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경의 Shall We Drink] <45> 한잔의 문화를 마신다, 벨기에 맥주

입력 2016. 12. 8. 00:02 수정 2016. 12. 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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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플라스 광장을 둘러싼 아름다운 건물들.
“양조장과 빵집이 없으면 마을이 아니다”라는 벨기에 속담이 있다. 그만큼 벨기에 사람들의 맥주 사랑은 각별하다. 국토 면적 3만278㎡, 인구 1000만 명의 작은 나라에 200여 개의 양조장이 있다. 이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맥주만 1000종이 넘는다. 맥주별로 전용 잔도 다양하다. 영국만큼이나 펍이 많아 언제든 맥주를 홀짝일 수 있다. 천 가지 맥주를 다 맛보려면 하루에 다른 종류로 2잔씩 마셔도 2년 7개월쯤 걸릴 테지만 말이다.
어떻게 이 많은 맥주를 만들었을까? 벨기에는 독일의 ‘맥주 순수령‘ 같은 규제가 없어, 과일 허브 등 다양한 특산물을 재료로 사용해 양조해온 까닭이다. 참고로 맥주 순수령이란 맥주 원료를 맥아·홉·물로 한정한 법률로 1516년 당시 독일 남부 바이에른 공작이 제정했다.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세 가지 언어를 쓰는 민족이 섞여 사는 다 민족, 다 언어 국가라는 문화적 배경도 한몫 했다. 게르만 계열의 플라망인이 살며 플라망어(네덜란드어)를 써 온 플랑드르 지방에선 야생 효모를 사용한 자연 발효 맥주 ’람빅(Lambic)‘, 체리 같은 산미가 느껴지는 ’플랑드르 레드 에일(Flandre red ale)‘ 등 신맛이 나는 맥주를, 라틴 계열인 왈롱인이 많은 남부 왈롱 지방에선 농가의 맥주라 불리는 ’세종(Saison)‘ 같은 맥주를 만들어 왔다.
그랑플라스 광장으로 가는 길 빅토르 위고의 동상을 만났다.
유네스코는 지난 11월30일 ‘벨기에 맥주 문화’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벨기에 전역에서 맥주를 만들고 음미하는 것이 공동체의 살아있는 유산 중 하나’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이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Brussels)에 가면,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랑플라스 광장(La Grand-Place)에서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벨기에 맥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브뤼셀의 명물 ‘오줌싸개 동상’.
브뤼셀의 중심에 있는 그랑플라스 광장은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의 꼽추』 등을 집필한 작가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잠깐이라도 브뤼셀에 다녀온 여행자라면 꼭 한번 찾는 명소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랑플라스 광장에서 시작해 브뤼셀의 명물 ‘오줌싸개 동상’까지 산책에 나섰다. 크기가 워낙 작아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운 오줌싸개 동상과 달리, 찾기도 쉬웠다.
색색의 조명을 밝힌 그랑플라스 광장의 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든다.
과연,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은 아름다웠다. ‘대광장’이라는 뜻의 이름에 비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도, 시청사, 왕의 집, 길드 하우스 등 여러 시대별 건축물이 각축장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 시선을 끄는 건물은 단연 96m의 첨탑이 솟은 시청사였다. 시청사는 15세기에 건설된 고딕양식의 건물로 첨탑의 꼭대기에 브뤼셀의 수호성인 미카엘 대천사가 조각돼 있다. 하늘이 짙푸른 색으로 변하자, 건물들은 저마다 화려한 색의 조명을 밝혔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광장은 더 고혹적인 빛을 뿜어냈다.
그림버겐 수도원 수도사들이 만들던 유서 깊은 맥주, 그림버겐.
광장 근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브뤼셀 입성을 자축하며 저녁 식사 겸 맥주를 맛볼 요량 이였다. 주문한 메뉴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에 잘 어울리는 맥주 추천도 부탁했다. 종업원은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그림버겐 블랑쉬(Grimbergen Blanche)을 추천했다. 원래 그림버겐 수도원 수도사들이 만들던 맥주로 전용 잔에 불사조가 그려져 있다. 그림버겐 수도원은 재난과 전쟁으로 잿더미가 될 때 마다 다시 재건해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남아있다. 수도원 극복 정신을 담은 상징이 불사조다. 밀 맥주 특유의 가볍고 향긋한 맛이 첫 잔으로 제격이었다.
악마의 맥주라 불리는 듀벨은 튤립모양 잔에 마신다.
두 번째 잔은 ‘악마의 맥주’라 불리는 듀벨(Duvel)을 추천받았다. 튤립 모양 전용 잔에 따르니 농밀한 거품과 은은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색은 황금빛인데 8.5도라는 알코올 도수에 걸맞은 묵직한 바디감이 혀를 기분 좋게 감쌌다. 듀벨이 만들어졌을 때 양조가가 맛보자마자 ‘이것은 악마의 맥주다’라고 해서 악마란 뜻의 듀벨이라 불리게 됐다는 풍문이 허풍은 아닌 듯했다. 맛의 비결은 병입 후 저장고에서 두 달간 숙성시켜 병 속에서 발효를 거친 덕이다. 벨지안 골든 에일(Belgian golden ale) 또는 벨지안 스트롱 페일 에일(Belgian strong pale ale)로 분류된다.

고작 두 잔 맛봤을 뿐인데 벨기에 맥주에 반해 버렸다. 식사 후 산책에 나섰다가 자석에 끌리듯 보틀숍에 들어가 맥주 구경하길 반복했다. 마셔보고 싶은 맥주가 너무 많았다. 저 맥주들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오래전 빅토르 위고는 어떤 맥주를 맛봤을지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그가 남긴 한 마디가 떠올랐다. ‘인생은 꽃, 사랑은 그 꽃의 꿀.’ 패러디하자면, ‘그랑플라스 광장은 브뤼셀의 꽃, 광장에서 마시는 맥주는 그 꽃의 꿀.’이라 하고 싶다. 브뤼셀에 스치듯 머문 하루였지만, 꽃 같은 광장을 거닐고 꿀 같은 맥주를 맛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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