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5·18 헬기사격' 36년만에 일치한 증언·증거

배동민 입력 2016. 12. 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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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민주화운동 상징 공간인 광주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이 헬기에서 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14일 "옛 전남도청 쪽에서 금남로 방향으로 돌면서 사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1980년 5·18 당시 전일빌딩 주변에 헬기가 날고 있는 모습. (사진 = 5·18 기념재단 제공 사진 촬영)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정수만(70) 전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14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10층 옛 전일방송 영상 데이터베이스(DB) 사업부 사무실을 찾아 기둥에 남겨진 총탄 흔적을 살피고 있다. 2016.12.14. sdhdream@newsis.com

계엄군 지휘관도 "기총소사 명령있었다" 검찰서 진술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5·18항쟁 상징 공간인 광주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을 조사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헬기 사격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1980년 5월 이후 숱하게 쏟아졌던 헬기 사격 목격담과 증언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중 일부 검찰 진술 조서는 국과수의 최종 조사 보고서와 함께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정수만(70) 전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5·18 이후 많은 사람들이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 중에는 지난 1995년 전두환 등의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의 진술 조서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5·18 당시 3해역사 군의관(대위)으로 복무 중이었던 김모씨의 진술 조서였다.

김씨는 검찰에서 "5월21일 선교사로 광주에 있었던 미국인 피터슨 목사의 집을 찾았다. '어떻게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할 수가 있느냐'는 목사의 말에 상공을 보니 헬기에서 사격을 하고 있었는데 '타다닥'하는 사격 소리가 3번 정도 들렸던 것 같고 그와 동시에 헬기에서 '파다닥'하는 불빛이 보였다"고 진술했다.

이어 "헬기 동체에 부착돼 있는 기관총이나 발칸으로 사격한 것보다는 헬기 탑승자가 시민들에게 위협사격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틀림없이 제가 목격한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히 헬기에서 사격이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재차 강조한 그는 "당시 군 장교로 있었다. 책임이 있다면 공수부대를 파견하도록 결정한 최종 결정권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조사로 역사적인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며 진술 조서를 마쳤다.

김씨 이외에 5·18 당시 적십자사 봉사 활동을 하던 이광영씨도 검찰 조사에서 "5월21일 오후 2시 헬기의 탑승자가 몸을 밖으로 내밀고 소총으로 사격을 했다"고 진술했다.

김씨와 이씨의 진술은 전일빌딩 내 총탄 흔적을 조사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측의 분석과 일치한다.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안전과 총기연구실장은 헬기 사격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 뒤 "기총은 일반적으로 7.62㎜ 기관총을 말하는데 전일빌딩 내 탄흔 크기로 봐서는 7.62㎜가 아닌 5.56㎜ M16 소총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군 당국의 "계엄군의 기총 사격은 없었다"는 주장을 뒤집을 순 없지만, 적어도 헬기에서 소총 사격을 했다는 증거와 증언이 36년 만에 일치한 것이다.

이 같은 증언과 증거는 5·18 계엄군이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지휘관들의 진술이 사실이라는데 힘을 싣고 있다.

정수만 전 회장이 이날 함께 공개한 1996년 1월6일 서울지검의 진술 조서에서 당시 전교사 부사령관이었던 김기석은 '5월20일경부터 26일 사이, 황영시 육군참모 차장이 전차와 신군부 측에서 공급한 무장헬기 15대 등을 이용해서 신속히 진압작전을 수행하라고 수 차례 이야기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어 '그 지시는 곧 전차의 발포와 무장헬기에 의한 기총소사를 포함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해 법정에서는 황영시와 통화한 내용을 적어둔 1980년 당시 메모지를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황영시는 이를 모두 부인했다.

검찰 조서에는 '헬기 사격'을 일부 인정한 진술도 있었다.

소준열 당시 전교사 사령관도 검찰에서 '각종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민가나 시민을 향해 기총사격을 한 적은 없고 다만 조선대 뒷산에서 위협사격을 한 적은 있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사실상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이다.

헬기의 '기총 사격'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광주시민 정모씨는 검찰 조사에서 "1980년 5월21일 동구 대의동에서 '드르륵'하고 섬광을 내뿜는 사격 소리가 3~4회 들렸다. 그 사격은 동체에 부착된 기관총에서 이뤄진 것으로 소총보다 조금 컸다. 제가 6·25 당시 전투경찰 지휘를 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 기관총 소리가 틀림없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 외에도 고 조비오 신부는 1989년 2월23일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청문회(광주청문회)에서 "5월21일 헬리콥터가 총을 쏘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피터슨 목사도 지난 1994년 펴낸 책 '5·18 광주사태'에 '21일 오후 3시15분쯤 헬기가 거리에 있는 군중에 총을 쏘기 시작한 이후 사상자들이 병원에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정수만 전 회장은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관련해 20명이 넘는 사람들의 증언과 검찰 진술, 목격담이 있다"며 "확실한 증거가 없어 36년 동안 묻혔던 이들의 목소리가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조사 보고와 함께 진실을 밝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gugg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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