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설날 특집 '너굴맨' 해부

문현웅 기자 2017. 1. 2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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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요새 인터넷 서핑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라면 대개 이 녀석이 눈에 익을 것이다. 최근 온갖 게시글에 등판해 네티즌을 지켜주는 히어로 ‘너굴맨’이다. 얜 대체 뭐기에 짐승 주제에 짤 달린다는 글마다 나타나 우리를 안심시키려 드는 걸까.

◇타락한 히어로 너굴맨

너굴맨 드립이 시작된 곳은 인터넷 문하수도(文下水道)로 이름난 ‘디시인사이드 고전게임 갤러리(고갤)’다. 게시글 제목에 무섭거나 혐오스러운 내용을 암시해놓고, 본 글에는 너굴맨 사진만 덩그러니 두고서 ‘~~는 정의의 너굴맨이 처리했다구!!’라고 적어두는 식이었다. 창시자는 정체불명의 유동닉(비로그인 이용자)이라 한다.

고마워요 너굴맨!/인터넷 캡쳐

태생부터 낚시글이긴 했지만, 처음엔 좋은 쪽으로 반전을 이끌어 내는 ‘화이트 피싱’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너굴맨이 등판하면 댓글이 ‘너굴아 고마워!’ ‘고마워요 너굴맨!’ 등 칭찬 일색이었다. 참고로 너굴맨 사진에 나오는 동물은 너구리와는 종 자체가 다른 ‘라쿤(Raccoon)’이지만, 마카다미아 때문에 벌어진 비행기 회항도 ‘땅콩 리턴’이라 부르는 한민족 특성상 딱히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영웅은 타락했다. 언젠가부터 ‘귀여운 동물사진.jpg(심장주의)’, ‘너의 이름은 결말’ 등 누가 봐도 설레고 기대되는 제목의 게시글에 나타나 “~~는 이 너굴맨이 치워버렸으니 안심하라구!”라 말하며 어그로를 끄는 축생으로 변모했다. 두근거리는 맘으로 게시물을 클릭했던 네티즌 입장에서는 빡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엔 아주 대놓고 시비를 거는 때도 적잖다.

니가 뭔데/인터넷 캡쳐

고갤 게시물을 뒤져 보니, 지난해 12월 말엽에 등장했던 너굴맨이 타락하기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직 히어로 출신이지만 정의롭게 활동한 기간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네티즌 대부분은 너굴맨을 악당 내지 어그로꾼으로만 기억하는 것이다.

◇너굴맨의 숙적 암욜맨

배트맨에 덤빈 조커나 해리 포터에 맞선 볼드모트처럼, 영웅 주변에는 숙적이 있기 마련이다. 너굴맨의 적수는 지난 2008년 희대의 명곡 ‘U R Man’으로 한반도를 강타했던 아이돌 그룹 SS501의 멤버 김모(31)씨다. 흔히 ‘암욜맨’이라 부른다.

김씨는 지난 2014년 여자친구 갈비뼈를 아주 세게 후려치고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됐던 전력이 있다. 고운 아이돌이 주먹을 휘둘러 산 사람의 뼈를 꺾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흔하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이 이 사건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 여파로 사건이 마무리된 지금까지 김씨는 파괴자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너굴맨의 숙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흐뭇한 콘텐츠를 몽땅 채가는 너굴맨을 박살 내주길 바라며, 김씨를 너굴맨의 아치에너미로 세운 것이다. 이 때문에 너굴맨 게시글이나 댓글이 올라오면 종종 암욜맨이 따라붙는다.

/인터넷 캡쳐

그 외 원숭이가 너구리를 집어던지는 움짤에서 유래한 ‘침팬빌런(침팬지+빌런)’, 너구리를 발톱으로 채가는 매 사진에서 비롯된 ‘빅-팰컨’ 등 다양한 적이 너굴맨을 위협하고 있다.

◇너굴맨의 선배들

사실 이런 식의 낚시는 너굴맨 이전에도 꽤 있었다. 만화 ‘아랑전’의 한 장면을 이용한 장난이 좋은 예다.

주로 야한 만화를 도입부에서부터 쭉 보여주다 본격적인 장면이 나오려는 순간에 이 컷을 넣는 식으로 이용했다.

/인터넷 캡쳐

김성모 화백의 명작 ‘대털’의 한 장면도 같은 용도로 많이 쓰였다. 진지하게 뭔가를 설명하는 척하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이 그림으로 끝내버리는 방식이다. 사람 설레게 했다가 순간 뚝 끊어먹는다는 점에서 너굴맨과 비슷하게 쓰였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둘 다 지금은 거의 생명력을 잃은 짤방이다. 인기 있던 시절 지나치게 남용되는 바람에 네티즌이 질려버린 탓이다. 너굴맨도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과 같다. 아무리 너굴맨 드립이 재미지더라도, 적절한 때에 적절한 정도로만 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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