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쓰리고]송년회는 '숭년회'로 클리어!

변재현 기자 입력 2016. 12. 1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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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이 보름도 남지 않았다. 어지러운 시국을 반영하듯 언론에서 우려 섞인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회사를 짓누르는 스트레스가 하나 더 있을 테다. 바로 ‘송년회’. 도대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송년회 메뉴는 무엇이란 말인가.

부서원 모두가 ‘미미!’를 외칠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송년회에 맞는 제철 숭어는 어떨까. 숭어는 예부터 사시사철 잡히지만 겨울 숭어 맛을 따라올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네 선조들은 때에 따라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고 힐난도 하고 ‘겨울 숭어 앉았다 나간 자리 펄만 훔쳐먹어도 달다’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크흡’ 겨울 송어를 먹은 선조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는 않았을까.
올해는 철 오른 숭어로 ‘숭년회’를 치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송년회 분위기에 딱 맞을뿐더러 여느 집과 다른 숭어회를 내놓는 집이 있다. 을지로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충무집’이다.

One go! 과감하게 씹고! 앞에서부터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순순히 고백하고 싶다. 사실 이 집은 단품 숭어회 메뉴를 팔지 않는다. 이 집에서 숭어회를 먹기 위해서는 잡어회 메뉴를 시켜야 한다. 잡어회를 시키면 광어, 농어 등 생선에 제철 생선회가 딸려 나온다.

가격이 꽤 비싸다. 2~3인이 먹기 적당한 ‘중’이 6만5,000원 4인 이상을 위한 ‘대’가 8만5,000원이다. 여기에 이 집의 별미인 충무김밥 등을 이것저것 시키다 보면 계산대 앞에서 “이렇게 많이 먹었단 말야!”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가가 비싸 많이 먹어 보이는 것뿐이다.

지갑만 문제인가, 다이어트도 난관에 봉착했다.
가격이 세다는 사실은 이 집이 송년회 명소로 추천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연히 계산은 사원이 하지 않을 테니까. 그날 부장님의 손에 법인카드가 들려 있을 확률이 매우 높지 않은가! 항상 아낌없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푸시는 법인카드라면, 충무집에서 맛있는 숭어회를 ‘호로록’하기 두렵지 않을 테다.
자, 모두 집중해! 부장님께서 법인카드를 가져오셨어!
사족이긴 하지만 내부가 그렇게까지 깔끔하지는 않다. 충무집은 서울 직장인들이 회포 푸는 분위기로 격조 있는 장소를 챙겨야겠다면 다른 고급 일식집을 가는 편이 낫겠다.
영업 마감을 준비하는 충무집 전경 /변재현 기자
따로 방은 없고 이렇게 간이 칸막이가 있다. 물론 소리는 어느정도 새어나오기 마련이다. /변재현 기자
Two go! 화끈하게 빨고! 맛집이 왜 맛집인가, 맛있는 음식이 있으니 맛집이다. 가격이 비싸고 깔끔하지 않으면 어떤가. 잡어회를 시키면 통영에서 직송한 감칠맛 있는 생선이 잔뜩 쌓여 나온다. 때에 맞는 제철 생선이 올라오는 건 이 집에서 제공하는 또 다른 별미다.
잡어회 ‘중’자. 숭어(오른쪽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학꽁치, 광어 지느러미살, 농어, 가자미, 광어, 방어다. /정가람 기자
은혜롭다. /정가람 기자
핵심은 숭어다. 이 집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께 여쭤보면 어떻게 봐도 숭어인 회를 ‘밀치’라고 설명하신다. 숭어는 크기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른 출세어다. 밀치는 다 크지 않은 중간 정도의 숭어를 이르는 말이다. 다 큰 숭어가 아니어서 차진 맛은 덜하지만 부드럽게 씹히고 장에 찍어 먹었을 때의 풍미는 더욱 산다.
‘밀치’라고도 불리는 어린 숭어회다. /변재현 기자
회를 즐기는 어르신들은 날생선을 먹을수록 처음에는 초장, 다음에는 간장, 마지막으로 쌈장을 찾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기 맛을 덮어버리는 초장부터 시작해 적응을 마치면 고기 맛을 살려주는 간장과 쌈장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숭어는 쌈장에 찍어 먹어야 고기 특유의 향이 입안에 가득 찬다. 이 집의 숭어가 맛있는 이유는 막장이다. 된장에 초장 양념을 섞은 막장은 짭조름하면서도 숭어의 맛을 덮지 않는다. 신의 한 수다.
‘충무집’의 트레이드 마크 막장이다. /정가람 기자
잡어회는 숭어뿐만 아니라 회를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각종 생선들이 나온다.
가자미 회는 한 움큼 집어서 깻잎에 싸먹자. 뼈와 함께 썰었기 때문에 입 안에서 오도독 거리며 돌아다닌다. /정가람 기자
제철이니만큼 방어도 소량 썰어져 나온다. 겨울 방어는 기름기가 올라서 맛이 참치에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막장에 찍어 먹으면 방어의 풍만한 맛이 입에 가득하다. /변재현 기자
광어 좋아하는 사람들이 죽고 못산다는 지느러미 살 /변재현 기자
이 집은 밑반찬에도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는데, 바닷가 해조류인 톳과 몸이 맛깔나게 무쳐 나온다. 물론 해초 무침도 철에 따라 다르게 나온다는 게 포인트.
톳 무침. 톳은 잘못 요리하면 비린맛이 나 먹기 힘든데, 비지를 섞어서 맛을 잡고 고소함을 살렸다. 비지는 부드럽고 톳은 오돌도돌해 조화가 산다. /변재현 기자
몸은 참기름에 무쳤다. /변재현 기자
하나 더. 이 집에 오면 반드시 충무김밥을 시켜서 곁들여 먹기를 추천한다. 충무김밥은 어민들이 배 위에서 먹기 위해 간단하게 만든 것이 특징인데, 그 이유에 충실하게 밥에 간이 하나도 돼 있지 않다.
충무김밥 3종 셋트. 김밥, 깍두기, 오징어 무침. /변재현 기자

