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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씨의 #그래도_연애] 사내연애를 망설이는 직딩들에게 바치는 글

마음가는대로 기자 입력 2017.02.03. 10:51 수정 2017.02.03. 14: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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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사파리냐, 연애질 좀 작작해라!’

누군가는 정글 같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방송 프로그램 ‘짝’ 같다고 했다.

회사에서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 등 자유롭게(?!) 연애하는 직원들을 두고 회사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헉! 이거 내 얘긴가 찔려하는 분들 적지 않다)

올해로 나이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뀐 서경 씨, 마지막 연애를 한 지 1년이 넘어가자 친구들은 사내 연애라도 해보라며 등을 떠민다.

괜찮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사내연애해도 될까??

#사랑은 오고가는 술잔에서♬ 서경 씨가 다니는 회사는 마케팅 영업을 많이 하는 업무 특성상 남자 직원이 여자 직원보다 더 많다. 20~30대 젊은 남녀가 한 공간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맞을 수 있다. 6시 ‘정시 퇴근’이 없어진 지는 오래고, 한 달에 한 두 번은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직장과 연애를 한 큐에 해결하는 건 오히려 ‘신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1주일 전 회식자리

슬램덩크 박안경 선배: 서경씨, 부서 바뀌고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서경씨 : ㅎㅎ 선배~ 저 그냥저냥해요.

슬램덩크 박안경 선배: (부장님 과장님 안 들리게) 서경씨, 너 술도 못 마시는데 조금씩 천천히 마셔.(눈 찡긋)

서경씨: 네^^

슬램덩크 박안경 선배: (조용히) 서경씨, 이번 주말에 혹시 시간 돼? 우리 영화 보지 않을래??

서경씨: (마시려던 술이 목에 걸린다) 컥!! 네?

다들 그렇게 사내연애를 시작한다고 했다.

회식 자리에서 다 같이 마시는 술자리가 점차 단둘이 먹는 점심과 저녁 식사로 이어지고 주말에 영화나 뮤지컬도 같이 보면서 ‘썸’을 탄다고 했다.

가뜩이나 이 선배, 서경씨가 회사에 입사해 맞은 첫 번째 사수였다. 서경씨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회사에서 몇 안 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신입 시절 부장한테 된통 깨진 서경씨를 회사 근처 카페로 데리고 나가 한 시간 동안 말 없이 넋두리를 들어줬다. 퇴근 후엔 가끔 단둘이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부장·차장의 일하는 스타일이나 ‘X 같은’ 성격 등을 전해줬다. 한 달 전 부서가 바뀌기 전만 해도 일주일에 2~3회는 함께 저녁을 하던 사이였다.

파란불이었던 머릿속에 깜박깜박 핑크빛 불이 들어온 순간, 그와의 ‘썸’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내연애를 말리는 이유

주말에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를 다녔고, 회식이 있는 날이면 동료들 눈치 채지 못하게 서경씨를 집까지 데려다 주면서 썸은 이어졌다.

그러나 서경 씨의 마음 한 켠에서는 고민이 깊어진다. 그동안 회사에서 들은 사내 커플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이 떠올라서다.

마당발 이대리: 서경씨, 그거 들었어?

서경씨: 네? 어떤 거요?

마당발 이대리: 글쎄, 마케팅1부의 김 과장이랑 영업1부 이 대리랑 사귄대!

서경씨: 아, 그 과장님 전에 박 차장님이랑 사귀신 거 아니었어요?

마당발 이대리: 그니깐! 박 차장이 어리고 잘 사는 다른 여자 만나서 김 과장이랑 헤어지고 바로 결혼했잖아. 이 대리는 아마 같은 부서도 아니고 회사 들어오기 전 일이라 모르나 봐. 김 과장도 대단해. 박 차장 보란 듯이 젊은 애 만나고. 물론 정확한 사연은 둘만 아는 거겠지만.

