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28) 설날, 5천만 민족 대이동의 서사시

임병걸 2017. 1. 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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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모두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민족 최대의 명절

시인이 묘사하는 설날의 정경이 선명하게 그려지시지 않나요? 중국 당나라의 시인 소동파는 왕유의 그림을 평하면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했는데요. 정말 이 시를 찬찬히 뜯어보면 어느 시골 마을의 소박한 한 가정이 맞는 설날 풍경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혹은 수채화를 보는 듯합니다.

때는 음력 섣달그믐, 마침 창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데, 어머니는 알맞게 굳은 가래떡을 잘라 떡국 끓일 준비를 하시고, 고사리와 도라지 시금치 같은 온갖 나물을 고소한 참기름에 무쳐내고 조기와 북어, 산적과 토란국 같은 산해진미로 제수음식을 정성껏 만듭니다. 동백꽃처럼 어여쁜 누나는 엄마 곁에서 음식 만들기를 돕거나 고운 설빔을 만드느라 밤을 지새웁니다. 덩달아 신이 난 아이들은 설 상을 차리는 어머니 곁을 괜히 빙빙 돌면서 고소한 빈대떡을 한 점 먹어보기도 하고 슬쩍 밤과 대추 곶감 같은 과일도 볼에 집어넣습니다.


새해가 밝으면 조상님들께 정성껏 차례를 올리고, 풍성한 제수음식을 배터지게 먹고 세뱃돈까지 두둑하게 받은 아이들은 눈부신 설빔을 차려입고 동무들과 들판으로 나갑니다. 산과 들은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였고 늠름한 방패연과 꼬리연은 거침없이 푸른 창공을 향해 날아오릅니다. 찬란한 새해 첫 태양은 방패연 위로 설원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아이들도 애기까치가 되어 하늘로 두둥실 날아오릅니다.

설 명절을 맞는 정서와 풍경을 노래한 시가 무수히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김종해 시인의 이 시를 가장 좋아합니다. 정말 설날은 해가 가고 달이 바뀌면 저절로 찾아오는 날이 아니라, 언제 불러보아도 목이 메는 어머니가 빚어주신 날입니다. 눈이 내려 눈부신 날이 아니라 아이들이 방패연을 띄워 올려 눈부신 날입니다. 아이들도 저 혼자 하늘로 뛰어오르는 날이 아니라 어머니가 그 사랑의 햇살로 아이들을 하늘로 끌어 올려주시는 명절입니다.

물론 지금이야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그리고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그림 같은 설 풍경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만, 이런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중장년층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승희 시인은 설날이 되어도 이제는 고향에 가지 않지만 이렇게 추억합니다.


시인다운 섬세한 감수성과 뛰어난 묘사가 설날의 설렘과 황홀을 더합니다. 붉은 사과 한 가운데 있는 황금색 씨방에서 색동저고리를 연상하는 것이나, 그 씨방 속에서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어린 유년의 자아를 떠올리는 것도 역시 탱글탱글한 사과만큼이나 싱그러운 이미지입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피폐하고 남루했지만 그래도 설 명절은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설레는 날이었고 기쁜 날이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양력설을 관제로 만들어 음력설을 금지했고 1985년까지도 '이중과세'라는 명분으로 애꿎은 죄인이 된 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지만, 그때도 설은 여전히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습니다.


1924년 윤극영 선생님이 만드신 설날 노래는 100년 가까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동요입니다. 이 동요에도 설날을 맞는 아이들의 설레고 기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설날이라고 해서 한복 저고리를 설빔으로 곱게 차려입은 어른과 아이를 도시에서는 보기도 힘들고, 특별히 옷을 사주거나 양말, 신발, 가방 따위를 사주던 풍속도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설은 여전히 흩어졌던 가족이 한데 모이고, 평소 먹고 살기 바빠서 잊고 지냈던 조상님들을 다시 떠올려보고, 다시 힘을 내 살아보자고 가족과 친지 이웃 간에 서로 덕담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격려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향토색 짙은 시어와 토속적인 정서로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농촌의 소박한 삶과 구수한 인정을 노래했던 백석 시인은 설날의 부산하고도 흥겨운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토속어와 방언이 많아 좀 읽기 어렵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설 명절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삼촌, 이모, 고모, 사촌, 오촌… 그야말로 대식구가 한데 모여 맛난 설 음식을 만듭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모여 온갖 흥겨운 놀이를 즐기는 풍경이 관찰자가 된 백석의 눈을 통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백석은 확실히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칭송을 들을 만합니다. 한번 소리 내 위 시를 읽어보시면 경쾌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우리 말의 리듬감에 감탄하게 됩니다.

