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촛불집회]法, 청와대 행진 허용 왜?..'민주주의·평화시위·집회목적'

이승현 2016. 11. 1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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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이래 처음 청와대 입구 율곡로서 대규모 행진 허용청와대 인근 행진 제한통고 집행정지 가처분신청 모두 인용"국민의 자발적 참여집회 조건없는 허용이 민주국가"법원 "이 집회 목적은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 전달""집회 시위는 허가의 대상 아냐..집시법 개정 계기돼야"

[이데일리 이승현 김보영 기자] 법원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제3차 촛불집회’ 행렬이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국가보안시설인 청와대를 목전에 둔 서울 광화문광장 북단 율곡로까지 대규모 행진을 허용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다.

법원은 사고발생 우려나 교통불편, 무질서 등을 일부 감수하더라도 국민의 헌법상 권리인 집회와 시위 자유를 보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법원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청와대 인근에서 열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스스로 민주국가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남발해 온 경찰의 집회·시위 금지 통보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法 “집회 조건없는 허용이 민주주의 증명”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정숙)는 주최 측이 ‘박근혜 정권 퇴진! 2016 민중총궐기’ 집회일정으로 신고한 서울시 종로구 내자동 로터리까지의 도심행진을 경찰이 제한통고한 데 불복해 낸 4건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들을 12일 오후 모두 인용 결정했다. 경찰의 제한 통고를 무효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주최 측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이날 오후 4시 집회를 시작한 뒤 오후 5시부터 당초 계획한 코스대로 행진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주최측이 행진 경로로 잡은 내자동 로터리는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이다. 청와대에서 약 1㎞ 정도 떨어져 있다. 그동안 경찰이 마지노선으로 삼아온 광화문 광장 북단이 뚫리고 청와대를 앞에 둔 율곡로에서 시위대의 대규모 행진이 허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12일 ‘박근혜 정권 퇴진! 2016 민중총궐기’ 촛불집회 일정으로 신고한 거리행진 코스들에 대한 경찰의 제한통고 현황. 그러나 법원이 주최 측의 제한통고 집행저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주최 측 계획대로 행진할 수 있게 됐다. (자료=서울지방경찰청)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집회와 행진은 특정 이익집단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청소년과 어른, 노인 등 다수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만큼 집회시위법의 제한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지 않고 조건없이 허용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동안 일련의 집회들이 평화롭게 진행됐고 주최 측의 평화집회 약속과 충분한 질서유지인 확보, 참가자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등에 비춰 평화적 진행을 능히 예상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히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이 집회의 특수한 목적상 사직로와 율곡로가 행진 및 집회 장소로서 갖는 의미는 과거 집회들과는 현저히 다르다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성숙한 시민의식 평화집회 기대

경찰이 당초 금지통고의 이유로 든 교통혼잡도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은 내자로터리의 경우 도심 동서간 주요 축 가운데 하나인 율곡로를 끼고 있어 도심교통을 유지하기 위해선 소통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행진 경로가 사직로와 율곡로를 포함하게 돼 다소간의 교통불편이 발생할 수 있지만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의 불편에 해당한다”며 “집회가 이미 예정된 만큼 당일 이 도로를 교통하는 인원이 많지 않을 것이고 또 우회로가 없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앞서 주최 측은 지난 9일 △의주로터리~서대문로터리~신문로PB~서울경찰청 앞~내자로터리 △정동길~정동로터리~포시즌스호텔~내자로터리 △을지로입구~광교~종로1가~안국로터리~내자로터리 △한국은행로터리~을지로입구~을지로2가로터리~재동로터리~안국로터리~내자로터리 △마로니에 공원~종로5가~세종로~서울광장 등 총 5개의 행진경로를 신고했다. 각 코스별 2만여명씩 모든 차로에서 행진할 계획이었다.

경찰은 “신고대로 내자로터리까지 행진을 허용하면 8만명의 인파가 좁은 공간에 집결하게 돼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며 집시법 규정을 근거로 내자로터리가 종착지인 4개 코스의 행진을 제한했었다.

◇“집회시위는 허가 대상 아냐

전문가들은 이번 법원 결정은 집시법의 본래 취지에 충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시법은 애초부터 허가의 개념이 아니다. 사전허가는 금지돼 있고 사전신고는 법률상 요건들이 갖춰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며 “법원은 법적으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야 한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이를 막으면 큰 충돌이 있을 것을 우려해 이렇게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교통 불편 정도는 집회 제한의 사유가 될 수 없다”며 “특히 많은 국민이 모이면 더욱 (의견을)존중해야 한다. 그동안 경찰이 법을 남용한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최 측인 비상국민행동 관계자는 “당연한 결정이고 (가처분 신청)인용을 예상했었다. 법원도 변화를 갈망하고 시국에 분노한 국민들의 의지를 외면하지 못했다고 본다”며 “결과가 잘된 만큼 오늘 평화시위를 하겠다”고 말했다. 가처분 신청 실무를 맡은 참여연대 측은 “그동안 집회시위를 과도하게 통제해온 경찰의 관행이 바뀌어야 하며 근본적으로는 집회시위 장소에 대한 규제조항들인 집시법 11조와 12조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 5일에도 집회주최 측이 신고한 종로와 을지로 방향 거리행진을 경찰이 금지통고하자 반발해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수용했다. 법원은 “이 사건 집회·시위가 금지될 경우 불법 집회·시위로 보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며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승현 (lees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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