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송금업 허용한 날, 업체들은 "문닫게 생겼어요"

최종석 기자 입력 2017. 2. 26.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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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활성화 규정 때문에 오히려 문 닫게 생겼어요.”

정부가 지난 23일 입법예고한 외국환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핀테크 업체들이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달 핀테크업체들에게 해외 송금업을 허용한 데 이어,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핀테크업체들이 환영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개정안에 핀테크 업체의 요건을 담았는데, 그 벽이 너무 높았던 겁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핀테크업체는 자기자본을 20억원 이상 마련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이재섭 한국핀테크산업협회 부국장은 “핀테크업체 중에서 그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고 합니다.

2015년부터 2년간 500억원 넘는 송금 실적을 올린 핀테크업체 블루팬조차도 자기자본은 2억원 수준입니다. 다른 업체들도 사정이 비슷합니다. 다들 생긴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창업 초기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핀테크업체들은 2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경기 불황에 벤처 투자 시장도 얼음장입니다.

한 핀테크업체 대표는 “정부가 송금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은행 눈치를 본 결과”라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블루팬의 고영진 대표는 “20억원 투자를 받지 못하면 금융시장이 자유로운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길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핀테크는 올 초 정부 업무보고 때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아이템으로 꼽혔습니다. 핀테크에 대한 해외 송금 허용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됐습니다. 은행을 통해서 100만원을 송금하면 각종 수수료와 전신료 등을 합쳐 5만~7만원이 들지만 핀테크를 이용하면 1만원 정도면 됩니다. 송금에 걸리는 시간도 2~3일에서 1시간 정도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핀테크 업체들에게 넘기 힘든 자본금 장벽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금융 산업을 규제 산업으로 보는 기획재정부의 케케묵은 사고방식 때문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세계 금융 허브인 영국 런던의 앤드루 팜리 시장을 만났습니다. 팜리 시장은 영국의 핀테크 육성 정책인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소개했습니다. 이는 새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매일 7억5000만달러(약 8500억원)를 송금하는 세계적인 핀테크업체 트랜스퍼와이즈도 이런 환경에서 탄생했습니다. 팜리 시장의 조언이 ‘소 귀에 경 읽기’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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