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카페에 온 듯

2017. 3. 2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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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주스 노승미 대표의 집은 모든 신혼집의 공식을 깼다. 마치 어느 카페에 온 듯 노련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테라스는 노승미 대표가 집안에서 가장 애착을 가지는 공간이다. 온돌이 깔려 있어 겨울에도 따뜻하다. 테라스와 거실의 테이블, 반려견 뭉이가 앉아 있는 의자 모두 Mobel Lab. 의자는 가구 디자이너 에릭 키르케가드(Erik Kirkegaard)와 그래픽 디자이너 카렐 마르텐스(Karel Martens)의 협업 제품이다.

거의 버려야 할 정도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던 오래된 철제 캐비닛. 노승미 대표가 4시간 동안 쓸고 닦아서 살려냈다. 목제 문 안에는 보일러실이 숨겨져 있다.

가죽 소파는 Casamia. 그 뒤로 이 집의 유일한 ‘옛 흔적’인 자그마한 화장실 문이 보인다.

대개 신혼집들은 하얗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넓어 보여서, 다른 가구와의 조화가 쉬워서 그리고 새 출발하는 ‘신혼’이라서. 열에 아홉은 뽀얀 집들이라 신혼집을 리뉴얼하고 있다는 노박주스 노승미 대표의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예상 가능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녀의 공사 생중계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보기 전까진! 차가워 보이는 콘크리트 벽과 서핑보드가 얼핏 보이는 높은 천장, 중후한 색감의 가구에 식물이 가득한 베란다라니, 집이 아니라 ‘힙’한 카페 같았다. 그러고 보니 패션 피플의 주스 바로 유명한 가로수 길 노박주스의 인더스트리얼 분위기와 닮기도 했다. 올해 초 공사가 마무리된 새집에 사람 냄새가 날 즈음 한가득 기대를 안고 찾아갔다. 하지만 반전의 연속. 당도한 건물의 이름은 맨션도 아닌 ‘맨숀’이었다.

