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돌아오다

노태영 입력 2016. 12. 4.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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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대형 수족관.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들이 모여 있습니다.

정어리떼가 헤엄칩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물고기들도 볼 수 있습니다.

수족관 한 켠에 눈에 익은 물고기떼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국민 생선'으로 불려온 명탭니다.

밥상에서만 보다가 도심 수족관에서 명태를 만난 관람객들은 신기해합니다.

<인터뷰> 동설아(서울 동대문구) : "말라 있는 명태는 조금 더 크고 입벌리고 있었는데 입다문것도 처음 보고 눈도 크고 그런데요."

언제부턴가 우리 바다에서 사라져버린 명태는 이제 수족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희귀 어종이 됐습니다.

<인터뷰> 코엑스 아쿠아리움 관계자 : "어획량이 많이 줄어들어서 흔히 볼 수 없는 생선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선을 가까이에서 보여드리도록 전시하고 있습니다."

명태는 강원도 어민들에게는 가장 큰 소득원이자 삶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녹취> 대한뉴스 1364호(1981년) : "명태 대풍을 맞은 동해안은 올들어 최고의 경기를 맞고 있습니다."

1980년대 명태잡이 영상입니다.

그물을 내리고 명태를 잡아 올리기 바쁩니다.

항구에는 빈자리 찾기가 힘들 정도로 명태가 가득 쌓여 있습니다.

<인터뷰> 허금자(강원도 고성군) : "명태 해가지고 큰 다라이에다가 명란도 한다라씩 한 리어카씩 해가지고 다 팔고 명태팔고 이랬지! 명란이 다 여기서 다 나온거지 어디서 나와? 그런데 지금 그런거 구경도 못하는데..."

1980년대 명태로 가득했던 곳입니다.

당시 사용했던 건물도 그대로 있지만 그 많던 명태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때문에 항구의 분위기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명태 양식 성공 소식은 이곳 주민들에게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명태에 얽힌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우리나라에서 명태가 가장 많이 났던 곳입니다.

이른 아침 날이 밝자, 밤새 조업을 끝낸 어선들이 하나 둘 항구로 돌아옵니다.

어선들이 차례대로 지난 밤 조업해 잡은 물고기들을 내려놓습니다.

분주해진 항구는 활기를 되찾습니다.

이제 막 철이 시작된 숭어부터 문어와 연어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녹취> "(요건 잡은 것 요건 뭐예요?) 매가리(전갱이)"

<녹취> "아지(전갱이),아지. 아지 새끼라고..."

<인터뷰> 서순려(어민) : "(요즘 뭐 많이 나와요?) 요즘은 연어 계속 잡다가 100마리 200마리 씩 잡다가, 이렇게 마르미(방어), 그리고 오늘 숭어 처음으로 났어."

하지만 항구 어디에서도 명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터뷰> 서순려(강원도 고성군) : "(옛날에는 명태였잖아요. 명태는 좀 어때요?) 명태는 우리 아저씨가 잡았어. 옛날에 많이. (요즘에는요?) 요즘 명태 없어요."

명태의 고장이란 말이 무색합니다.

<인터뷰> 허금자(강원도 고성군) : "뭐 있나 명태 구경도 못하는데...명태 사라진지가 언젠데...아이고 여기 한마리도 없어 지금 명태가. 큰일 났어. 여기 사람들 명태가 나야 살텐데..."

명태 씨가 마르면서 배를 팔고 바다를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인터뷰> 최태관(강원도 고성군) : "명태나서 돈 번다고 다 왔다가 이제는 할 게 없잖아? 하나하나 보따리 싸가지고 가고..배 팔고..."

식당 메뉴도 달라졌습니다.

거진항 인근의 식당촌.

한때 싱싱한 명태로 끓인 생태탕이 이곳의 명물이었지만, 이제는 메뉴판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구가 줄면서 도시의 활력도 떨어졌습니다.

<인터뷰> 황동수(강원도 고성군) : "명태가 안나니까 인구가 자꾸만 젊은 사람들이 직업을 갖을 수가 없어요. 가질 직업이 없으니까 자꾸 외지로 빠져나가는거에요. 빠져나가다보니까 인구가 줄어서 지금 한 7천명 정도밖에 안돼요. 그러니 뭐 장사가 되겠습니까?"

지난 80년대 연간 15만톤 이상 잡히던 명태는 90년대 들어 어획량이 크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40년 가까이 바다와 함께 살아온 김철구 선장.

김 선장은 바다에 나올 때마다 조업 내용을 꼼꼼히 기록해놓았습니다.

김 선장이 적어놓은 일지입니다.

언젠가부터 명태가 점점 보이지 않더니 2001년 작성한 조업 일지에는 아예 명태라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도루묵과 꽁치 등 전에는 상대적으로 적게 잡히던 다른 생선들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인터뷰> 김철구(선장) : "옛날 같았으면 명태가 뭐 요즘 한창 명태가 잡힐 때인데 지금 명태가 사라져가지고 잡히는게 명태가 없고, 뭐 곰치, 물가자미, 이런 것만 요새 나는 중이에요."

명태가 동해에서 사라진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추정됩니다.

첫번째는 명태와 명태 새끼인 노가리를 무분별하게 남획하면서 씨가 말랐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수온이 변화하면서 고깃길이 달라졌다는 분석입니다.

<인터뷰> 김철구(선장) : "고기잡는 패턴이 다 바뀐거지, 고기 잡는 종류가. 그 전에는 도루묵같은 건 잡지도 않았어요. 다른 고기가 많이 나다 보니까 도루묵같은 것, 양미리 같은 것 막 거름했었다고 거름.

