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야 하는 몇 가지 이유
“가을이니까 혼자 떠난다고? 너무 청승맞은 거 아냐?” 수화기 너머 친구의 핀잔도 기분 좋게 웃어넘길 수 있는 건 홀로 나서는 길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도심을 벗어나 홀로 배낭을 메고 조용한 산과 들을 지나는 일. 해가 지면 마음에 드는 곳 어디든지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으면 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을 필요도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음은 물론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홀로’를 부르짖는 요즘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한가운데 사람들은 함께하고자 하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오죽하면 혼밥, 혼술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을까. 솔로 캠핑, 혼캠도 그렇다. 조금 더 자유로운 캠핑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솔로 캠핑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굴암리 마을센터 건너편에 설치된 강천섬 탐방 녹색길 지도. |
가을 내음이 나는 강천섬 탐방 녹색길. |
정류장과 굴암리 마을센터를 뒤로하자 강천섬 탐방 녹색길이 시작됐다. 길 위로 뾰족뾰족한 밤 껍데기가 입을 벌린 채 떨어져 있다. 강천섬으로 향하는 데크 다리 양옆에는 추수철을 앞둔 벼가 노랗게 익어 금빛 물결을 이룬다. 그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잠자리 한 마리. 그 언젠가 풍요로운 가을 풍경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이런 그림을 떠올렸던 것 같다. 데크 다리는 5분쯤 이어지는데, 중간에 가로 1m가량 훼손돼 질척한 바닥이 드러나 보이는 구간이 있다. 혹여나 발이 빠져 봉변을 당할까 발밑을 예의 주시했다.
남이섬의 1.5배 크기인 강천섬을 느긋하게 둘러보면 2시간가량 소요된다. |
강천섬은 본디 남한강에 인접해 있어 홍수 때만 물이 불어 섬이 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4대강 사업을 거치면서 육지와 완전히 분리돼 섬이 됐다. 2급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로 지정된 단양쑥부쟁이가 지천으로 깔린 서식지이기도 하고, 남한강 자전거길의 경유지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속도를 즐기는 라이더들을 꽤나 마주칠 수 있었다. 데크 다리가 끝나는 곳에서 자전거 도로 너머로 강천섬으로 들어가는 굴암교가 보인다.
총면적이 57만1,000㎡에 달하는 강천섬은 남이섬보다 더 넓은 부지를 자랑한다. 덕분에 한적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지만 둘러보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린다. 섬 안쪽에 들어오니 초록의 잔디가 드넓게 깔려있다. 우거진 아름드리나무 숲과 한적한 길 위를 달리는 자전거들. 포근하고 아늑하다. 텐트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는 잔디광장에는 나무가 별로 없는 편이라 눈앞은 시원하지만 손바닥만큼의 그늘도 아쉬운 여름에는 명당자리 경쟁이 치열하겠다 싶다.
솔로 캠핑을 위해 준비한 가볍고 간편한 텐트 장비. |
몇 분 만에 뚝딱 보금자리가 완성됐다. |
홀로 떠나고 싶을 때, 발목을 잡는 생각들이 있다.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을까? 위험하면 어쩌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걷어내는 순간, 혼자 떠나야만 하는 무수한 이유들이 등 뒤를 밀어준다. 솔로 캠핑은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데 가장 큰 매력이 있다. 다른 이들의 스케줄에 맞춰 일정을 짜고 그대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없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도 괜찮고 츄리닝에 화장기 없는 맨얼굴도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 시간을 마음껏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혼자 즐기는 캠핑의 묘미는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꺼내 들어 여유를 만끽했다. |
강천섬에서 가장 사랑받는 것은 단연 섬을 가로지르는 은행나무길이다. 아직 이곳의 나뭇잎은 선명한 초록을 빛내고 있지만 단풍철이 되면 길게 뻗은 은행나무가 온통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은행나무길 옆으로 강변을 따라 걷는 산책 코스는 깔끔하게 조성된 데다 곳곳에 벤치 등 편의시설이 자리해 걷다 지칠 때 쉬어가기 좋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아래 흐드러진 억새밭이 성큼 다가온 가을 냄새를 뿜는다.
쉬엄쉬엄 섬을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 텐트로 돌아가는 길에 찾은 화장실에는 세면대 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없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물은 수돗물이 아니라 물탱크에 빗물을 받아둔 것이라고. 물탱크에 물이 부족해지면 화장실 사용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식수로 쓸 물은 물론 그릇을 닦을 물도 따로 챙겨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녁 세안은 물티슈로 대신했다.
길가에 떨어진 밤송이가 성큼 다가온 가을을 실감케 한다. |
해 질 무렵 노을을 바라보며. |
살아가는 데 가장 힘이 되는 것,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동시에 개인이 겪는 고민의 8할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때때로 사람에게서 벗어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는 동안 다시 사람을 사랑할 힘을 얻게 될 터다. 그것이 자연 속에서 즐기는 캠핑이라면 더 완벽하겠다.
한강의 정취까지 즐길 수 있었다. |
나와의 오롯한 시간을 보내며 하루의 감상을 기록해본다. |
이슬기 기자 / 사진 정영찬 기자 / 장비협조 MSR / seulki@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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