“말 그대로 집이 썩어 있었어요. 분양된 지 40년이 넘은 건물이다 보니까 멀쩡한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지경이더라고요. 그래도 전세살이 후에 처음 갖게 된 집이다 보니, 하나둘 욕심을 부리게 됐어요.” 호리호리한 몸매에 쇼트커트, 편해 보이지만 늘어져 보이진 않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 털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노승미 대표의 모습은 ‘시크’하지만 편안한 느낌이 집과 닮아 있었다. “제가 직원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러프하게!’래요. 저는 잘 몰랐는데, 이 말을 엄청 따라 하더라고요.” 결국 이 말은 그녀의 라이프스타일 철학이었다. 하얗고 깨끗하기만 한 집은 집 같지 않다는 생각에 남편과 합의를 봤고, 인더스트리얼 무드에 자연스러움을 담는 컨셉트의 집을 만들기로 했다. 판을 벌리고 실행한 건 아내의 몫. 노박주스 오픈 당시 인테리어에 관여하면서 ‘생고생’했던 노승미 대표가 이번에도 총대를 멨다. 창문과 선반, 테이블 등 원하는 스타일을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와 구글링으로 찾아 각각 500~600장이 넘는 ppt 파일로 만들었다. 처음엔 무조건 하고 싶은 것들 위주로 모았지만, 결국엔 예쁘면서도 실용성을 갖춘 아이템들로 추려졌다. 그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 이는 황요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주방 데크로 나무를 이용하고 싶었는데 1~2년 쓸 거 아니면 다 뒤틀린다고 해서 대리석으로, 화장실 바닥도 에폭시로 만들면 다 깨진대서 타일로 바꿨어요.” 인테리어에 대한 그녀의 ‘로망’을 정확히 꿰뚫어본 황요한 실장은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집을 이렇게 꾸미는 사람은 본 적 없다면서, 자기가 살 집인 것처럼 신나서 진심으로 꾸며준 것 같아요.” 알람처럼 성실하게 매일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건 기본이었다. 그 과정에서 따뜻한 신뢰가 오갔다. 환골탈태하다시피 한 공사였음에도 어찌나 손발이 잘 맞았던지 공사기간도 한 달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공사의 시작은 벽을 허물고 천장을 트는 것부터 시작했다. 꼭대기 층이 아님에도 오래전에 지은 집이라 기본적으로 천장이 높아 층간 소음이 적기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천장까지 3m 정도의 공간이 생기니 외국 어딘가의 창고를 개조한 느낌이 절로 풍겼다. 벽과 바닥, 가구도 무채색으로 맞췄지만 너무 차가워 보이는 건 싫어서 거실엔 나무를 깔고, 간접조명을 달았다. 원래 3개였던 방은 부부 침실, 옷방, 노승미 대표의 남동생 방 그리고 건조대가 있는 세탁실까지 4개로 만들었다. 크지는 않지만 용도는 확실했다. 정리와 구획은 그녀의 몫이지만 재미있게도 이 집에 있는 물건의 80%는 남편 것이다. “취미도 다양하고 해외로 출장도 자주 가고, 게다가 패션계에서 일하니까 사 모으는 물건도 많아요. 종종 남편 자전거나 가방을 팔기도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많으니까, 아예 새로 벽을 세우고 그 안에 수납공간을 만들어 정리했죠.” 그녀 역시 패션에 관심이 많았을 땐, 가짓수 늘리는 데만 집착했던 터라 남편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지만, 결혼을 기점으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당장의 욕심보다 함께 살아갈 가족 같은 물건들로 집을 채우고 싶어진 것이다. 뭘 사든 할머니가 될 때까지 튼튼하게 쓸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하고, 옷은 어깨 넓은 재킷과 바지 빼고는 키가 비슷한 남편의 옷을 같이 입는다. 합리적으로 바뀐 사고방식은 가구를 살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일단 수납공간을 많이 만들어서 막상 가구는 몇 개 안 돼요. 피부가 약해서 색조 화장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화장대는 화장실 거울로 대신하고, 거실이랑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만 저렴하게 샀고요.” 쭉 돌아보니 필수적인 가구들은 다 있어서,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오히려 우리가 너무 많은 걸 안고 사는 데 익숙해 있는 것 같았다. 반려동물 ‘뭉이’만큼이나 소중한 반려식물들은 비밀의 화원처럼 만든 베란다 온실에서 키운다. 온실에 머무르는 시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괜히 들어와서 식물들 크는 거 보고 뿌듯해하고, 책도 뒤적이고 그래요. 날이 선선해지면 더 자주 머물겠죠.” 심심하면 청소기를 쓱쓱 돌리고, 지루하면 가구 배치를 바꾸고 휴일엔 뭉이 그리고 두 남자와 함께 오수를 즐기는 집. 힙스터들이 좋아할 만한 카페 같은 이 집의 첫인상은 외부인의 시선일 뿐이었다. 실제로 이 집에 사는 사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현관부터 베란다까지 곳곳에 녹아든 공간은 너와 내가 생각하는 편안한 집, 그 자체였다.

노승미 대표가 집 컨셉트에 맞게 직접 페인트칠한 침대. 천장 아래엔 수납 공간을 만들어 침실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침실 한편에 놓인 사진들. 포토그래퍼 장주흡이 찍은 결혼사진과 여행 갔을 때 남편이 직접 찍은 사진들을 두었다.

아웃도어 마니아인 남편이 모은 자전거들. 맨 아래 바구니 달린 Jike의 유러피언 빈티지 클래식 자전거만 노승미 대표의 것.

이 집의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현관.

주방과 거실, 베란다가 이어져 있는 구조라 더 넓어 보인다. 여기에 나무 가구들과 간접조명으로 따뜻한

느낌을 살렸다.

높은 천장을 십분 활용한 인테리어. 에폭시 바닥으로 마감한 옷방은 여느 패션브랜드의 쇼룸 못지 않게 잘 정리정돈 돼있다. 펠트 소재의 시계는 결혼 선물로 받은 LEFF.

실용성과 무드를 겸비한 주방.

키친의 상판부분은 대리석으로, 아랫부분은 원목으로 마감했다.

editor 정승혜

photographer Jang yeop

art designer 이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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