백석이 어릴 적 살았던 동네 '여우골'의 대가족을 지칭하는 '여우난 곬족'의 북적대는 설 풍경을 보노라면 다시 이렇게 3대 4대가 북적대면서 살아가는 대가족 사회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돕니다.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 잔디, 고사리, 도야지비계…'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이 총출동하고, '쥐잡기 놀이, 숨바꼭질, 꼬리잡이…' 온갖 즐거운 아이들의 놀이가 등장합니다. 이슥한 그믐밤이면 어김없이 산속에서 캥캥 울어대면서 아이들 오줌을 지리게 했을 여우골의 여우도 설날만큼은 주눅이 들어 '곬족'의 마을에는 얼씬거리지 않았겠습니다.

민족 대이동의 장엄한 서사시

올해도 설을 맞아 민족 대이동의 장관이 펼쳐집니다. 설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열차와 고속버스 예매전쟁도 치열했습니다. 연휴가 시작되면 서울역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는 엄청난 귀성인파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방송국들도 귀성취재 보도로 덩달아 분주합니다. 요즘에는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예매하는 비율이 늘어 사이버상에서 치열한 예매전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올해도 코레일의 경우 지난 10일 사이트를 열자마자 순식간에 표는 매진되고 대기숫자가 수십만이었다니, 디지털 시대에 적응이 서투른 어르신들은 더욱 서럽습니다.


한 모바일 업체가 천7백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향에 가겠다는 응답자는 56%였습니다. 교통량을 추산으로 올해 고향을 찾을 사람들의 숫자도 약 3천115만 명입니다. 지난해보다 4.5% 포인트 늘었습니다.

1960년대 설 귀성객은 수십만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승용차도 거의 없었고 고속도로도 놓이기 전이었으니 갈 수 있는 수단이라야 고작 기차 편이었으니까요. 그러나 70년대 들어 산업화 도시화의 바람을 타고 농촌의 젊은이들이 대거 서울과 인천 등 대도시로 상경하면서 귀향객 수는 급격히 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는 수백만으로 늘었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고도 성장기였던 70년대와 80년대만 해도 구로공단이나 대기업의 공장에서는 대형버스 수백 대가 고향으로 근로자들을 싣고 출발하는 장관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기도 했습니다. 저도 그 현장에서 귀향 근로자들의 종종걸음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990년 이후 너도나도 자가용 승용차를 갖게 되면서 설 귀성객을 폭발적으로 늘어나 1995년에는 2천8백만 명이 귀성하기도 했습니다.


교통량으로 공식 통계를 잡은 2003년 설 귀성객은 2,085만 명, 2008년에는 3,094만 명, 2013년에는 2,738만 명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3,000만 명, 올해는 3,115만 명으로 다시 늘었습니다. 최근에는 인구 증가도 주춤하고, 고향에 계시는 부모 형제도 줄어든 탓인지 귀성객이 크게 늘지 않고 3천만 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달픈 자식들의 귀향길이 안쓰러운 부모님들이 거꾸로 자식들을 보기 위해 올라오는 역귀성도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또 평소 휴가가 늘어나고 주 5일 근무제의 영향 탓인지 꼭 명절을 기다려 고향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설 연휴에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부쩍 늘고 있습니다.

