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수업 어려운 시험.. "1m 슈팅연습뒤 10m서 볼 던지라는 격"

입력 2017. 2. 28. 03:02 수정 2017. 2. 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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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붕괴]<2> 평가의 배신

[동아일보]

교육당국은 ‘7차 교육과정’이 만들어진 1997년부터 현재까지 20년간 ‘쉬운 수학’ 기조를 유지해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범위를 줄이고 난도를 낮추면 학생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교육을 잡고 학교 수업도 정상화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이에 따라 교과서 제작과 수업 방식 등 학교 수학교육의 헌법 격인 ‘교육과정’은 개정 때마다 계속해서 ‘가벼워’졌다. 교육당국은 교육과정 연구진에게 ‘수학교육 내용을 이전보다 20%씩 줄이라’는 방침을 내렸다. 어려운 단원이 삭제됐고, 단원별 응용·심화 부분이 사라져 수학 수업 수준은 꾸준히 쉬워졌다.

그러나 현장인 학교 교실에서 ‘수학 붕괴’는 날로 심해졌다. 수학 학원을 다니는 학생의 발길은 줄지 않고 오히려 그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그렇게 수학 사교육을 받는데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는 늘고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 “연습은 골대 1m 앞에서, 시험은 10m에서”

최근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전국 교육특구 18곳의 중학교 2016년 1학기 말 수학 시험지를 분석한 결과 조사 대상 학교 중 해당 학년 교육과정에서 전혀 가르치지 않은 개념을 수학 시험 문제에 출제한 사례가 10번 중 9번꼴에 달했다. 선행문제가 포함된 시험도 77.1%였다.

이는 2014년 9월부터 시행된 선행교육규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평가다. 하지만 이 같은 ‘반칙 평가’를 감독할 교육부와 교육청은 손을 놓고 있다. 사걱세 수학분과 최수일 대표는 “각 교육청이 매년 전수조사 해 교육부에 보고하지만 학교와 교사 감싸기에 급급하다 보니 점검 기준을 느슨하게 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고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2015학년도 당시 교육부에 보고된 선행출제 기준 위반 중학교는 전국에서 단 한 곳에 불과했다.

교육과정 개편 작업에 참가했던 한 수학계 관계자는 “원래 평가 위반을 고발할 수 있는 일종의 국민신문고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민원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이 제기돼 무산됐다”며 “교육당국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게 민원”이라고 말했다.

국내 수학 교육과정 개정에 여러 차례 참여한 수학교육계의 원로 강옥기 성균관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는 “문제는 평가”라며 “바뀐 교육과정에 맞춰야 하는 평가가 선발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제멋대로여서 현장에서 그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학교 교육은 쉬워졌는데 평가 시험은 여전히 어렵다 보니 학생들은 오히려 사교육에 더욱 의존하게 됐고, 그 경쟁에 질린 아이들이 중도에 수학에서 손을 놓게 됐다는 뜻이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을 “마치 농구 수업을 할 때 평소에는 골대 1m 앞에서 슈팅 연습을 하라고 해 놓고 시험 볼 때는 10m 밖에서 하라고 하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 교육부 “학교 수업만으로 만점 가능”

수학 평가의 문제는 학교 시험뿐 아니라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제기된다. 19년 동안 수능 수학을 가르쳐 온 대치동 수학강사 이창무 씨는 “지금의 수능 수학 문제는 난이도 조절이 이상하고 노력한 만큼 점수가 나오는 체계가 아니라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수능 문제가 30개면 레벨1부터 레벨30까지 고르게 분포해야 정확한 평가가 되는데 지금은 1∼4레벨이 20개 정도 나오고 갑자기 15레벨, 20레벨, 30레벨이 튀어나온다”고 말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킬러 문항’이다. 그는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출제하는 건 비인간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7년간 수능에서 킬러 문항은 ‘번호까지 정해져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형화된 패턴을 보였다. 주로 21번, 29번, 30번 문제로, 특히 30번은 상위권 학생들조차 앞 문제를 빨리 풀고 1시간 가까이 매달려도 쉽게 못 푸는 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과정을 만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수능 문제를 내는데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문제를 낼 리가 있느냐”며 “지금의 수능은 학교 교육만으로 만점을 맞을 수 있는 시험”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30년 넘게 입시분석을 해온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전국에 그 말을 믿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기초를 바탕으로 응용하는 게 실력이라지만 지금 시험 수준이 학원없이 되냐”고 반문했다.

○ 새 교육과정 ‘과정중심평가’ 잘될까

쉬운 수업과 어려운 평가, 수능 때문에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교육부는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되는 새로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과정중심평가’를 강화해 학교 수학교육을 살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학생 참여 중심의 교수학습 방법을 제시하고 △평가 방법 및 유의사항도 신설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과정중심평가가 무엇인지는 학생도 교사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 구체적인 롤모델이 없는 과정중심평가가 수학 붕괴 현장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울의 한 고교 수학교사 김모 씨는 “과정중심평가라는 게 말은 참 좋지만 현실은 학생이 수업시간에 자는지를 체크해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새 방식으로 수업을 바꾸겠다고 하지만 해당 수업을 진행할 교사 연수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새로운 2015 교육과정 교사 연수는 전국 교사의 1∼3%에게만 이뤄졌다. 중학교 전체 수학교사(1만2038명)의 2.8%인 340명만 연수를 받았다. 시도별로 20명 수준이다. 고등학교는 더 적다. 전체 1만6633명인 고교 수학교사 가운데 1.5%인 250명만 연수를 받았다. 교육부는 “예산 때문에 수가 적지만 연수 받은 교사가 현장에 돌아가 ‘전파연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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