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안 해도 골치..면세점 선정 목전 애타는 기업들

2016. 12. 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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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롯데·SK 총수 면세점 사업 로비 의혹에
정치권의 사업자 선정 무산·연기 압박
관세청은 예정대로 이달중 선정하기로
업체마다 다른 셈법에 수싸움 양상도 달라

막판 스퍼트에 돌입한 입찰 참가 기업들
수백억 사회공헌, 중소기업 상생 등 강조
경쟁 심화와 중국 ‘한한령’ 우려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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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유통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바로 면세점이다. 면세점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나 국내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 이용하는 쇼핑시설이다.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은 분명 아니나, 요즘은 주목도가 다르다. 면세점 사업권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쏟지 않았던 이들도 면세점 관련 뉴스에 눈을 돌린다. 면세점 사업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면세점 사업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관심이 쏠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무산 또는 연기론이 나오던 신규 사업자 선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관세청은 10월 초 ‘보세판매장(면세점) 신규 사업자 특허권’ 입찰을 마감했다. 12월 중 입찰 참여 기업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있고, 이에 대한 심사를 마친 뒤 최종 사업자 선정을 하게 된다. 대기업에 배정된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은 3장. 롯데면세점, 워커힐면세점(SK네트웍스), 현대백화점면세점, 신세계면세점, 에이치디시(HDC)신라면세점(현대산업개발·호텔신라 합작법인) 등 5개 업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해 7월(1차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 지난해 11월(2차 면세점 사업자 선정 및 사업권 재심사)로 이어진 면세점 사업자 선정 릴레이 중 마지막 경쟁이 될 것으로 보이는 3차 신규 사업자 선정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참여 업체들은 예정 입지의 장점을 강조하고,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약과 사회공헌 등을 앞세워 사회적 책임도 다하겠다며 경쟁적으로 홍보자료를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상대의 홍보자료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나섰다. 과열 경쟁이라는 비판이 일 정도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면세점시장 규모는 10월까지 10조원을 넘어섰다. 연말까지는 시장 규모가 12조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에 견줘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이 예상된다. 백화점 매출은 역신장 우려가 나오고, 대형마트는 모바일쇼핑에 밀려 성장이 주춤한 사이 면세점 매출 신장세는 더욱 독보적으로 보인다. 내년에 국내에서 ‘호황’ 산업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여겨지는 면세점 사업에 대한 기업들의 욕심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과열 경쟁을 해서 비판을 받더라도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움직임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시계 제로’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짙은 안개 구간에 진입한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대한 전망은 계속 오락가락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부터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2~3월 기업 총수들을 독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로비 의혹이 제기됐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면세점 사업에 대한 로비를 펼쳤을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은 11월24일 관세청과 롯데그룹, 에스케이그룹, 기획재정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면세점 사업권 로비 의혹을 겨냥한 것이다. 압수수색 뒤 정치권에서는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 일정을 연기하거나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기업들은 입을 모아 사업자 선정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려는 기업들은 정치권의 압박에 묘한 차이를 보인다. “강행해야 한다”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 압박이 있다면 일정을 연기하는 것 등은 어쩔 수 없지 않냐”라는 입장의 기업도 있다. 이번 신규 면세점 사업권 선정에 저마다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 나누면 롯데면세점과 워커힐면세점은 긴박하고,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억울하고, 에이치디시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워커힐면세점은 사업권 재승인을 받지 못한 상황이어서 여느 기업보다 긴박한 상황이다. 이미 시설에 대한 투자가 돼있는 데다 고용 인원의 일자리 문제 등이 겹쳐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매출이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2015년 매출은 6천억원이 넘고, 2016년 상반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 추세를 보였다. 워커힐면세점은 관련 시설을 매각해 면세점 사업을 확실히 접으려다 돌아섰다. 24년의 면세점 운영 노하우와 일자리 창출 등을 내세웠다. 면세점 사업을 담당하는 에스케이네트웍스의 최신원 회장은 사업권 탈환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와 워커힐은 무난하게 사업권을 따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들이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오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수의 면세점 사업 관련 로비 의혹으로 이제는 가장 불안한 쪽이 됐다. 업계에서 내다본 대로 이 두 기업이 선정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세청은 1일 면세점 사업권 선정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하되 불법행위를 한 기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관세청은 “관세법은 특허 신청 업체가 거짓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 특허 취소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혹을 받는 업체가 심사에서 사업자로 선정되더라도, 관세법상 특허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판정되면 특허가 취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대해 감시의 눈길이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 국정조사와 특검을 거치며 기업들의 위법행위가 드러나게 되면 관세청 역시 스스로 공언한 엄정 대처 방침을 거스르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면세점 사업자 선정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된 상황에 대해 가장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현대백화점은 미르재단 등에 돈을 내지 않았다. 그만큼 당당했다. 지난해 7월 1차 사업자 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뒤 절치부심하며 입찰에 참여해 해 롯데·워커힐과 더불어 가장 유력한 기업으로 꼽혔다. 면세점 관련 홍보자료를 가장 바쁘게 냈다. 그러다 복병을 마주쳤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재무건전성이나 매장 입지(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내) 면에서 다른 기업보다 확실한 장점을 갖췄다고 봤는데 사업권 선정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떠오르니 참 곤란하다”며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보다 사업 자체에만 공을 들여온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이치디시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다소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경쟁이 심해지면 면세점 사업의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두 업체는 지난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고 관련 사업에 대한 투자는 많았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등이 충분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마당에 다른 사업자가 또 시장에 진입하면 고객 유치 경쟁을 하느라 과도한 비용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올해 3분기 면세점 사업에 대한 분석에서 ‘수익성 우려’에 대한 언급이 잦다. 에이치엠시(HMC)투자증권 박종렬 연구원은 호텔신라 관련 분석 보고서에서 “면세점 사업자 증가에 따라 마케팅 비용 등이 증가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양호하나 단기적으로 신규 면세점을 고려할 때 경쟁이 심화하고 수익성 악화로 연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라 밖 상황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최근 중국 정부가 단체 관광객 수를 20% 줄이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면세점 사업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도 강화되는 추세다. 소비자들은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중국 관광객이 감소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시내 면세점의 중국인 관광객 매출 비중은 60~70%대다. 이런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하면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기존 사업자에게는 더 큰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업체마다 다른 셈법과 그에 따른 수 싸움은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구간에서의 모습은 매한가지다. 면세점 사업자 선정 일정 막바지에 다다르자 모두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대규모 사회공헌, 주차부지 확보 등을 내세운 전면전에 몰두하고 있다. 저마다 심사항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면세점 특허를 위한 심사 항목은 △관광 인프라 등 주변 환경요소(150점) △중소기업 제품 판매 실적 등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공헌도(150점) △기업 이익 사회 환원 및 상생 협력 정도(150점) 등이 있다.