깊어만 가는 불황의 골, 예전 같지 않은 설 대목

즐거워야 할 설이 올해는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바쁘고 고단한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설 명절은 위로와 희망이어야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가라앉은 경기가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처럼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야 고향으로 향하는 발길도 가볍고 아이들에게 세뱃돈도 주고 부모님께 선물도 용돈도 드릴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야속합니다.


우선 주부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올해는 지난해 불어닥친 AI 등의 여파로 농축산물 값이 뛰면서 차례상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농수산식품 유통공사의 예상으로는 설 차례상은 전통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했을 때는 평균 25만 3천 원, 대형마트에서 준비할 경우는 34만 원 정도가 듭니다. 전통시장의 경우 지난해보다 5% 정도 늘어난 금액입니다.

해마다 설 상여금을 주던 기업 가운데 올해는 주지 못하는 기업도 늘었습니다. 경영자총협회가 5인 이상 364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올해 설 상여금을 지급하겠다는 업체는 68.4%로 지난해보다 5.4% 포인트 줄었습니다. 5인 이상 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니 5명 미만의 영세 기업은 사정이 더욱 나쁘겠지요.

설 대목을 기대하는 상인들은 상인들대로 울상입니다. 천3백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에 눌려 서민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부정청탁 금지법으로 5만 원이 넘는 선물은 주기도 받기도 조심스러우니 잔뜩 쌓아둔 선물들은 우두커니 상인을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조사결과, 올 1월의 소비자심리지수는 93.3으로 2009년 3월 이후 7년 10개월 만에 최저수준입니다.


기업들도 올 경제 상황이 불투명하다 보니 직원들에게 선심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취업 포털 사이트가 1,1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상여금 액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기업은 그래도 150만 원으로 형편이 좀 낫지만, 중견기업은 114만 원, 중소기업은 74만 원에 그쳤습니다. 차례상 차리랴, 선물 사랴, 세뱃돈 챙기랴, 용돈 준비하랴, 나갈 곳은 많은데 상여금 봉투는 얄팍하기만 하니 설날이 즐거울 수만 없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설을 맞아 가장 기대되는 것도 가족들과의 만남이지만, 가장 걱정되는 것도 가족들을 위한 선물과 용돈 준비라는 설문조사가 있을 정돕니다.

설 명절은 또 누군가에게는 기쁘기 그지없지만, 평소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설 차례상을 준비하고 몰려드는 가족들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주부들입니다. 일가친척들이 모여 북적대는 분위기를 즐기는 주부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즐겁기보다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주부들이 많습니다. 하긴 명절이 지나고 갈라서는 부부도 평소보다 많아진다는 통계도 있는 걸 보면 설날은 주부들에게는 즐거운 날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잘 넘어야 하는 '허들'인가 봅니다.

설 명절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싱글들입니다. 고달픈 객지 생활에서 지친 심신을 좀 달래볼까 기대하고 돌아간 고향에서 부모님은 물론 만나는 친지와 이웃마다 결혼을 재촉하거나 핀잔을 주니 도리어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그러나 이런 스트레스조차 못내 부러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설에 쉴 수 없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 쓸쓸히 혼자 설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고 음식 장만해서 설을 쇨 수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설을 통해 가족들의 사랑,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는 있을 테니까요.

우선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청년실업의 당사자들은 설 명절이 남의 일입니다. 차라리 없었으면 좋은 고통의 날이기도 합니다. 변변한 일자리를 잡지 못한 채 고향에 내려가는 일은 마음도 내키지 않지만, 취업준비와 일자리를 알아보려는 구직노력을 명절이라고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은 10%에 육박하고 있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잠재 실업까지를 합한다면 청년들은 네 명에 한 명꼴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취업난 사이트가 대학생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78%가 알바를 하거나 취업준비로 고향에 갈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에 찾아갈 곳도 찾아올 사람도 없는 독거노인 120만여 명도 설이 더욱 서럽습니다.

명절이 다가와도 설렐 수 없는 서글픔을 노래한 시들도 많습니다. 공교롭게도 귀향객이 가장 많이 내려가는 서울역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는 이런 시가 붙어 있습니다.