청정바다를 끼고 자리잡은 강원도 해양심층수수산자원센터.

대형 수조 안에서 길고 홀쭉한 몸매를 가진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명태입니다.

2014년 시작된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통해 인공 수정으로 태어난 양식 명태입니다.

<인터뷰> 김창열(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지원센터 계장) : "지난해 2월에 국내산 어미에서 수정한 알을 해양심층수로 부화시킨 명탭니다."

수조 하나마다 어림잡아 5백 마리가 들어있고 센터 전체로는 5천 마리의 양식 명태가 자라고 있습니다.

몸길이는 40센티미터 이상으로 거의 다자란 성체에 가까운 크깁니다.

식성도 왕성해 크릴새우, 카나리, 배합 사료 등을 하루 50킬로그램 이상 먹어치웁니다.

<인터뷰> 곽훈(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직원) : "안먹으면 입에 넣었다가 다시 뱉어내거든요. 그렇게 되면 그때는 공급을 중단하고 또 잘 먹으면 양을 많이 줄 때도 있고...얘네 먹는 상태를 봐서 양을 조절하고 있어요."

명태를 되살리는 사업 중 가장 큰 난관은 알을 배고 있는 자연산 암컷 명태를 산 채로 확보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암컷 명태를 잡아오면 포상금 50만 원을 주기로 약속했지만 씨가 마른 탓에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수조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특성 탓에 원양에서 명태를 잡아 산 채로 공수하기도 어려운 상황.

그러던 지난해 1월 상처 하나 없는 어미 명태가 그물에 잡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인터뷰> 서주영(박사/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지원센터) : "어획이 됐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그렇게 기대를 하지 않고 갔었는데 정말 사이즈도 한 60센티미터 이상이 되고 배도 굉장히 불러 있었고..."

당시 잡힌 어미 명태입니다.

한 눈에 봐도 건강한 모습에 아랫배까지 볼록합니다.

수조에 넣자 어미 명태 곁을 수컷 명태 2마리가 끊임없이 따라다닙니다.

<인터뷰> 서주영(박사/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지원센터) : "주변에 작은 개체 두 마리는 수컷으로 어미 명태를 계속 따라다니는 그런 모습입니다. 산란에 임박한 개체의 어미 명태를 수컷 명태들이 산란이 이루어지면 바로 방정을 준비를 하고 있는 그런 상태로 있습니다."

그후 보름 동안 무려 70만 개의 수정란이 쏟아졌고, 여기서 3만 마리의 명태가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그 명태 중 일부가 다시 인공 수정을 통해 2세대 명태까지 낳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명태 완전 양식에 성공한 순간입니다.

<녹취> 변순규(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박사) : "7마리에서 산란된 알을 저희들이 수집을 해가지고 사육을 하고 있고, 현재 6만 마리 정도 부화돼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명태가 서식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물 온도와 먹잇감을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명태는 대표적 한류성 어종으로만 알려졌지 최적의 서식 온도는 전혀 몰랐던 상황.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섭씨 1도에서 7도씨 이하에서 명태가 서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섭씨 3도씨의 동해 심층수를 공급해 수온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먹이 문제는 해결책을 찾는 데 더 애를 먹었습니다.

적절한 먹이를 찾지 못해 애써 부화시킨 치어들이 집단 폐사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변순규(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박사) : "제일 감모가 심했던 것은 먹이 전환 시기에 그때 감모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저희가 기르는 이런 새끼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 상당히 가슴아프고 애통한 일이죠."

알록달록한 색깔의 액체가 가득 담겨 있는 곳.

바로 명태 먹이의 시작이 되는 식물성 플랑크톤 배양실입니다.

<인터뷰> 김기승(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주무관) : "가장 초기 먹이죠. 이 먹이를 동물성 플랑크톤이 섭취하고 또 동물성 플랑크톤을 어린 명태치어가 먹고 성장을 하게 되는 겁니다."

식물성 플랑크톤과 이를 먹는 동물성 플랑크톤, 배합 사료까지 모두 직접 개발해내면서 자연 상태보다 훨씬 빠르게 성체로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변순규(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박사) : "보통 자연에서는 3년 내지는 4년이 되어야 어미가 되는데 실내에서 저희들이 적정온도도 맞추어 주었고, 영양가 높은 사료도 개발해서 공급해줌으로써 산란시기를 1년여 정도 앞당겼어요."

명태 양식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가장 반기는 건 바로 강원도 어민들입니다.

명태 양식 성공 소식이 알려지면서 명태 만선의 추억을 다시 한 번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민들은 가슴이 설렙니다.

<인터뷰> 김철구(선장) : "어유 그건 상상하는 건 몇십년만에 처음..만약에 그렇게 난다면 뭐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배에다가 명태를 잡아가지고 들어가는게 아니라 돈을 퍼싣고 들어가는 기분이겠지"

<인터뷰> 황동수(강원도 고성군) : "100% 거의 다 러시아 산을 가지고 만들고 있는데 여기에서 나서 만약에 그렇게 명태요리를 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머리부터 꼬리끝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우리 국민들이 아꼈던 명태.

명태를 소재로 한 가곡까지 즐겨 부를 정도였습니다.

<녹취>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

해양수산부는 오는 2018년에는 명태 상업 양식과 치어 방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동해에서 잡은 우리 명태가 식탁에 오를 날을 기대해 봅니다.

노태영기자 (lotte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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