면세점 사업자 선정 일정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와중인 1일 워커힐면세점은 주차장 확대 공약을 내놨다. 공략 대상은 중국인 개별여행자인 ‘싼커’(散客)다. 워커힐면세점은 460대를 더 주차할 수 있도록 승용차 주차장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에스케이네트웍스 관계자는 “시민들의 면세점 주변 교통 문제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음에 따라 워커힐면세점의 가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계획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영업면적의 52%를 중소·중견기업 제품 등 국산품에 할당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내놨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주력 고객층을 향한 맞춤 콘텐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국내 11개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손잡고 한류 웹드라마 제작에 나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면세점이 내놓은 사회공헌 계획은 공격적이다.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면 5년 동안 5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액수는 면세점 5년 예상 영업이익의 20%에 해당한다. 강남지역 관광 발전에 300억원, 지역문화 육성과 소외계층 지원에 200억원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송파구 등 지방자치단체와 업무협약을 맺어 대형 관광버스 주차장 등을 확보했다.

에이치디시신라면세점은 싼커 가운데서도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디지털 융복합기술을 접목한 쇼핑공간을 강조하는 이유다. 인공지능이 가장 적합한 패션 스타일을 알려주는 ‘융합현실 피팅룸’ 등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면세점은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를 면세점으로 꾸미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서초구청·예술의전당과 함께 문화관광 벨트 형성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센트럴시티에서 가까운 대형 병원인 서울성모병원과도 업무협약을 맺어 의료 지원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센트럴시티 인근 강남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소상공인에게는 중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지원한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그래픽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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