Three go! ‘너 같은 나’를 맛보고! 정장을 입은 세 명이 한 공간에 들어간다. 그들이 이른 곳은 면접장이다. 입은 옷은 하나같이 무채색과 단색이다. 같은 질문을 받고 새로운 말을 하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완벽하게 참신하지는 않다. 머릿속은 복잡하게, 어지럽게 돌아간다. 지난한 30분이 지나고 건물 밖에 나와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을 때서야 옷깃이 젖어있음을 깨닫는다.

일곱 명이 이전과 같은 공간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곳의 이름은 교육장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그들의 옷은 무채색 정장.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 회사의 일원이 되었다며 소속감을 심어준다. 누군가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해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잡아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누군가는 더 나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며 고민한다. 고민도 잠시, 새로운 과제가 떨어진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렇게 회사의 일원이 돼간다.

이제 그들은 그 공간에 감히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이 드나들었던 장소의 원래 명칭이 ‘부장 회의실’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대신 그들에게 맞는 자리가 생겼다. 이제는 과제가 아닌 실무가 떨어진다. 정신없이 깨지면서 배운다. 적응할 때까지.

한 해를 보냈다. 적응하기에도 숨 가빴던 한 해. 송년회에서 누군가의 잔을 채우며 문득문득 그동안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반나절도 되지 않는 그 자리에서 1년이 한강처럼 떠밀려간다. 버텼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그래도 잘해낸 건가 싶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워도 한다.

사실 시간은 흘러갈 뿐이다. 인간이 시간에 초, 분, 날, 해를 명명했을 뿐이다. 1년이 지나갔다고 해서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저 꾸준히 성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물살에 밀려간다.

추억의 물살을 넘어 거리로 다시 나왔을 때, 바람이 차다. 옷깃이 젖어있다. 마치 샤워하고 나온 양 상쾌하다.

1년이 갔군, ‘하하하’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위치: 을지로입구역 1-1번 출구에서 골목으로 들어가자. 가는 길 곳곳에 표지판이 있다.

‘충무집’ 위치 /자료=네이버
이런 동상을 발견했다면 정확히 찾아왔다. /변재현 기자

**가격: 잡어회 중 6만5,000원, 대 8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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