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보며 산 오르다 미끌.. 아찔한 '산행 스몸비'

이슬비 기자 2017. 3. 2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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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스몸비' 1300만명] [6] 등산로도 위험하다
- '소주 1병' 음주 등산과 마찬가지
낭떠러지 근처서 사진 찍다 추락
동영상에 팔려 느릿느릿 걷다가 "왜 길 막아" 다른 등산객과 다툼
"산에 스마트폰 금지 표지판 달판"

일요일이었던 지난 5일 낮 1시쯤 서울 도봉산 와이어 계곡 근처에서 등산객 박모(48)씨가 40m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소방 당국 조사 결과 박씨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풍경을 찍다가 발을 헛디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오른쪽 발목이 골절되고, 머리 부분이 5㎝ 넘게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같은 날 오후 3시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던 조모(49)씨도 같은 장소에서 굴러 떨어졌다. 조씨는 허리를 다쳐 산악구조대 헬기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스마트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하루 두 번이나 추락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도봉산 산악구조대 관계자는 "나무가 완충 작용을 해서 천만다행이지 하마터면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다"며 "'스마트폰 금지' 표지판이라도 붙여야 할 판"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등산을 하는 스몸비(스마트폰+좀비) 때문에 산악 안전에 적신호가 커졌다. 좁고 미끄러운 산길에서 일부 등산객이 이어폰을 꽂은 채로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느라 자신은 물론 남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것이다.

지난 1월 경기 고양시 북한산 정상 백운대에서 50m 정도 떨어진 암벽 지대. 119 소방 헬기를 타고 출동한 문기준(23)·이주용(22)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원이 헬기 위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스마트폰만 하지 마시고 비켜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이날 구조 헬기는 등산로에서 발을 헛디뎌 바위 틈새로 떨어진 김모(71)씨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긴급 출동했다. 그런데 사고 지점 부근에 있던 등산객들이 "헬기가 신기하다"며 스마트폰 카메라(폰카)로 사진을 찍는 바람에 고도를 낮출 수 없었던 것이다.

헬기장이 따로 없는 산악 지대에서는 지상 20m까지 헬기 고도를 낮춰 부상자 가까이 접근한 뒤 로프를 내려 부상자를 구조한다. 헬기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거센 바람에 날려 위험할 수 있다. 문 대원은 "구조 지점 부근에서 등산객들이 비켜주지 않으면 헬기 접근이 늦어져 구조 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헬기가 가는 곳은 등산로가 아닌 위험한 암벽 지대인데 헬기를 가까이서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들고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아찔하다"고 했다.

스마트폰에 빠져 느릿느릿 걸어가는 등산객 때문에 시비가 붙기도 한다. 부산진구에 사는 신모(47)씨는 지난달 금정산을 찾았다가 앞에 가던 60대 등산객과 말다툼을 벌였다. 이 등산객이 한두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에서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느라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신씨는 이 등산객에게 "스마트폰 그만 보고 빨리 좀 가달라"고 했다가 되레 "젊은 사람이 못하는 소리가 없다"는 핀잔을 들었다. 신씨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풍경을 보러 산에 오는 건데 스마트폰 화면만 볼 거면 왜 등산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등산로 길막(길을 막다의 줄임말)하는 사람 때문에 어깨빵 당할 뻔했다' '길막하는 사람들은 헛기침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더라' 같은 글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산행(山行) 중 스마트폰 사용은 사망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지난 2014년 2월 북한산 용암문 부근 절벽에서 50대 등산객이 폰카로 사진을 찍다가 30m 절벽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당시 바위에 눈이 덮여 굉장히 미끄러웠는데, 이 등산객은 스마트폰을 놓치고 급히 이를 주우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지난해 6월에는 페루의 관광지 곡타 폭포에서 한국인 김모(28)씨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전성권(51) 북한산경찰산악구조대장은 "요즘 등산객들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들고 산에 오르면서 앞을 보지 못하고 발을 헛디뎌 추락하는 사고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며 "스마트폰 보면서 산행하는 것은 소주 1병 마시고 음주 산행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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