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이 금혼령을 내린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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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왕과 왕세자들은 '특급 신랑'이었을 것 같지만, 그리 인기가 높지만은 않았던 듯싶다.
국혼이 결정되면 국왕은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 금혼령을 내려 14~20살 나이 처녀들의 혼인을 금하고, 그 또래 여식을 둔 문벌 가문들에게 사주와 가계기록을 적은 처녀 단자를 바치도록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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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임민혁 지음/글항아리·2만원
조선시대 국왕과 왕세자들은 ‘특급 신랑’이었을 것 같지만, 그리 인기가 높지만은 않았던 듯싶다. 국혼이 결정되면 국왕은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 금혼령을 내려 14~20살 나이 처녀들의 혼인을 금하고, 그 또래 여식을 둔 문벌 가문들에게 사주와 가계기록을 적은 처녀 단자를 바치도록 명했다. 하지만, 양반가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개 딸을 숨기려고 했으며, 나이를 늘리거나 줄이고 더러는 병이나 허물을 핑계 삼는 등 갖은 방법으로 피하려고 했다. 이 때문에 조정은 실적이 저조한 각 도의 수령들에게 죄를 묻고, 당시 중매쟁이로 인기가 높았던 맹인 점복가들이나 지역 동임(동네 일을 맡아보는 사람)들을 동원해 처녀의 집을 탐문했다고 한다.
국왕의 국혼 예산은 무려 6억8000만원이나 소요되었지만, 양반가에서 간택 참여에 들여야 하는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구중궁궐에 평생 갇힌 정치적 존재로서 삶이 가혹하고 위태로울 것도 뻔했다. 국혼이 왕실과 권문세가의 정치적 타협에 의해 이미 내정되었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들러리 설 이유도 없었으리라.
임민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임연구원이 쓴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는 국왕이 어떻게 점지된 짝을 찾아 왕비로 간택해 가례(혼례)를 치렀는지를 살펴본 혼례사이다. 처녀 단자 기피에 따른 금혼령 남발, 초간택·재간택·삼간택 등 3차례에 걸친 심사 과정, 왕비 내정을 둘러싼 국왕과 벌열 가문의 갈등, 가례 준비과정과 동뢰연(결혼식), 독특한 후궁제도 등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특히 영조가 첫째 비 정성왕후가 죽자 2년 뒤 66살 나이에 새 장가를 가면서 본인이 직접 간택에 참여해 15살 난 정순왕후를 낙점했던 일화 등이 흥미롭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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