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방신봉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남정훈 2016. 11. 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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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신봉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올 시즌 V-리그 코트를 누비는 선수 중 최고령은 한국전력의 센터 방신봉(41)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장소연(42)이 도로공사에서 뛰었지만, 그녀가 올 시즌을 앞두고 은퇴하고 해설위원으로 변신하면서 최고령 타이틀은 방신봉이 이어받았다. 1975년생으로 한국 나이로는 어느덧 마흔 두 살이다. 현대캐피탈의 최태웅(40) 감독이 1976년생이니 현역 감독보다도 나이가 많은 선수인 셈이다. 

그러나 방신봉의 손끝은 여전히 날카롭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현대캐피탈(당시는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코트 가운데를 든든히 지키며 ‘거미손’이라 불리던 최강의 블로커였던 감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리버풀의 명감독 빌 샹클리가 말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선수가 바로 방신봉이다.

방신봉은 17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화재와의 홈 경기에서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1,2세트에는 띠동갑보다 한 살 어린 후배 전진용(28)의 교체로 들어갔다. 2세트 블로킹 1개와 속공 1개를 성공시키며 손끝을 달군 방신봉은 3세트부터 선발 출장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3세트 블로킹 3개, 4세트 2개를 잡아내며 날카로워진 방신봉의 블로킹 감각은 이날 승부를 가른 5세트 들어 한층 더 빛났다. 8-7로 앞선 상황에서 타이스의 백어택을 가로막으며 승기를 가져왔고, 12-9에서 타이스의 오픈 공격을 셧아웃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두 블로킹 사이에 성공시킨 속공과 다이렉트킬로 공격력까지 뽐냈다. 한국전력의 5세트 최다득점자는 방신봉과 전광인(이상 4점)이었다. 이날 한국전력의 팀 블로킹이 16개였는데, 그중 8개가 방신봉의 작품이었다. 공격득점 5개까지 이날 13점을 올린 방신봉은 바로티(29점)와 전광인(18점)에 이어 세 번째로 득점을 많이 올렸다. 이날 승리는 한 마디로 방신봉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신영철 감독은 “블로킹은 여전히 방신봉이 최고다. 손을 넣는 타이밍과 손모양, 상대 공격 루트를 읽어내는 눈까지 블로킹에 관한한 타고난 선수다. 속공이나 공격은 전진용이 낫지만, 블로킹은 방신봉이 훨씬 낫다”고 치켜세웠다.

방신봉의 ‘미친 존재감’에 힘입어 5세트를 따낸 한국전력은 승점 2를 추가해 승점 16(6승3패)으로 2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아울러 20일 선두 대한항공(승점 20, 7승1패)을 잡아낸다면 선두 싸움에도 가세할 수 있을 전망이다.

경기 뒤 수훈 선수 인터뷰에 들어선 방신봉은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질문하세요”라며 특유의 넉살을 보였다.

먼저 세리머니에 대해 물었다. 방신봉은 3세트 19-21로 뒤진 상황에서 블로킹을 연속 2개를 잡아냈다. 두 번째 블로킹 이후 방신봉은 웜업존으로 달려가 후배들 앞에 넙죽 엎드려 어깨를 들썩들썩하는 세리머니를 보여줬다. 그는 “엑소의 ‘으르렁’ 세리머니에요. 딸 소현이가 고 2이인데, 엑소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딸 보라고 한번 해 봤습니다”라고 말하며 남다른 ‘딸 사랑’을 과시했다. 전혀 ‘으르렁’인지 몰랐다고 하자 “원래는 더 길게 해야 하는 거에요”라고 답했다.

올 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타이스의 공격을 많이 막아낸 비결을 묻자 “이런건 업계 비밀인데 말해도 되나”라면서도 “타이스가 토스가 좀 떨어지면 크로스 코스로 틀어때리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그 코스만 지켰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선수로서는 환갑이 넘은 나이. 그러나 열정만큼은 20대 후배들에게도 전혀 뒤처지지 않지만, 방신봉은 ‘비움의 미덕’을 깨우쳤단다. 그는 “예전엔 꼭 블로킹을 잡아야지, 기록을 세워야지 그런 마음이 강하기도 했다. 지면 분해서 잠도 못잤을 때도 있다. 근데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더 잘되는 것도 있다. 비워야 한다. 그래야 소화도 잘 되고 잠도 잘 잔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선발로 나가는 진용이를 도와주는 입장이다. 아직 진용이가 블로킹 리딩이나 이런 부분이 부족한 게 있어 노하우도 알려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남자부도 트라이아웃을 도입하면서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이 하향평준화됐다는 평가를 많이 한다. 시대를 호령했던 ‘명 블로커’도 외인들의 기량 하락을 체감하고 있을까. 그는 “내가 5년만 젊었어도 블로킹왕에 도전하고 싶을 정도로 확실히 많이 느낀다. 지금 우리팀 (윤)봉우가 블로킹 1위인데, 아무래도 외인들의 기량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확실히 지난해 뛰었던 시몬이나 오레올 등은 막기가 힘들었다. 물론 올 시즌 뛰는 외인들도 타점도 좋고 타이밍만 맞으면 막기가 쉽지 않다. 다만 지난해 뛰었던 선수들과 비교하면 압박감이나 이런 게 훨씬 적은 것은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언제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냐고 묻자 방신봉은 “그건 내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팀과 감독님이 필요하시다면 45세까지 뛰고 싶다”라면서 “이건 욕심이라기 보다 후배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관리만 잘 하면 내 나이가 되어도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를 보면서 ‘아~우리도 저 나이 때까지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배구 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방신봉의 아들 준호군은 현재 문일중학교 2학년으로 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신장이 1m82로 레프트 공격수를 맡고 있단다. 본인만큼 크면 센터도 시킬 생각이 있다고. 아들과 함께 프로에서 뛰고 싶지 않냐고 묻자 “이번에 현대캐피탈 (허)수봉이를 보면서 아들에게 ‘너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로 와’라고 말한 적은 있다.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요?”라고 답했다. 과연 방신봉이 아들 준호군과 함께 프로에서 함께 뛰는 ‘부자 선수’로 불릴 날이 올 수 있을까. 지금의 몸상태와 실력이라면 거뜬해 보인다.

사진 제공=발리볼코리아닷컴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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