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쏟아지는 설악산 겨울 산행

이동철 2016. 12. 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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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설악산 풍경.. 1676m에서 먹는 피자도 꿀맛

[오마이뉴스 글:이동철, 편집:박혜경]

▲ 눈꽃 위 산타 눈꽃이 핀 나무에 걸린 산타모형
ⓒ 임종철
성탄절이 끼어 있던 지난 주말, 지리산 산행을 계획했다가 급하게 설악산으로 계획을 틀었습니다. 23일까지 눈이 쏟아진다는 기상청 예보 때문입니다. 눈을 만나려면 설악산 산행이 제격입니다.

양양군이 속한 남설악과 천불동 계곡이 속한 속초시는 영동에서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지요. 10mm 미만으로 눈이 내린다지만 1000미터 이상 고산 지대이다 보니 발이 푹푹 빠지도록 쌓일 터. 함께 산행하기로 한 일행들은 스패츠(발목을 감싸 눈이 등산화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천)를 챙기고 산행에서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며 분주하면서도 오랜만에 설레었습니다.

▲ 설악산 한계령 한계령에서 대청봉 방향 표지판
ⓒ 임종철
▲ 서북능선 오르는 길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으로 오르는 산행길
ⓒ 임종철
▲ 대청봉 가는 길 눈꽃 대청봉 가는 길 눈꽃
ⓒ 임종철
산행의 들머리는 한계령입니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시작해 서북능선을 지나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 밑 중청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이튿날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첫날 산행거리가 8.3km, 이튿날이 11km로 1박 2일간 약 20km의 장거리 산행이었습니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오르는 내내 잡목에 쌓여 얼어붙은 눈꽃이 터널을 만들었습니다. 눈꽃 핀 터널을 지나 간간히 능선너머로 새하얀 구름이 밀려오면 마치 눈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눈꽃을 지나는 등산객들은 산행길의 고단함도 잊은 채 연신 탄성을 질렀을 겁니다.

구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대청봉

▲ 얼어붙은 대청봉 구름에 쌓인 대청봉
ⓒ 임종철
▲ 눈덮힌 중청대피소 대청봉 바로 아래 중청대피소
ⓒ 임종철
▲ 구름바다 펼쳐진 설악1 대청봉 오르는 길에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 임종철
▲ 대청봉 가는길 대청봉 가는길 눈보라
ⓒ 임종철
해질 무렵 숙소인 중청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지는 해를 보기 위해 오른 대청봉은 이미 새하얀 구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시야가 흐려 일몰의 장관을 보기는 틀렸다 생각했습니다. 수은주는 이미 영하 10도를 넘어서고 정상석도 칼바람에 얼어붙어 냉기를 내뿜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대피소로 내려가던 그때 칼바람이 구름을 밀어 올리며 소청봉 방향으로 떨어지는 노을이 보입니다. 붉은 노을을 받으며 새하얀 구름의 바다에 대청봉만 둥둥 떠올라 있습니다. 몽환적입니다. 설악을 수십 번 올랐지만 이런 구름바다는 처음입니다.

들뜬 기분 그대로 저녁 중청대피소 취사장에서 조촐한 성탄파티가 벌어집니다. '크리스마스이브'이기 때문에 특별히 1시간 소등시간을 연장한다는 방송이 나옵니다. 모두의 환호 속에 각자의 방식으로 성탄전야를 보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설악산에서 맛본 '성탄피자'

▲ 설악산에서 피자? 중청대피소에서 만들어 먹은 피자
ⓒ 임종철
"헉~ 살다 살다 산에서 피자를 만들어 먹는 분들을 다 보네요. 준비를 많이 해 오셨네."

건너편 취사장에서 식사를 하던 40대 등산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피자재료를 준비해왔습니다. 덕분에 고도 1676m의 중청대피소에서 '치즈피자'를 맛봅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국립공원에서는 원칙적으로 불을 피워 조리하는 취사행위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장거리 코스를 등산하면서 이용하는 대피소에서만 유일하게 버너를 이용해 음식을 조리 해먹을 수 있습니다.

등산객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라면입니다. 몇 그램의 무게라도 배낭에 얹어지면 천근만근 느껴지는 장거리 산행에서 무게의 부담도 덜고 조리법도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삼겹살을 구워 소주에 곁들여 먹는다면 특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간이 에스프레소 기계를 준비해 커피를 내려먹는 럭셔리한(?) 등산객들도 눈에 띕니다.

중요한 것은 먹을 만큼 적당히 준비하여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일입니다. 이 원칙이 지켜진다면 대피소에서 해먹는 음식이 나날이 진화해도 괜찮겠지요. 피자라고 하지만 빵 역할을 하는 밀전병 몇 조각에 치즈 한 봉, 그리고 파프리카며 버섯처럼 몇 가지 야채를 미리 썰어 오면 간단합니다.

별빛 쏟아지던 황홀한 밤

▲ 중청대피소  늦은 밤 중청대피소 야경
ⓒ 임종철
중청 대피소는 저녁 9시면 불을 끕니다. 새벽에 일찍 산행에 나서는 등산객을 배려하기 때문입니다. 대피소 침상은 군대 생활관처럼 나무침상이 다닥다닥 붙어 간신히 사람 한 명이 몸을 누일 수 있습니다. 코를 고는 이, 이빨을 가는 사람, 대피소에서 낯선 이들과 뒤섞여 하루를 보내다 보면 처음 대피소를 이용하는 사람은 잠을 설치기 일쑤입니다. 귀마개가 필수입니다.
▲ 대청봉 야경 성탄전야 별빛아래 대청봉
ⓒ 임종철
▲ 대청봉 야경 대청봉을 배경으로
ⓒ 임종철
성탄전야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새벽에는 별이 쏟아집니다. 저녁을 먹고 잠시 나와 바라본 겨울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손에 잡힐 듯합니다. 일행들은 또 흥분해 칼바람 부는 대청봉 밑으로 달려가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새하얗게 얼어붙은 설악의 성탄전야가 그렇게 깊어 갑니다.

이튿날 일출을 감상하러 다시 대청봉에 올랐습니다. 설악의 산줄기와 골짜기마다 구름으로 바다를 이룹니다. 어제와 달리 고요하게 가득찬 구름 바다 위로 해가 떠올랐습니다. 속초 방향으로 공룡능선과 화채봉이 보이고 해안의 파도 포말이 보일 정도로 좋은 날입니다. 이 아름다운 기운으로 또 한 해를 살아 가겠지요. 그렇게 설악의 또 하루가 시작됩니다.

▲ 설악산 일출 성탄절 설악산 일출
ⓒ 임종철
▲ 대청봉 운해 대청봉 밑으로 펼쳐진 설악산 운해
ⓒ 임종철
▲ 대청봉 운해 2 대청봉 밑으로 펼쳐진 구름바다
ⓒ 임종철
▲ 대청봉에서 바라본 속초 대청봉에서 바라본 속초시내
ⓒ 임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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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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