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의 진화에 '혼쭐'난 샤라포바의 남자

김지섭 2017. 1. 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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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오픈 테니스 단식 2회전서 디미트로프에 1-3분패
정현이 19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그리고르 디미트로프(불가리아)와 2회전에서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향후 최고 수준이 될만한 잠재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남자 테니스 세계 최강자 노박 조코비치(30ㆍ세르비아)가 2016년 1월 호주 오픈 1회전에서 정현(21ㆍ한국체대)을 3-0으로 꺾고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조코비치는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지만 정현의 인상적인 백핸드샷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조코비치의 눈은 정확했다. 정현은 지난해 5월 프랑스오픈 1회전 탈락 후 복부 부상과 슬럼프가 밀려와 잠시 방황했지만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섰다. 그 동안 약점으로 꼽혔던 서브와 포핸드를 집중적으로 가다듬었고, 그 해 8월 일본의 유명 코치를 초빙해 서브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또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 심리학 박사 박성희 소장과의 심리 상담도 병행했다.

정현은 시련 후 더 단단해졌다. 평소 약점으로 지적된 서브를 한층 업그레이드 해, 한때 샤라포바의 연인이었던 세계 랭킹 15위 그리고르 디미트로프(26ㆍ불가리아)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정현은 19일 호주 멜버른 파크의 내셔널 테니스센터 하이센스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총상금 5,000만 호주달러ㆍ약 440억원) 남자 단식 2회전에서 디미트로프에게 1-3(6-1 4-6 4-6 4-6)으로 분패했다.

2015년 US오픈에 이어 두 번째로 메이저 대회 단식 본선 2회전에 오른 정현은 2014년 랭킹 8위까지 오른 디미트로프를 상대로 먼저 1세트를 따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2년 전 US오픈 당시에는 랭킹 5위 스탄 바브링카(32ㆍ스위스)와 2회전에서 맞붙어 0-3으로 졌지만 모두 타이브레이크(6-7 6-7 6-7) 접전이었다.

이날 정현은 경기 내용 면에서 디미트로프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서브에이스는 12개를 허용했지만 정현 역시 7개로 맞섰다. 첫 서브 성공률(68%-65%)이나 첫 서브가 들어갔을 때 포인트 확률(75%-68%)에서는 오히려 정현이 앞섰다. 서브 최고 시속은 211㎞를 찍어 207㎞의 디미트로프보다 빨랐고, 서브 평균 시속 역시 정현이 177㎞로 173㎞의 디미트로프를 근소하게 앞섰다.

브레이크 포인트도 15번이나 잡아 10번에 그친 디미트로프보다 더 많은 기회를 얻은 것이 수치로 나왔고, 네트 플레이 시도 횟수(19-38)는 디미트로프가 두 배 더 많았지만 네트 플레이 승률은 정현이 95%를 기록해 61%의 디미트로프보다 높았다.

정현은 1만 명 가량 들어찬 경기장 분위기와 톱 랭커를 상대하는 심적 부담이 겹쳐 1세트 초반 잠시 불안했다. 디미트로프의 첫 서브 게임에서 한 포인트도 따내지 못한 채 내줬고, 이어진 자신의 서브 게임은 더블폴트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가다듬고 맹공을 퍼부었다.

상대의 백핸드샷이 연달아 네트에 걸려 두 포인트를 따냈고, 시원한 서브 포인트까지 나오면서 게임스코어 1-1로 균형을 맞췄다. 자신감을 얻은 정현은 이후 5게임을 내리 따내며 첫 세트를 6-1로 가져왔다. 하지만 2세트 초반 디미트로프에게 잇달아 두 게임을 내주면서 끌려갔고, 결국 2세트를 4-6으로 마쳤다.

정현.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3세트 초반에는 정현이 내리 두 게임을 가져가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으나 다시 두 게임을 연달아 뺏겼고, 게임스코어 3-3에서 또 한 번 서브 게임을 내주면서 결국 세트스코어 1-2로 역전 당했다. 4-5로 뒤진 4세트에서 정현은 30-30까지 맞섰지만 내리 두 포인트를 더 내줘 고배를 마셨다. 정현은 이번 대회 단식 본선 2회전 진출 상금 8만 호주달러(약 7,000만원)와 랭킹 포인트 45점을 획득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정현은 “많은 것을 배웠다”며 “1세트를 잘 이겨내 기회가 있었는데 2세트 초반에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후회 없이 경기를 해 굉장히 만족스럽다”면서 “그 동안 조코비치나 바브링카와 같은 정상급 선수들과 경기를 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정현은 또 ‘한국에서 당신은 스타 선수인가’라는 외국 기자의 물음에 “그렇지는 않다. 아직 아니다(Not so much. Not yet)”라고 답하며 웃었다. 한 외국 기자는 “예전에는 통역의 도움을 받아서 인터뷰했지만 오늘 직접 영어로 인터뷰하는 것을 보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디미트로프는 “1세트에 정현의 경기력은 대단했다”며 “2세트 시작하면서 공격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면서 자신감을 되찾아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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