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실격에도 얼지 않은 근사한 예고편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2016. 12. 19. 19: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안현수(빅토르 안)는 500m에서 실격 처리됐다. ⓒ 연합뉴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테스트 이벤트를 겸해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4차 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실제로 사용될 경기장인 강릉 아이스 아레나의 공식 개장 경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년 후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미리 경험해 본다는 의미도 찾을 수 있는 대회였다.

심석희(한국체대)와 최민정(서현고)를 쌍두마차로 내세운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4개 종목 가운데 3개 종목을 석권, 명실상부 세계 최강국의 면모를 재확인했다. 반면 남자 쇼트트랙은 이정수가 1500m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부활한 것 외에는 소득이 없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또 한 명의 선수가 있었다. 단연 러시아 남자 대표팀의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었다.

그가 귀화해서 ‘빅토르 안’으로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팀 에이스로서 활약해오고 있는 세월이 제법 흘렀지만, 부인 우나리와 함께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여전히 관심 대상이다.

빅토르 안이 한국에서 쇼트트랙 선수로서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석권하면서 ‘쇼트트랙 황제’에 등극한 이후 국내 빙상계의 파벌싸움과 승부조작 행태가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집단 따돌림의 희생자가 되면서 러시아로 귀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스토리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했다.

때문에 빅토르 안이 한국 대표 선수들과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만 보여도 경기장에서의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쏠렸다.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빅토르 안과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은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에서 한판 승부를 펼쳤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그저 ‘2년 뒤 올림픽 무대에 꼭 서야겠다’는 다짐의 기회가 됐겠지만 빅토르 안에게는 새삼 ‘만감’ 이 교차하는 무대가 됐을 수 있다.

빅토르 안은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애국가를 들을 때 기분이 이상했는데 평창에서는 마음이 더 이상하지 않겠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만감 때문일까. 빅토르 안은 경기 중 한국 선수와의 신체 접촉 때문에 실격을 당하는 불운을 겪는 등 고전 끝에 단 한 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2010 밴쿠버올림픽 2관왕 이정수가 금메달을 딴 종목인 남자 1500m에서는 준결승에서 탈락했고, 500m에서는 결승에 진출해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한승수(국군체육부대)와 접촉 탓에 실격 처리됐다.

또한 빅토르 안이 속해 있는 러시아 대표팀 역시 남자 5000m 계주에서 실격돼 결승 진출에 실패함에 따라 역시 메달의 기회가 날아갔다.

경기 직후 빅토르 안은 “결과만 놓고 본다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좋은 경기를 펼친 것 같아 홀가분하다”며 “앞으로 올림픽 등 중요한 경기가 많이 남아있다. 지금은 거쳐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빅토르 안에게는 홈경기였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그에게는 홈경기나 다름없는 대회다. ⓒ 게티이미지

2년 전 소치에서 이런 상황을 겪었어도 빅토르 안은 담담하게 말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덧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가 던지는 이와 같은 멘트는 한층 여유가 생겼다.

빅토르 안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 역시 소치 동계올림픽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가 한국 대표선수들을 제치고 소치 동계올림픽 3관왕에 올랐을 때 언론들은 ‘복수’, ‘비수’와 같은 단어들을 썼지만, 지금은 선배 빅토르 안과 한국 대표팀 후배들의 우정을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연출될 지는 미지수다. 역시 올림픽은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한국 선수들과 경쟁을 펼치는 빅토르 안의 모습 역시 여전히 적응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빅토르 안에게는 홈경기였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그에게는 홈경기나 다름없는 대회다. 결국, 빅토르 안은 생애 세 차례 올림픽 출전에서 두 차례의 올림픽을 홈 경기로 치르는 셈이 된다. 이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행운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은 빅토르 안과 한국 쇼트트랙 대표 선수들이 함께 경쟁하는 마지막 올림픽이다. 2년 뒤에 펼쳐질 장면을 이번 월드컵 대회를 통해 미리 엿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은 제법 근사했다.

스포츠 객원기자-넷포터 지원하기 [ktwsc28@dailian.co.kr]

- Copyrights ⓒ (주)데일리안,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