서경씨: ;;;;;;;

만약 서경씨가 사내연애를 하게 된다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쏟아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 속이 지끈지끈하다ㅠㅠ

다른 직장에 다니는 남자친구를 만날 때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물론 골치 아픈 건 이뿐만이 아니다.

남자친구의 레이더망이 촘촘하게 구축된 곳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일들도 생긴다.

회사 사람들 몰래 사내 연애를 해온 연애고수 친구의 이야기다.

(‘딩동’ 연애고수 친구 박의 메신저가 울린다. 같은 회사에서 비밀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친구로부터 온 쪽지다.)

레이더 남친: 자기야, 마케팅 2부 박 대리랑 아까 커피 마셨지?

연애고수 친구 박: 응, 나 이번에 들어간 프로젝트 때문에 얘기하느라 ㅎㅎ

레이더 남친: 프로젝트 얘기하는 데 왜 웃어. 둘이서 웃음꽃을 얼마나 피웠는지, 웃음소리가 우리 사무실까지 들리더만.

연애고수 친구 박: 에이 아니야~. 자기 또 왜 그래. 나한테 자기밖에 없다니깐!

레이더 남친: 박 대리 이 자식, 여친이랑 헤어지고 요새 연애도 안 하는 것 같은데... 내가 박 대리 좀 혼내야겠어.

(결국 레이더남친, 보고서에 맞춤법 틀렸다고 박 대리를 혼내는 걸로 분풀이를 했다.)

#그럼에도 사랑, 사랑, 사랑

사귀는 걸 다른 직원들이 알게 됐을 때 밀려드는 그 불편한 시선들, 혹여 헤어지고 난 후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보고 대화도 해야 하는 어색함은 사내연애의 숙명이다.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사내연애를 하는 이유는 뭘까. 같은 직장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남’들로 가득 찬 회색빛 공간에 ‘자기’가 들어선 이후 세상이 분홍빛으로 변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눈치챌까 전전긍긍하며 같이 마시던 커피는 줄었지만 대신 남몰래 놓고 간 책상 위 별다방 아메리카노의 따뜻한 온기가 진한 설렘을 남긴다.

가끔 컴퓨터에 ‘딩동’하고 울리는 그의 쪽지에 혼자 미소 짓는 일도 많다.

‘우리 서경이 얼굴 또 찌푸러졌다. 이번엔 누구야ㅋㅋ 끝나고 오빠랑 영화 보러 가자~’

무엇보다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잘 이해해준다.

내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무슨 고민을 겪고 있는지 등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공기업에 다니던 이전 남자친구라면 갑자기 야근, 주말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했고, 이로 인한 크고 작은 다툼이 빈번했지만 사내연애를 하면서 최소한 야근, 주말 출근을 이유로 싸울 일은 거의 없다.

#사내연애, 정말 해도 될까?

지난해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직장에서 연애를 하거나 썸을 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올해 서른이 된 서경씨에게 친구들은 재촉한다.

“너희 회사에 들어갈 정도면 좋은 스펙인 건데 밖에서 그 정도 조건 갖춘 남자 만나기 어려워. 회사 내에서 괜찮다 싶으면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친구의 말에 솔깃하다가도 대학 시절 캠퍼스커플 경험을 다시 떠올리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린다.

헤어지고 회사 내에서 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제로(0)다. 이번엔 군대에 보낼 수도, 내가 휴학을 할 수도 없다 ㅠㅠ

회사에서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며칠 전 결혼에 성공한 사내연애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회사에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지나가면서 ‘회사가 너네 부부 먹여 살리네’라고 한마디씩 해. 그게 은근 부담돼. 조금이라도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하면 내가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결국 내가 다른 회사로 이직해야 하나 싶다.”

선배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맥주잔의 갯수가 늘어가는 서경씨, 그냥 뻗고 만다.

“에라 모르겠다, 선배가 프러포즈하면 그때 가서 고민하자”

/마음가는대로 기자 sednew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