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FOCUS] '전국민 공짜월급'..듣기엔 달콤한데 돈은 누가내나

전정홍,김태준,부장원 2017. 1. 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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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일각선 도입 주장하지만, 재원 마련엔 꿀먹은 벙어리
국민에 월30만원씩 주려면 나라 예산 50% 늘려야
선진국은 복지구조조정 수단..국내선 선거 포퓰리즘 악용

대선 핫이슈 기본소득 현실성 있나

국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 국민에게 매달 100만원씩 급여를 준다?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논의가 한창인 '기본소득' 얘기다. 이미 제도를 도입한 나라도 나왔다. 핀란드가 이달부터 무작위로 선정한 2000명에게 2년 동안 매달 560유로(약 70만원)를 주는 실험을 시작했다.

여기에다 최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 대권주자들이 대선의 주요 의제로 기본소득을 주목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적지 않다. 듣기엔 달콤하지만 기본소득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문제점은 무엇이고 무엇보다도 우리 현실에 적용 가능한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은 말 그대로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근로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 누구에게나,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소득을 말한다. 극빈층에게만 지급하는 사회수당이나 근로장려세제처럼 노동을 전제로 하는 소득보장제도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소득 차상위계층처럼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것이다.

"북유럽과 한국은 처지가 완전히 달라"

찬성론자들은 이 제도가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조각난 '선별 복지'를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하면 비용 부담도 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도입을 미룰 수 없다는 논리다.

문제는 실행 가능성이다. 현실적으로 '누가 돈(재원)을 낼 것인가'라는 문제는 생각도 하지 않고 돈만 나눠주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기본소득 보장제도가 근로 의욕을 저하시켜 실업률만 가중시키는 등 '일하는 사람에게 불리한 제도'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꼬리표다.

특히 최근 기본소득제도가 논의되는 나라는 북유럽 선진국들로 이들 국가는 과도한 사회보장과 복지병에 따른 폐해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기본소득제도 논의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한마디로 조세·사회보장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으로 사회복지 지출을 늘려가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처지가 완전히 다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연 180조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정부 본예산(약 400조원)의 45% 규모다.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해볼 때가 됐다"면서 "재정여력을 감안할 때 기존 복지제도를 일부 대체하면서 복지는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은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0.4%에 머무르는 복지지출 비중을 OECD 평균인 21%까지 끌어올리는데 170조원 정도 더 소요되는데 그 정도 재원은 마련할 여력이 있다"며 "실효세율이 낮은 법인세나 재산세 등 위주로 합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도 현대자동차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용지를 사들인 뒤 서울시에 내놓은 공공기여금 1조7000억원 같은 돈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기금화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선별적 복지 보완이 우선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이 기존의 복지제도를 어느 정도 대체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제도와 병립해 운영될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기존 제도 중 기능적으로 중복되는 기초생활보장과 기초연금을 통폐합하느냐 아니면 유지하느냐에 따라 재정 부담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병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유럽에서의 '기본소득' 도입 논의는 과도한 복지 시스템의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이런 방향이 아닌 기존 복지제도에 더해 국민에게 돈을 나눠주자는 식의 '한국식' 논의는 재원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한국 현실을 감안할 때 현재는 기본소득 도입보다는 선별 복지를 단계적으로 보완할 때"라며 "사실상 선별 복지인 청년수당, 아동수당을 늘려주자면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틀을 씌우는 정치인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논의는 필요하지만 정치권 포퓰리즘 공약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청년기본소득 등 '부분 기본소득' 논의가 엄밀한 의미의 기본소득은 아닐지라도 '전면 기본소득'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65세 이상 전 국민에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한 공약도 기본소득이다. 이름만 다를 뿐 한국 사회도 이미 부분적인 기본소득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라며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은 아닐지라도 중간 단계로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야권, 선명성 경쟁에 잇단 강경 발언

한편 정치권에서는 작년 6월 말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기본소득제'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야권 대선주자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며 논의에 불을 댕겼다. 아동수당, 청년수당, 실업부조제, 장애수당, 노인 기초연금 등 생애주기별로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한국형 기본소득'을 제안한 것이다.

박 시장은 "이렇게 주장하면 '포퓰리스트다' '퍼주기 정책 아니냐'는 욕을 듣는다"며 "그러나 국가가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기업에서 세금만 제대로 걷어도 다 할 수 있다. 재정·조세·공공개혁을 하면 57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동수당 도입, 다자녀 국가 책임제, 기초연금 강화, 신혼부부 반값 임대주택 등의 복지 공약을 내놨다. 향후 당내 경선 과정에서 기본소득제 이슈가 불거질 경우 언제든 보편적인 기본소득제를 주장할 태세다.

같은 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적극적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일부 계층부터 도입해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으로 이와 관련해 연간 50조원의 복지재원 마련 구상까지 내놓는 등 기본소득제가 현실성 있는 제도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재원조달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유승민 의원은 작년 9월 서울대 강연에서 기본소득 논의에 대해 "무슨 돈으로 어디서 세금을 거둬 지급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장기적으로는 검토 가능하지만 당장 추진하기엔 무리라고 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복지정책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기존 정책에서 이름만 바꿨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종의 부분적 기본소득 모델인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은 시민 모두가 아니라 만 24세 이하 청년에게만 지급하고, 박원순 시장의 생애주기별 기본소득도 아동과 청년, 노인 등 특정 인구집단에 한정해 지급한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현재 만 0~5세 영·유아에게 지급하는 가정양육수당을 '아동기본소득'으로, 만 65세 이상 노인 70%에게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을 '노인기본소득'으로 무늬만 바꿨다는 것이다.

[전정홍 기자 / 김태준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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