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경의 Shall We Drink] <51> 한낮의 꿈같았던 코스타 노바의 추억

2017. 1. 1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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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노바의 명물은 오색찬란한 줄무늬 집이다.
줄무늬를 좋아한다. 줄무늬 티셔츠·재킷·카디건·원피스·잠옷…. 웬만한 줄무늬는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줄무늬 집은 처음이었다. 노랑, 파랑, 초록 눈부신 색감의 줄무늬 집들이 조르르 늘어선 사진 한 장이 뇌리에 박혀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그 마을의 이름은 코스타 노바(Costa Nova)였다. 아베이루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어, 아베이루에 온 여행자들이 반나절 여행지로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마침내 코스타 노바에 도착했다. 하늘 아래 오색찬란한 줄무늬 집들이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집은 작지만 줄무늬는 강렬했다. 무엇보다 내가 반한 사진 속 풍경 속을 거닐고 있다는 게 행복했다. 코스타 노바의 줄무늬 집들 앞으로는 푸른 호수가, 뒤로는 모래언덕과 드넓은 해변이 펼쳐졌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내게 가이드 카롤리나가 물었다.

“왜 이곳이 코스타 노바인지 알아요?” 알 턱이 있나. 눈만 끔뻑이는데, 그녀가 말했다.

“대서양으로 나가는 지름길을 찾아 파도와 씨름하던 어부들이 석호 너머 바다를 발견하고 새로운 해안이란 뜻의 코스타 노바라고 이름을 붙였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마을 전체가 줄무늬 집이 된 거예요?”

“유난히 안개가 잦은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부 남편이 집을 잘 찾아오라고 아내가 페인트칠한 게 시초였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이웃들도 하나둘 집을 줄무늬로 칠하다 보니, 코스타 노바는 줄무늬 집이 모여 있는 마을이 됐지요. 잘 보세요. 그래서 집마다 줄무늬 색이 다 달라요.”
세로줄 무늬, 가로줄 무늬 집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
아, 역시 줄무늬는 위대했다. 사랑꾼 아내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강렬한 줄무늬만 한 게 없었으리라. 물방울무늬 집이나 꽃무늬 집을 상상해보라. 어색하지 않은가. 세월이 흘러 그 집들은 카페, 기념품 가게, 누군가의 여름별장으로 바뀌었지만 코스타 노바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줄무늬 마을이 됐다. 하지만 소금기 탓에 매년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 그 모습이 유지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1년에 한번은 페인트칠을 하며 집을 가꾼단다.
코스타 노바 줄무늬 집 뒤편, 바다로 가는 길.
줄무늬 집들의 뒷길은 대서양으로 통했다. 모래언덕 위로 난 나무 데크 산책로만 따라가면 바다에 닿았다. 세찬 파도 앞에 서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은 먼지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대서양 바다다. 바다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길, 지붕 아래 '메우 소뉴(Meu Sohno)'라는 글귀를 새긴 집을 발견했다. 카롤리나에게 그 뜻을 묻자, 나의 꿈이라고 했다. “어부들은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장만하는 게 꿈이었어요. 이 집은 그 시절 어느 어부의 꿈이었던 거죠.” 꿈을 이룬 어부의 집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어부에게 감정이입해 매우 벅찬 마음으로, ‘메우 소뉴’를 되뇌며.
저 모래 언덕을 지나면 대서양 바다가 펼쳐진다.
카롤리나가 배 시간에 맞춰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며 재촉했다. 그제야 아, 점심은 배를 타고 상 자신투(S.Jacinto)란 섬에 가서 생선구이가 맛있기로 유명한 페이샤리아 식당(Peixaria restorante)에서 먹자고 했지. 라는 기억이 났다. 식당 앞에 생선가게라는 뜻의 픽샤리아라는 단어가 붙으면 매일 어부가 갓 잡은 생선으로 요리해주는 식당이란 뜻이다.
원하는 생선을 고르면 구워주는 픽샤리아 식당.
“이 지역은 석호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산물 식당이 발달했어요. 싱싱한 생선, 새우, 거북손은 기본이고 호수에서 잡은 장어를 튀김으로 즐겨 먹지요. 장어 튀김 먹을 수 있어요?”
픽샤리아 주인장이 석쇠에 생선을 굽고 있다.
장어 튀김이라면 없어서 못 먹는단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에는 이미 애피타이저로 새우와 거북손 그리고 화이트 와인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카롤리나 둘이 앉기엔 테이블이 너무 길었다. 마침 폴란드 여행 기자들도 와 있어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다. 여러 생선을 보여주면 손님이 마음에 드는 생선을 직접 고르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생선을 고르자 소금을 뿌린 후 뒷마당 석쇠에서 주인장이 생선을 바로 구워 줬다.
국가대표 낮술 배틀이라도 열린 듯 즐거웠던 점심 식사.
폴란드 기자들은 해산물보다 와인을 찾았다. 내게도 와인을 따라주며, “화이트 와인 괜찮죠?” 라고 묻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9명의 기자 중 한 명이 대표로 건배사를 하는 모습이 꼭 한국사람 같았다. 한 잔, 두 잔. 잔이 비어 갈수록 볼을 발그레해지고, 자꾸 웃음이 났다. 눈이 부시게 푸른 날, 노천 식당에 앉아 함께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맛본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어부들이 석호 넘어 새로운 바다를 발견했을 때 기분이 이랬을까. 사진 너머 진짜 코스타 노바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폴란드 기자들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새 와인을 주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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