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일 칼럼] '애기' 최두호, 84전 태국 낙무아이 꺾은 이야기

고준일 기자 2016. 12. 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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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보이' 최두호(25, 부산 팀 매드/사랑모아 통증의학과)의 아마추어 시절 또는 프로 초기 시절을 제대로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아마추어 경기는 팀원들이나 일부 관계자 외에는 보기 어려웠다. 프로에 데뷔한 뒤엔 그라찬이나 글레디에이터 등, 국내에 TV로 중계되지 않는 일본 중소 단체에서 한동안 활동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최두호가 출전한 아마추어 대회를 두 차례 현장에서 취재한 적이 있지만, 당시 그는 관심의 대상과 거리가 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곳에 최두호라는 선수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이제 와서 내 지난 기사를 들춰 보니 최두호의 이름을 짧게 언급한 내용과 멀리서 그를 찍은 사진이 확인됐을 뿐이다.

그러나 프로 종합격투기에 데뷔하기 전, 그가 가진 입식타격기 경기는 확실히 기억한다. 2008년 8월 말 스피릿MC 18에서 프로 파이터가 될 예정이었는데 대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한동안 입식타격기의 링에 올랐을 시기였다.

당시 최두호가 출전했던 대회는 2009년 출범한 '무신(武神)'이었다. 최두호는 그해 6월 열린 무신의 첫 대회 첫 경기에 나서 태권도 출신 김일권을 맞아 판정승을 거뒀다. 김일권과 경기는 입식타격기와 종합격투기를 통틀어 최두호의 프로 데뷔전이었다.

그때 최두호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표정이 밝고, 기본기가 좋다'였다. 프로 무대에 선다는 기쁨 때문인지 표정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기대와 설렘만 가득해 보였다. 최두호는 UFC에서도 생글생글한 표정으로 입장하곤 하는데,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센스가 있었다. 타격 기술 수준 역시 데뷔하는 선수 치고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이상 강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상대보다 타격 수준이 월등히 높았고 승기까지 잡은 만큼 더 강하게 몰아치면 KO승도 가능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두호는 판정승을 택했다. 프로 데뷔전이라는 부담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과감하지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무신 첫 대회에서 승리한 최두호는 같은 해 7월 말 열린 두 번째 대회의 출전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프로 입식격투기에서 이제 1승을 거뒀을 뿐인데, 그의 앞에 나타난 선수는 경험도 많고 경력도 긴 강자였다. 프로 복싱 한국 챔피언과 킥복싱 챔피언에 올라 국내 실력자로 꼽히는 오두석과 대결이 실현됐다.

오두석의 완승이 예상됐다. 당시 링 사이드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평소 친분이 있는 타 매체 사진 기자에게 "이 경기 잘 보세요. 오두석이 이길 것입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 예상외의 그림이 펼쳐졌다. 오두석이 공격적으로 나갔는데, 기술적으로 최두호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히려 2라운드부터 최두호에게 정타를 허용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타 매체 사진 기자가 "오두석이라는 선수가 지겠는데요?"라고 하자 할 말이 없었다.

3라운드 종료 후 오두석의 손이 올라가긴 했지만, 그가 이겼다고 보기 어려운 경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격적인 운영에서 점수를 땄지만 유효 타격에선 최두호에게 뒤졌다.

최두호는 입식 타격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선수가 아니었다. 프로 종합격투기 지망생으로, 입식타격기 전적은 1전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19세,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 최두호가 챔피언과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종합격투기 기대주란 소문을 이미 들었던 나는 그 경기를 계기로 '앞으로 이 소년을 주목해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데뷔전에서 좋은 재능을 선보였고 두 번째 발전 가능성을 증명했다면, 세 번째 경기에선 영리한 경기 운영 능력을 자랑했다. 킥복서를 넘어 파이터로서 경쟁력을 입증한 일전이었다.

2010년 4월 24일 열린 KOF라는 대회가 그 무대였다. 최두호의 상대는 태국의 통비 엇. 72승 12패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고, 2009년엔 당시 국내 강자였던 김성욱과 권민석을 꺾기도 했다. 정통 낙무아이답게 미들킥이 위협적인 선수로, 최두호에겐 버거운 상대로 보였다.

최두호는 이번에도 쉽게 승리를 내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차례 다운까지 빼앗아 내며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통비 엇의 미들킥 화력은 대단했으나, 펀치 공방에서 재미를 많이 본 쪽은 최두호였다.

최두호가 아무리 재능이 좋은 기대주라고 해도 냉정하게 입식 타격 기술 자체는 통비 엇이 앞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험 차가 컸다.

그러나 최두호는 전략과 운영 능력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들어갈 듯 들어가지 않는 속임 동작으로 상대의 미들킥을 이끌어낸 뒤 러시했다. 상대의 미들킥에 대응한 카운터펀치, 슈퍼맨 펀치 등으로 통비 엇의 흐름을 끊어 포인트를 쌓았다. 물론 정면 펀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오두석과 경기도 대단했지만, 통비 엇을 꺾은 것은 말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2전의 어린 청년이 80전이 넘는 태국의 낙무아이를 이겼다. 정황을 전혀 모른 채 이 내용만 들었다면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국내 단체 더 칸의 심판 위원장이자 태산체육관의 대표 지도자인 김용호 관장은 이 경기 후 "입식타격기를 이렇게 잘 하는 종합격투기 선수는 처음 본다. 이 선수를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있을 때 미리 계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국내 격투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에 제안했다고 한다. 이전부터 최두호를 눈여겨봐 온 김 관장은 최두호가 통비 엇을 꺾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최두호는 오두석과 경기 이후 9개월 동안 더 성장해 있었다. 그 사이 일본에서 프로 종합격투기에 데뷔해 2승을 쌓은 경험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1년 동안 활동을 지켜보며 '물건'이라고 판단한 나는 곧바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최두호는 다음과 같이 포부를 드러냈다.

"항상 화끈하게 싸워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내로라하는 세계 페더급 강자들이 모여 있는 WEC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WEC에서 (정)찬성이 형처럼 화끈하게 싸우는 것이 소원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운동에만 집중하고 있고 성장할 자신이 있으니 지켜봐 주길 바란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 적어도 국내 격투계에선 최두호를 두고 하는 말 같다.

■ 필자 소개- 현 UFC 한국 공식 홈페이지(kr.ufc.com) 저널리스트. 전 엠파이트 팀장. 강원도 영월 출신.

<기획자 주> 스포티비뉴스는 매주 수요일을 '격투기 칼럼 데이'로 정하고 다양한 지식을 지닌 격투기 전문가들의 칼럼을 올립니다. 격투기 커뮤니티 'MMA 아레나(www.mmaarena.co.kr)'도 론칭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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