어쩌면 시인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50~60년대 궁핍한 농촌을 떠나 그야말로 '붉은 손 맨주먹'으로 의지가지없는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상경한 젊은이들은 닥치는 대로 생존의 늪을 헤매야 했습니다. 설이나 추석이 됐다고 고향에 돌아갈 꿈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이 시는 1989년에 썼고, 시인은 이제 좀 먹고살 만 해지니 30년 전 겨울을 떠올렸나 봅니다. 돌아가셨을 아버지의 말씀을 빌려 고향에 갈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애써 다독이고 스스로 위로했을 테지요. 배고픈 고향보다는 배곯지 않는 도시, 그곳이 고향이 아니겠느냐고.

그렇지만 아무리 배불리 먹는다고 물설고 낯선 타향이 어머니 아버지의 따스하고 넉넉한 품이 기다리는 고향만 하겠습니까? 대중가요도 있지 않나요? 가수 김상진 씨가 부른 노랫말입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타향이 싫어 고향이 좋아"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설날이 우리 민족에 지니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설날은 의식과 제도 관습을 넘어서 무의식 속에 녹아 있는 존재의 뿌리, 근원을 일깨워주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벌써부터 고향 가는 길이라는 길은 메워지고 고속터미널과 서울역에는 선물 꾸러미를 든 사람들의 행렬로 북적댑니다.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귀향본능은 세월이 흘러도, 타향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져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해서 가족과 한데 어울리고 싶은 5천만 한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자이크처럼 만들어내는 민족애의 대 서사시입니다.

물론 핵가족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설 차례상이나 풍속에도 엄청난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떡을 썰고 나물을 무치는 풍경은 이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지, 대가족제가 중가족제가 유지되는 농촌에서나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도시에서는 설 차례상에 오를 음식 가운데 상당 부분을 반찬 가게에서 구매하거나, 냉동식품을 사용하는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아예 차례상을 통째로 주문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수도권의 한 차례상 공급업체에서는 22만 5천 원 정도로 차례상을 주문 판매하고 있는데 지난해보다 15%가량은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길게는 닷새 정도 이어지는 황금연휴를 맞아 고향 대신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영종도 공항은 설이나 추석 연휴가 최대의 인파가 빠져나가는 기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설은 설레는 날, 환희의 새날이 되길

시간 날 때마다 골목길이나 전통시장을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하는 저는 설이 다가오면 괜히 흥분됩니다. 차례상 차릴 과일과 생선 나물과 고기 등속을 사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아내를 따라 둘러보는 전통시장의 풍경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제가 잘 가는 곳은 등촌시장과 염창시장입니다.

사는 것이 갈수록 팍팍하다고, 명절의 설렘도 도무지 없다고 투덜대도 설은 설입니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다닐 수 없는 전통시장에는 가게마다 그득 쌓아놓은 선물세트가 세상 가장 풍요로운 설치미술입니다. 머리통만 한 배와 사과는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릅니다. 오늘만 딱! 스무 명에게 돼지갈비 두 근을 9천 원에 준다는 정육점 총각의 외침이 오페라 가수보다 우렁찹니다. 줄이 도무지 줄지 않는 부침개 집에서는 노릇노릇 빈대떡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고, 분주하게 동태전을 뒤집는 아주머니의 전대는 아이를 가진 것처럼 불러만 갑니다. 부모님 장사를 돕겠다고 나온 앳된 여학생은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손님들은 왜 그렇게 불러대는지요?

신용카드, 전기요금, 아파트 관리비, 주택대출비… 고지서는 쌓여만 가고 통장의 숫자는 줄어들지만 그래도 설은 즐겁습니다. 번쩍이는 사과처럼 탐스러운 배처럼 올 설에는 내게도 반짝이는 행운이 있으리라 굳게 믿는 사람들의 장바구니는 점점 불룩해지고, 희망도 하얀 양털처럼, 함박눈을 구르는 눈사람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설은 누가 뭐래도 설레는 날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이 시처럼 올 설날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맞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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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걸기자 (kbslimb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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