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설탕'에서 신자유주의를 읽어내다

도재기 선임기자 2017. 2. 20. 20:5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 이완 개인전

이완의 ‘메이드 인’ 시리즈 중 대만편의 두 장면. 작가가 설탕을 만들기 위해 사탕수수를 베는 모습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비엔날레 미술전의 한국관 대표작가인 이완(38)이 비엔날레 전시에 앞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라는 주제로 313아트프로젝트(서울 성북동, 3월10일까지)에서다. 한국을 대표해 코디최 작가와 2인전으로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이완의 작품세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의 일면을 미리 볼 수 있는 자리이다.

이완은 방대한 인문학적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사회과학적 시각의 작품활동을 하는 대표적 젊은 작가다. 그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정치·경제·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에 관심이 많다. 막강한 힘의 자본과 권력으로 조합된 시스템은 개인의 일상적 삶은 물론 가치관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작가는 설탕을 담을 도자용기와 스푼도 직접 만들어 전시장에 내놓았다.

권력과 자본이 작동시키는 그 시스템은 현대인에게 불가항력적으로 작용하고, 우리 개개인은 자신의 본질과 특성,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거대 시스템의 통제와 조종 아래 본질까지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체제는 개인 삶의 다양성, 세계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획일화시킨다고 그는 인식한다.

이완은 이런 문제의식을 조각이나 영상 등 다양한 장르 작품으로 시각화한다. 2014년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 스펙트럼 작가상’ 수상작인 영상 ‘메이드 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지금도 작업 중인 이 시리즈는 대만에서 설탕, 태국에서 실크, 미얀마에서 금 등 아시아 각국에서 특정 산물을 직접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는다. 이를 통해 평범한 사물 하나도 견고한 신자유주의체제의 산물임을 드러내고, 아시아의 세계화 속 후기식민주의적 상황도 짚어낸다.

사실 작품의 시각적 감상을 넘어 작품에 내재된 그의 문제의식을 읽어내자면 관람객은 인문학적 지식과 깊은 사유를 요구받는다. ‘메이드 인’ 시리즈 중 2점과 회화로 구성된 이번 개인전도 마찬가지다.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란 이름의 회화는 캔버스에 몇 개의 선만 있는 단색화로 보인다. 하지만 바탕색은 작가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고용한 취준생·외국인 노동자 등 8명에게 일당을 지불하고 하루 7시간씩 5일간 칠하게 한 것이다. 작가는 그들에게 가장 작은 붓(1호)으로 칠을 하게 했다. 그들은 캔버스를 채우는데 수천번의 붓질, 즉 성실해야만 했다. 작가는 그들이 완성한 바탕 위에 의미 없는 선을 휘갈겼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완은 “노동자들이나 저에겐 전혀 의미 없는 붓질이었고, 캔버스는 노동과 화폐의 교환 흔적만 있을 뿐”이라며 “이 캔버스가 의미를 갖는 것은 ‘작품’으로 판매될 때”라고 말했다.

이완의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 캔버스에 오일, 162×130.5㎝.

이 작품은 불가항력적 시스템에 밀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은유한다. “현대인들은 무의미하다면서도 성실하게 일하고, 또 해야 하죠.” 출품된 ‘메이드 인’은 작가가 한 스푼의 설탕을 산출하기 위해 대만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을 하는 과정과 그 산출품들, 1000년 역사의 티베트 사원 마루바닥 나무로 젓가락 한 쌍을 다듬어내는 과정과 젓가락으로 구성돼 있다.

관람객은 설탕, 젓가락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만에서 왜 하필 설탕을, 중국에선 왜 젓가락을, 미얀마에선 금을 만들었을까 질문해야 한다. “설탕은 대만 근대화를 이끈 중요 산업품인데, 일본제국주의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죠. 젓가락은 1000년의 역사·문화도 그저 한 상품에 불과해지는 이 시대 가치관의 단면이죠. 미얀마의 금, 태국의 실크 등 12개국의 특정 산물 모두 특별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한편 올해 한국관은 ‘Counterbalance(카운터밸런스·평형추)’란 주제 아래 코디최와 이완의 설치와 영상 등이 한국관 안팎에서 선보인다. 5월13일 개막할 베네치아비엔날레에는 총감독 크리스틴 마셀이 기획한 본전시에도 한국 작가 이수경·김성환이 선정돼 참여한다.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