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김과장>, 이렇게 드라마로만 끝내지는 말자
[오마이뉴스김종성 기자]
▲ <김과장>의 한 장면 |
ⓒ KBS2 |
한탕 제대로 챙겨서 나올 생각뿐이었다. TQ그룹이라니, 천재일우(千載一遇)나 다름 없었다. 덩치가 큰 곳에선 떨어지는 콩고물의 사이즈도 큰 법이니까. 또, 이런 곳에선 '해먹어도' 티가 잘 안 나니까. '삥당 전문 경리과장', 김성룡(낭궁민)은 '돈'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얄팍한 사기꾼이다. 정의감? 그런 건 '돈'과 바꿔 먹은 지 오래다. 그런 그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회사 빌딩의 문 앞에서 얼음을 잘못 밟고 미끄러지면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됐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이 과장의 아내를 극적으로 구하면서 '의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우연적(혹은 타의적) 의인의 탄생이라고 할까.
그래서 '이름'이 중요한 것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 그를 '의인'이라 부르자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비로소 '의인'이 됐다. 그날 이후로 환청처럼 들리는 '의인이다'라는 외침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이다'를 떠올리게 되는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보는 이의 속을 후련하게 만든다. 가령, 경리부에 찾아와 안하무인적 행동을 하는 회장 아들 박명석(동하)에게 "경리부가 네 현금 자동 지급기야? 아버지가 회장이면 개념을 지하주차장에 놓고 와도 돼?"라며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식이다.
우연적 의인의 탄생, 진짜 의인이 되다
▲ <김과장>의 한 장면 |
ⓒ KBS2 |
의기양양하게 TQ택배에 도착한 김성룡은 군산에서 알고 지내던 이중권(최재환)을 만나게 되고, 노조위원장이 되어 있는 그에게 노조위원장 조끼를 벗어 달라고 한다. 탐내고 있던 조끼를 건네받은 김성룡은 신이 나서 구호까지 부르며 즐거워 한다. 잠시 후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밤이 되자 농성장에 완전무장한 회사 용역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노조를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농성장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만행을 저질렀다. 급기야 노조위원장 조끼를 입고 있던 김성룡은 납치됐다.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노조 진압의 현장이었다.
▲ <김과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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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고 눈이 오면 미끄러져가면서 배달을 해왔다. 끼니도 거르면서 주 6일, 76시간 근무에 하루 13시간 이상 노동을 했지만 기름값과 식대, 차량유지비 등을 빼면 남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뉴시스>, 택배업계 산별노조 첫 공식 출범..처우개선 나선다?
그런데 <김과장>은 왜 굳이 'TQ택배'를 조명했을까. 어째서 박재범 작가는 자신의 드라마 속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려낸 것일까. 좋은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 명제다)는 '현실'의 어떤 포인트를 반영하고, 그 '비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하여 만들어지는 '선순환'은 또 다시 현실을 변화시킨다. <김과장>은 직장인(특히 소외돼 있는 경리부)들의 애환을 조명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여 있는 대표적인 직업 중 하나인 택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다. 지금부터 택배 노동자들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김과장>의 택배 노동자 조명과 현실의 택배 노동자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3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75%가 주 7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주 90시간 일한다는 응답도 17.6%에 달했다. 조사 대상의 평균 근무 시간은 76.88시간이었는데, 이는 근로기준법 기준인 40시간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노동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수면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별도의 휴게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형편이니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 여건이라 할 만하다. 지난 1월 8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공식 출범했다. 주 50시간 근무, 점심시간, 휴일 보장을 위해서,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을 찾기 위해서다.
희망찬 첫걸음을 뗐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하는 건 꿈만 같은 일이다. 당장 CJ대한통운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방해를 했다고 한다. 혹자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왜 그렇게 많이 일하느냐. 좀 쉬면서 하라'고 타박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할당된 물량이 존재하고, 이를 다 처리하기 위해서는 살인적 노동시간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건당 800원의 수수료(부가세, 대리점 수수료 등을 빼고 나면 실질적으로 500원 남짓이 남는다고 한다)는 몇 년째 제자리이고, 통신비·차 보험료· 주유비 등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 <김과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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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가장 무서운 '시선'은 바로 회계부 직원이 그 잔혹한 폭행 현장을 목격하고도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자기네들끼리 분쟁이니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하겠죠." <김과장>은 말하고 있다. 그 누구의 분쟁도 '그들만의'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결국 사회 구성원 전체의 문제이고, 우리가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이다. 김성룡은 돈으로 회유하려 드는 사측에 제대로 한방 먹이고, 이번에는 노조의 영웅이 됐다. '의인'의 길을 계속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김성룡의 행보를 통해 답답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쾌감을 얻는 것처럼, 이 시원함이 현실 속에서도 재현되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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