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 진출과 우리 체계의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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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법률, 제도, 관습 등이 체계가 다른 나라에 이식되면 두 나라의 교류는 꾸준해진다.
식민지를 갖지 못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우리의 체계를 심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한국식 체계를 다른 나라에 이식하는 방법은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진출이다.
선진국이 식민지를 통해 강제로 자신의 체계를 이식했다면 우리는 현지인들이 자발적으로 우리의 체계를 받아드리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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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법률, 제도, 관습 등이 체계가 다른 나라에 이식되면 두 나라의 교류는 꾸준해진다. 경제적인 교류에서 볼 때 가격은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서구는 식민지에 그들의 체계를 심었는데 이후 식민지에서는 서구 제품과 전통에 대한 수요가 지속된다. 브라질의 경우 이런 사례는 포르투갈 빵과 올리브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19세기 포르투갈인이 브라질에 대거 이민을 오면서 빵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종교 의식에 사용될 빵만 만들었지만 1953년부터 빵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면서 크게 확산되었다. 오늘날 브라질에서는 ‘빵집 주인=포르투갈인’로 인식될 정도다. 가게 이름도 포르투갈식이 많다. 1850년에 포르투갈에서 처음 시작한 디저트 가게인 ‘Casa Mathilde’는 2013년 상파울루에서 개업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2015년 상파울루에 개업한 ‘Manteigaria Lisboa’도 잘 나가고 있는데 포르투갈 커피를 제공하는 등 포르투갈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리의 해외진출은 1860년 이민으로 시작되었는데 빈곤과 억압에 의한 것이었다. 1960대부터 정부가 주도한 브라질 등 단체 농업이민도 있었지만 개별이민이 많았다. 현지에서는 주로 자영업을 했다. 기업들은 해외건설을 수행하면서 중동 등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국식 체계를 현지에 새롭게 심기보다는 현지의 체계에 적응해야 했다.
[KOTRA 상파울루 무역관 이영선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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