’가 아닐는지.

낙하산 인사로 TQ그룹 운영 본부장 자리에 앉은 회장(박영규) 아들 박명석은 초반 ‘밉상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본모습은 아니었다. 김과장(남궁민)에게 혼쭐이 난 뒤 의기소침해진 그는 그저 마음 여린 ‘어른 아이’였다.

이토록 입체적인 캐릭터의 맛을 제대로 살린 건 온전히 배우 동하(본명 김형규·25)의 공이었다. 기복이 큰 인물을 흔들림 없는 연기력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탄자니아어는 물론 성대모사까지 잘하다니 모자람이 없다. 숨길 수 없는 귀여움은 덤이었다.

혜성처럼 반짝 등장한 신인이려니 했을지 모른다. 동하는 사실 탄탄히 연기 경력을 쌓아온 9년차 배우다. 연기에 발을 들인지는 어느덧 13년이나 흘렀다.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KBS2·2009)로 처음 카메라 앞에 섰었으나,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 다시 연극 무대로 향했다는 그다.

‘김과장’으로 처음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동하는 섣불리 ‘인생작’ 혹은 ‘인생캐릭터’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지금껏 해온 모든 작품이 소중하고, 언제나 다름없이 최선을 다해왔기에 애정의 정도를 매길 수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아직까지도 헤어 나오지 못했을 만큼 명석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커요. 하지만 ‘명석이가 인생캐릭터’라고 얘기해버릴 순 없을 것 같아요. 그건 제가 소중하게 여겼던 다른 캐릭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테니까요. 매 작품 평등하게 사랑했고, ‘김과장’도 그 중 하나입니다.”

동하는 “연기를 하고 있을 때는 그냥 즐겁고 재미있다”고 했다. 단순한 대답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 안에는 어떠한 조건도 필요치 않는 열정이 담겨있으니. “목숨 걸고 한 적도 있을” 만큼 연기가 좋아 죽겠다는 이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동하를 만났다.

KBS 2TV '김과장' 극 중 장면들.


-전작 ‘나의 절친 악당들’(2015) ‘뷰티풀 마인드’(KBS2·2016) 등에서도 느꼈지만 연기 디테일이 굉장히 좋다. 캐릭터 연구를 어떤 식으로 하는 편인가.
“일단 그 사람이 되려고 해요. 저라는 사람의 모든 걸 내려놓고 캐릭터 입을 준비를 하는 거죠. A4용지 한 장을 놓고 시작해요. 인물의 나이 직업 성격 등 대본에 명시돼있지 않은 부분을 파고들어요. 예를 들면, 명석이가 좋아하는 색깔은 뭘까, 식습관은 어떨까, 살면서 가장 행복하거나 슬펐던 순간은 언제일까, 그런 걸 쭉 적는 거예요. 제가 설정한 게 정답이 되는 거죠. 그 작업이 일주일 정도 걸려요.”

-그럼 명석이가 제일 행복하고 슬펐을 때는 언제였나.
“음,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어머니(이일화)한테 칭찬을 받았을 때. 그리고 가장 슬프고 힘들었을 때는 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러니까, 박영규 선배님이 연기하신 박회장은 계부라고 설정을 한 거죠. 왜냐면 마지막에 명석이가 아버지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하는데, 사실 부자지간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캐릭터의 톤이나 감정선이 초반과 후반에 많이 달라 표현하기 어려웠을 수 있겠다.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중간 중간 (뜬금없이) 코믹적인 요소가 있기도 했고요. 근데 ‘어떻게 해’라고 고민하기보다 무조건 해내야 했어요. 저에게 주어진 숙제 같은 거니까요. 그래서 초반에 좀 격한 행동을 하더라도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동시에 엿보일 수 있게끔 연기를 했죠.”

-요즘 포털사이트에 본인 이름을 많이 검색해본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기사 보려고 검색을 하는데, 드라마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댓글 같은 걸 아예 안 봤어요. 악플이 달릴까봐 되게 걱정했거든요.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멘탈이 흔들릴 수 있잖아요. 물론 중간에 한두 개 씩은 봤죠. 궁금하니까(웃음). 드라마 종영 이후에 한 이틀 날 잡고 댓글만 쭉 봤는데, 다행히 악플이 딱 한 개 있더라고요.”

-제일 인상적이었던 반응은 뭐였나.
“그 악플 하나가 인상적이었죠(웃음). ‘이건 웬 듣보잡이야’라고 적혀있었는데…, 당연한 반응이니까 기분은 안 나빴어요. ‘어떻게 알았지? 듣보잡 맞는데’ 하면서 웃어넘겼죠.”


-처음 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은 언제였는지.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중간고사 끝나고 친구들이랑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을 보러갔거든요. 액션연기 하시는 류승범 선배님을 보면서 ‘되게 멋있다’ 감탄하고 있는데 옆을 보니 관객들이 다 저랑 똑같은 표정으로 즐거워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배우라는 게 되게 멋있는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 배우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들을 했나. 예고 준비도 했다고 들었다.
“일단 연기학원에 등록했어요. 학원비는 제가 편의점 알바하면서 번 돈으로 냈고요. 그렇게 3년 정도 예고 입시 준비를 했는데,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묻지마 폭행’을 당해서 콩팥이 찢어진 거예요. 주치의가 ‘지금 시험 보러 가면 사망할 확률이 50%’라고 했는데, 억울해서 무조건 가야겠더라고요. 부모님도 반대하셨지만 ‘지금 못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설득해서 시험장에 갔어요. 하지만 몸을 못 움직이니 연기가 제대로 나올 리 없죠. 떨어졌어요. 그 이후 연기에 대한 애착과 꿈이 커졌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연기자의 길을 처음부터 지지해주셨나.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웠거든요. 그럼에도 어머니의 학구열이 강하셔서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만큼 아들 공부시키려는 의지가 크셨던 거죠. 그런데 연기를 하겠다고 했으니 허락을 하시겠어요(웃음)? 정말 많이 혼났죠. 최근까지도 반대가 심하셨어요.”

-어머니가 ‘김과장’ 마지막회를 보고 우셨다고. 그제야 마음을 돌리신 건가.
“네. 어머니가 ‘그래, 연기해라’라고 말씀해주신 게 ‘김과장’ 끝날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한 달도 채 안 된 거죠. 부모님께 연기자로 인정받기까지 13년이 걸렸네요(웃음).”


-홀로 연극 무대 설 때 힘든 순간도 많았겠다.
“연기를 하고 있었잖아요. 근데 힘든 게 뭐가 있겠어요.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거나 하는 경우는 많았는데…, 어쨌든 제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까 마음은 행복하고 뿌듯했어요.”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건가.
“막연하게 ‘언젠가 난 될 거야’라는 것보다 ‘계속 연기를 해야겠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유명한 배우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물론,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조연은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진다는 점에서 (주연)욕심이 좀 나긴 해요. 하지만 인지도에 대한 욕심보다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배우로서 이루고픈 최종 목표가 있다면.
“연기를 잘하는 사람. 제 이름을 딱 들었을 때 ‘어, 알아. 연기 잘하는 배우잖아’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연기를 잘한다’는 기준치가 100이라면, 지금은 어느 정도 온 것 같나.
“아직 1%도 안 온 거 같아요. 근데 연기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정답은 없잖아요. 판단은 관객들이 내려주시는 거니까요. 저에게 ‘잘한다’는 평가를 내려주실 분들의 %를 높이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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